불교

大乘佛敎의 주인공인 菩薩

근와(槿瓦) 2013. 6. 18. 04:56

 

大乘佛敎의 주인공인 菩薩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대승불교의 여명은 보살 운동과 더불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보살 정신은 위기에 처한 현대 인류 문명을 구원할 이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면밀히 추적한 역사철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ebee)는 『역사 연구』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현대 문명을 구원할 수 있는 세 가지중 하나를,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자기의 슬픔처럼 여기는 보살의 중생을 향한 강한 이타성에서 구하고 있다.

보살의 산스크리트 명은 보디삿트바(Bodhisattva)이다. 보디란 깨달음을 의미하며 삿트란 살아 있는 존재의 무리, 즉 중생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보디삿트바란 깨달음의 길로 들어선 중생으로서 구도자(求道者)를 의미한다. 이 말을 현장(玄濱)은 각유정(覺有情)이라 번역했다. 한편 '보살'이라는 말을 문자로 정착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은 중앙아시아 쿠차(Kuccha)국의 왕족으로서 중국불교의 토대를 본격적으로 다진 쿠마라지바(Kumarajiva, 鳩摩羅什)다. 보디샷트바가 그대로 음역되어 보리살타(菩提薩唾)라고 하다가 부살(扶薩)로 명명되고, 이윽고 그가 보살로 번역한 이래 이 말이 오늘날까지 한자 문화권에서 줄기차기 쓰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보살은 언제 어떻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는가? 보살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석가모니 전생의 기간을 보살로 일컫는 말이요, 다른 하나는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부터 등장한 구도자로서의 보살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두 가지 분류도 그 본령에서 바라본다면 의미상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석가모니불도 깨닫기 이전, 그 영겁일지도 모르는 전생의 기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치열한 수행을 했던 것이다. 바로 그는 오랜 인고의 세월 동안 구도자의 길을 걸어 결국 붓다가 된 것이다.

불전(佛傳) 문학이나 본생담(本生譚)에서는 깨닫기 이전의 석가를 석가보살이라 불렀다. 연등불(燃燈佛) 수기(受記)의 일화에서 살펴보았듯이 수메다(Sumedha, 善慧) 동자는 장차 성불하겠다는 원을 세우고는 연등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오시는 길 진흙 탕에 머리를 풀어헤쳐 지나가게 했던 결과, 장차 반드시 깨달음을 이루리라는 예언을 받았던 것이다. 그 수메다가 바로 석가보살로 일컬어지며, 그는 반드시 미래에 성불할 것임이 틀림없기에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보살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보살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2세기 후반에서 기원전 1세기중엽에 이르는 기간이라고 본다. 그 기간에 불전 문학이 성행하였기에 그 말의 탄생은 기원전 2세기가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의 보살은 바로 석가보살만을 지칭하는 말로서 이미 깨달음이 확정된, 수기보살(受記菩薩)을 일컫는 것인데 반해 대승의 보살은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보편적 보살로서 확대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파불교 시대의 수행자들은 사실 자신만의 깨달음을 위해서 사원에 머물면서 현란한 교학에만 골몰하였다. 그 결과 불교 교학의 발전을 불러온 측면도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학적이고 번쇄한 학문 불교로 치닫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래서 불교는 일반 민중과는 거리가 벌어진 수행승들만의 종교, 학술상의 종교로 변질해 버려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혀가지 못했다.

석가모니불이 누구이던가?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성취하신 이후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해탈과 구원의 밝은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일생 동안 길에서 길로 중생들을 교화하다가 열반하신 분이 아닌가. 바로 깨달음을 자기 자신만이 간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웃과 공유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깨달음의 길로 가고자 한 자비스러운 인물이었다. 불교는 바로 그러한 분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런데 부파불교의 중심 인물들은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왕족과 부유한 상인들이 제공해 주는 터전에 머물면서 자기들만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의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재가자들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다. 일상의 생활인인 이들은 사원에 들러 탑에 참배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고 그분께 절대 귀의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확고히 다진다. 즉 대승불교를 추진했던 재가 신도들은 승원에 틀어박혀 자리적(自利的) 수도에만 몰두하던 출가 수행자와는 달리 일상적인 생활을 해나가면서 불탑의 주위에 모여 꽃과 향, 음악 등으로 부처님께 온 몸과 마음을 바쳐 귀의하고자 했다. 부처님을 절대 전능의 영원한 님으로 받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부처님께 경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부처님처럼 되려는 노력은 어쩌면 엘리트 집단인 출가 승려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노골적인 비하에 자극받은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들 일급의 학승들에 비해서 재가 불자들의 지식 수준이며 수행력은 사실 별 볼일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가 불자들은 부처님 전생시절의 보살을 자신들의 이상형으로 삼아 보리심을 키워 나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부처님의 지혜를 배워 타인에게 봉사하고 구제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석가보살처럼 그들도 장차 성불하리라는 대승의 보살임을 자청하여 보살 집단(Bodhisattva Gana)의 형성을 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내적 원인으로서 모든 자의 마음 속에 붓다가 될 씨알이 깃들어 있다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의 논리가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사실 그것이 부처님이 설한 불교의 참모습이 아닌가? 드디어 이러한 보살 집단은 보살 교단(Bodhisattva Samgha)으로 성장하여 불교 개혁의 깃발을 휘날리게 된다. 대승불교의 여명이 동터오른 것이다.

자리 이타의 정신

보살이 보살인 이유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언명에서 잘 드러난다. 초기불교의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외침은 대승불교의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재무장되는데, 거기에 보살의 정체성이 깊은 무게로 실려 있다. 문자 그대로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는 자신을 위하는 자리(自利)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남을 위해 살아가는 이타(利他)의 길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 길은 사실 별개의 것이 아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일, 그 자체가 중생을 구원하는 일이다. 깨달음과 중생 구제는 역동적으로 어울리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고 어느 쪽이 뒤라고 할 수 없다. 위고 아래고 자리 배정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일본의 유명한 정토 불교학자 가네코 다이에이(金子大榮) 스님은 자리 이타의 정신을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로 본다.

인간은 순수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보편인(普遍人)이다. 즉 일체 중생 이다. 따라서 일체 중생에게 이익을 베푼다는 사실은 헛되이 외적인 중생을 돌보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보편인을 실현하는 일이다. 따라서 자리 이타라는 대승 보살의 정신은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이다.
(『불교교리개론』불교시대사)

원효(元曉) 스님은 이를, 귀일심원 이익중생(歸一心源 利益衆生)이라 표현했다. 우리들이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는 의미다. 일심의 근원,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본래 마음 자리요, 자타가 하나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향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치를 자각하고 그 길로 들어서는 자는 일상적인 범부 중생이 아니라 비범한 인간이요 큰 사람이다. 그래서 보살을 일러 위대한 존재, 즉 마하삿트바(mahasattva, 摩訶薩; 大士)라고도 한다.

 

한국불교에서 보살의 위치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불교에서 보살 또는 보살 불교는 상당히 이상스러운 형태를 띠고 있다. 보살이 사찰의 공양주라든가 여성 불자만을 부르는 말, 심하게는 여성 무속인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언어의 의미가 변질되면서 한국불교는 인간의 실존을 일깨우는 성스러운 자유의 장(場)에서 일탈되어 여성주의적 기복 불교, 아니 무원칙하면서도 이기적인 기복 불교로 발걸음을 옮겼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불교 본령에서 벗어난 왜곡의 역사이며 일그러진 그림자이다. 하루 빨리 보살의 본래 의미를 되찾는 길이 한국불교가 제자리를 찾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그리고 어째서 한국불교는 여성 불자들을 보살로 부르고 있나? 그것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호로 가부장적 권위주의에서 저열한 아녀자로 취급받던 서러운 부녀자들이 절에 가서 그들의 한을 풀어내며 부처님께 지극정성으로 귀의하고 공양했기에, 그들의 모습이 마치 불탑에서 공양을 올렸던 보살들의 행위와 흡사하기에 보살로 불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는 역시 같은 맥락에서 60년대 조계종 정화 운동 시절 봉암사 결사 때, 여성 신도를 보살로 부르기로 했다는데, 그러한 관행이 굳어진 걸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앙인으로서의 보살의 모습을 무어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측면만으로 보살을 바라보게 되면서 이제는 완전히 수동적인 여성 불자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살이라는 말이 굳어진데는 문제가 있다. 보살은 상대방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깨어 있는 실존인 것이다.

위대한 사랑의 영혼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자신의 고통을 읽는 아픔을 가슴 속에 지닌다. 이 아픔의 공유야말로 21세기 한국불교가 풀어나가야 할 화두이기에 한국불교의 힘찬 부흥도 이 보살 불교의 위치 회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법회가 끝날 때 의례적으로 되풀이하는 "성불합시다"라는 말보다 먼저 우리 모두 "보살이 됩시다"라고 굳은 다짐을 해야 하리라고 본다.

 


출처 : 조계사 홈페이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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