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위(頂位)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頂法이라고도 하며 四善根의 하나. 四善根중 煖·頂의 二位를 動善이라 하며 忍·世第一의 2를 不動善이라 하는데, 頂法은 動善 가운데 最極의 位이므로 마치 사람의 정수리와 같으므로 善法이라 한다.
① 小乘 俱舍宗에서는 四諦의 이치를 觀함에 있어 16行相을 觀行함은 煖位와 같지만 거기서 다시 一善根을 前進한 位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더 나가면 忍位에 나아가고 한걸음 물러나면 煖位가 되는 것이 마치 山頂에 오르고 내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이름했다고 한다. 또 일단 頂位에 들면 善根을 끊게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② 大乘 唯識宗에서는 이 位를 尋伺觀의 終極으로 삼는다. 곧 四定은 四善根의 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明增定에 의하여 上品尋伺觀을 닦음에 있어 尋伺의 대상인 名·義·自性·차별은 모두 자기 마음이 변해서 나타난 假有적인 것으로 尋伺推察하여 名 등의 넷을 다 끊어 여의는 것을 頂位라고 한다.
참고
사선근(四善根) : 修行階位의 하나. ① 有部에서는 처음 無漏의 慧가 생겨서 四諦의 이치(불교의 근본진리)를 명확하게 보는(現觀하는)자리를 見道라고 하지만, 그 見道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서의 見道直前의 位가 이 四善根位이다. 그래서 이 位에서 닦는 有漏의 善根은 無漏의 聖道(즉 決擇)의 일부분이 된다. 見道를 가지고 오는(즉 順益)작용이 있으므로 順決擇分이라고도 한다. 또 이 자리는 內凡位 · 四加行位라고도 하며 三賢位(곧 外凡位)와 합쳐서 七方便位라고 한다. 이상은 凡夫位인데 이에 대해 見道이후를 聖者位라고도 한다. 四善根位는 煗位(煗法) · 頂位(頂法) · 忍位(忍法) · 世第一法位의 四位로 나뉘어진다.
煗位란 더운 기운이 불 앞에 있는 것과 같이 번뇌를 태워 없애는 見道의 無漏慧를 불에 가까이 하여 그 앞에서 불을 쪼임으로 有漏의 善根을 나타내는 位로 欲界와 上二界의 四諦를 觀하고 十六行相을 닦아서 有漏의 觀慧를 나타낸다. 이 位에 이르면 설사 물러서서 善根을 끊고 惡業을 지어 惡趣에 떨어지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열반의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한다.
頂位란 동요가 있어 불안정한 善根(動善根)가운데 최상의 善根이 일어나게 하는 최상의 位로서 앞으로 나아가느냐 후퇴하느냐의 경계에 있어서 四諦十六行相을 닦는다. 이 位에 이르면 설사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善根을 끊는 일이 없다.
忍位는 四諦의 이치를 명확히 알아서 여기에 이르면 善根이 확정되어 움직이지 않는(不動善根)位로서 惡趣에 떨어지는 法이 없다. 이 중 下忍位에서는 四諦十六行相을 닦고 中忍位에서는 점차 觀行을 생략(減緣減行)하여 결국 최후에 남은 欲界의 苦諦의 1行相(觀하는 사람의 根機의 利鈍에 따라 四行相중 어느 一行인가는 일정하지 않다)을 그 刹那에 觀하고, 上忍位에서는 이와 같이 그 1行相을 1刹那에 觀한다. 上忍位에 이르면 五種不生을 얻는다. 즉 生(卵生·濕生) · 處(無想天·大梵王處·北俱盧洲) · 身(扇搋·半擇迦·二形) · 有(欲界의 第八有와 色界의 第二生) · 惑(見惑)은 不生 곧 나지 않는다. 여기에 下忍位에서 이미 얻은 趣不生 곧 惡趣에 나지 않는 것을 더하여 六種不生이라고 한다. 世第一法位는 세간 곧 有漏法 중에 최상의 善根을 낳는 자리로, 上忍位와 같이 欲界의 苦諦하에서 1行相을 닦고, 다음 찰나에는 見道의 位에 들어가 聖者가 된다. 이 네 가지의 善根은 見道無漏의 善을 낳는 근본이 되므로 善根이라 일컬으며, 修慧를 體로 하고 四靜慮 및 未至·中間의 六地를 所依로 한다.
② 唯識宗에서는 실천 수행의 階位를 五位로 나누는 가운데 第二의 加行位가 이 四善根의 位다. 이 位에서 名 · 義 · 自性 · 差別의 4가지에 대한 尋思觀과 如實智觀을 닦는다. 즉 煗位에서는 明得定을 닦아서 인식의 대상인 名等의 네 가지가 空無라고 尋求思察한다. 그래서 煗位의 수행자를 明得薩埵라 한다. 頂位에서는 明增定을 닦아 더욱 뛰어난 觀智를 가지고 위와 같이 觀한다. 이상이 尋思觀이다. 다음 忍位에서는 印順定 · 世第一法位에서는 無間定을 닦고 인식의 대상 뿐만 아니라 觀하는 識 그 자체를 空無라고 분명하게 확인, 결정한다. 이것이 如實智觀이다.
소승(小乘) : 범어 hinayana. 乘은 싣고 운반하는 뜻.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수레라는 뜻. 대승의 對. 이 교법 중에서 敎·理·行·果가 모두 深遠 광대하고,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도 大器利根인 機類를 요하는 것을 대승이라 하고, 이와는 달리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구하는 것을 소승이라 한다. 소승에는 성문승과 연각승이 있다.
(1) 聲聞乘. 四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한다.
(2) 緣覺乘. 12인연을 觀하여 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敎體로 한다. 이것은 모두 몸을 태우고 智를 멸하여 空寂 열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생각한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100년에 上座部와 大衆部로 분열하였고, 이 대중부는 또 다시 9부로, 上座는 11부로 나뉘어져 결국 도합 20부가 되었다. 스승이나 지역 관계가 분열의 원인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분열은 한편으로 교세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 부의 敎義는 서로 영향을 받았으며, 거기다가 이상적 질서를 부여한 것은 중국의 敎判으로, 窺基의 八宗判, 法藏의 十宗判 등이다. 이 이름은 대승이 有部의 煩瑣 연구를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데서 비롯한다. 대표적인 부파는 有部·經量部·正量部·大衆部 등이다. 인도의 상좌부·대중부 등의 20분파와 東土의 구사종·성실종·율종 등이다.
구사종(俱舍宗) : 世親의 저서 <俱舍論>을 근본 宗旨로 하여 세운 종파. 소승교에 속하는 說一切有部宗의 일파. 佛滅 後 9백년 경 처음 世親이 毘婆沙論을 연구하고 經量部를 참작하여 구사론을 지었다. 그 뒤 德慧·世友·安慧 등이 주석서를 지어 說一切有部의 敎義에 획기적인 성행을 이루었다. 陳나라 天嘉 4(563)년에 眞諦가 구사론을 번역하자, 비로소 중국에 전파되었고, 玄奘이 다시 번역하자 구사론의 연구가 활발하였다. 그 문하에 元瑜·神泰·普光·法寶 등이 <光記>·<寶疏> 등을 지어 구사론 연구에 좋은 길잡이가 되었고, 그 뒤 懷素·窺基·圓暉·慧暉·遁麟 등이 소승을 연구하였다. 俱舍宗의 大意는 說一切有部宗의 三世 實有, 法體 恒有의 宗旨를 설함에 있으나, 안으로는 經部의 현재 有體, 과거 無體에 같은 뜻을 나타내다. 곧 無表色·十四不相應法·三無爲 같은 것도 有部宗에서 實體가 있다고 함에 대하여, 그것은 假定的 존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사제(四諦) : ① 諦는 범어 satya, 파리어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란 뜻. 자세히는 四聖諦 · 四眞諦라 하며 4가지의 틀림없는 진리를 말한다. 四諦는 대체로 12緣起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것으로 원시불교의 교리의 대강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最勝法說’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석존 최초의 설법(곧 初轉法輪)에서 설한 것이라고 한다. 4가지 진리의 제1은 「迷惑의 이 세상은 다 苦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2는 「苦의 因은 구하고 탐하여도 그치지 않는 執着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제3은 그 執着을 완전히 끊어 없애 버림으로 苦를 멸한 때가 궁극의 理想境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4는 「이와 같이 苦가 없는 열반경에 도달하기 위하여 八正道의 옳은 修行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 4가지는 순서와 같이 苦聖諦 · 苦集聖諦 · 苦滅聖諦 · 苦滅道聖諦라고 불리운다. 이를 약하여 苦諦 · 集諦 · 滅諦 · 道諦라고도 한다. 이 苦· 集 · 滅 · 道의 四諦 가운데 苦와 集은 迷妄의 세계의 因果를 나타내고, 滅과 道는 證悟의 세계의 인과를 나타낸다. 四諦의 이치가 三段階인데 여기에 각각 4가지의 行相을 붙여서 說할 때 이것을 三轉十二行相이라고 한다. 곧 三轉이란 제1轉 「이것은 苦諦(集· 滅·道諦)이다」라고 하는 示轉, 제2轉은 「이 苦諦(集· 滅· 道)는 徧知(永斷· 作證· 修習)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勸轉, 제3轉은 「이 苦諦(내지 道諦)는 이미 徧知(내지 修習)되었다」고 하는 證轉이 그것이다. 12行相이란 이 三轉에 각각 眼 · 智 · 明 · 覺(옳은 智慧에 의한 이해를 뜻하는 4개의 同義語)의 四行相을 假設하고 각각의 諦에 12行相이 있다고 한 것. 그러나 다른 견해에 따르면 眼 · 智 · 明 · 覺을 고려하지 않고 一諦에 三轉이 있어 四諦全體로서 모두 12行相이 있다고도 해석한다.
② 有部敎學의 修證論에서는 우선 四善根位에서 4諦의 하나를 觀하는데 4種의 行相이 있으므로 합하여 十六行相을 가지고 四諦를 觀한다. 곧 苦諦에서 非常 · 苦 · 空 · 非我(恒存性이 없는 苦이며 假의 존재로 實體性이 없다)의 四行相, 集諦에서는 因 · 集 · 生 · 緣(執着을 苦의 원인으로 하여 苦를 모으고 생기게 하는 苦의 助緣이다)의 四行相, 滅諦는 滅 · 靜 · 妙 · 離(苦滅의 理想境은 繫縛을 끊고 번뇌를 가라앉혀서 殊妙의 境地에 이르러 災禍를 여읜다고 함)의 四行相, 道諦에는 道 · 如 · 行 · 出(苦滅의 聖道는 聖者實踐의 正道이고 正과 理가 합하여 迷의 生存을 超出하는 것이다)의 四行相이 그것이다. 이 四善根位의 다음에 見道에 들어 無漏의 眞智를 가지고 四諦를 現觀한다. 이 見道는 預流向에 속하는 일로서 預流果 이후로는 修道에 속하는데 이 預流向 · 預流果를 통하여 16心으로 四諦를 現觀한다. 이것을 聖諦現觀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최후의 제16心만이 預流果에 속하고 앞의 제15心은 見道에 속한다. 먼저 欲界의 四諦를 觀하는 智를 法智라 하고 上2界(色界와 無色界)의 四諦를 觀하는 智를 類智라고 하는데 이 法智와 類智에 각각 忍과 智가 있다. 곧 無間道에서 忍을 가지고 煩惱를 끊고(斷惑) 解脫道에서는 智를 가지고 진리를 깨닫는(證理)다. 苦諦에는 苦法智忍(약하여 苦法忍이라고도 하며 이에 따라 欲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苦諦에 迷惑되어 있는 煩惱를 끊는다)ㆍ苦法智(이것으로 欲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苦諦의 이치를 깨닫는다)ㆍ苦類智忍(약하여 苦類忍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가지고 上2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번뇌를 끊는다)ㆍ苦類智(이것으로 上2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진리를 깨닫는다)의 四心을 가지고 苦諦를 現觀한다. 集ㆍ滅ㆍ道의 三諦에도 앞에서와 같이 集法(智)忍ㆍ集法智ㆍ集類(智)忍ㆍ集類智ㆍ滅法(智)忍ㆍ滅法智ㆍ滅類(智)忍ㆍ滅類智ㆍ道法(智)忍ㆍ道法智ㆍ道類(智)忍ㆍ道類智의 각각의 4心을 說하여 모두 16心이 된다. 이것을 八忍八智라고도 한다. 또 四諦를 觀하는 無漏淸淨의 智를 諦에 따라 나누면 苦智ㆍ集智ㆍ滅智ㆍ道智가 되어 法智ㆍ類智 등과 같이 10智로 된다.
십육행상(十六行相) : 사제(四諦). 諦는 범어 satya, 파리어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란 뜻. 자세히는 四聖諦· 四眞諦라 하며 4가지의 틀림없는 진리를 말한다. 四諦는 대체로 12緣起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것으로 원시불교의 교리의 대강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最勝法說’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석존 최초의 설법(곧 初轉法輪)에서 설한 것이라고 한다. 4가지 진리의 제1은 「迷惑의 이 세상은 다 苦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2는 「苦의 因은 구하고 탐하여도 그치지 않는 執着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제3은 그 執着을 완전히 끊어 없애 버림으로 苦를 멸한 때가 궁극의 理想境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4는 「이와 같이 苦가 없는 열반경에 도달하기 위하여 八正道의 옳은 修行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 4가지는 순서와 같이 苦聖諦 · 苦集聖諦 · 苦滅聖諦 · 苦滅道聖諦라고 불리운다. 이를 약하여 苦諦 · 集諦 · 滅諦 · 道諦라고도 한다. 이 苦 · 集 · 滅 · 道의 四諦 가운데 苦와 集은 迷妄의 세계의 因果를 나타내고, 滅과 道는 證悟의 세계의 인과를 나타낸다. 有部敎學의 修證論에서는 우선 四善根位에서 4諦의 하나를 觀하는데 4種의 行相이 있으므로 합하여 十六行相을 가지고 四諦를 觀한다. 곧 苦諦에서 非常 · 苦 · 空 · 非我(恒存性이 없는 苦이며 假의 존재로 實體性이 없다)의 四行相, 集諦에서는 因 · 集 · 生 · 緣(執着을 苦의 원인으로 하여 苦를 모으고 생기게 하는 苦의 助緣이다)의 四行相, 滅諦는 滅 · 靜 · 妙 · 離(苦滅의 理想境은 繫縛을 끊고 번뇌를 가라앉혀서 殊妙의 境地에 이르러 災禍를 여읜다고 함)의 四行相, 道諦에는 道 · 如 · 行 · 出(苦滅의 聖道는 聖者實踐의 正道이고 正과 理가 합하여 迷의 生存을 超出하는 것이다)의 四行相이 그것이다. .....행상(行相)→心識의 각자 고유한 성능을 行相이라 함. ① 소승에서는 주관의 인식 대상, 곧 객관의 사물이 주관인 마음 위에 비친 影像을 말한다. ② 대승에서는 주관의 認知하는 작용을 말하니 곧 마음에 비친 객관의 影像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 ③ 隨行과 戒相. ④ 수행 방법의 모습을 말함.
대승(大乘) : 摩訶衍那·摩訶衍이라 음역하며, 上衍, 上乘이라고도 한다. 乘은 타는 것이란 뜻이며, 迷惑의 此岸으로부터 깨달음의 彼岸에 이르는 敎法을 가리킨다.
① 阿含經에서는 불타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大乘이라 했다.
② 대승·소승이란 말은 釋尊의 入滅 후 그 言行의 傳承을 중심으로 불교(原始佛敎)로부터 그 註釋的 硏究의 불교(部派불교)가 전개되는 것과 동시에 따로 보살도를 說하는 불교(대승불교)가 또한 발달되었는데, 이때에 후자의 敎徒가 자신들이 받들고 있는 敎를 殊勝한 것으로 규정하여 대승이라 불렀으며, 전자를 낮추어서 小乘이라 이름하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전자의 敎徒로부터는 대승은 부처님이 말씀한 敎가 아니라고 非難하는 이른바 大乘非佛說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思想史的으로 보면 小乘은 大乘敎學의 기초 내지 前驅라고 하는 의미를 갖는다.
③ 소승은 자신의 解脫만을 목적으로 하는 自調自度(調는 번뇌를 制伏하여 없애는 것. 度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의 聲聞·緣覺의 道이며, 대승은 涅槃의 적극적인 의미를 인정하여 自利·利他의 兩面을 다 갖춘 보살의 도라 할 수 있다.
④ 小乘에는 반야경·四分律·五分律 등의 律, 婆沙論·六足論·發智論·俱舍論·成實論 등이 있고, 대승에는 般若經·法華經·華嚴經 등의 經과 中論·攝大乘論·大乘起信論 등의 論이 있다.
⑤ 대승이 殊勝한 이유로서, 菩薩善戒經 卷七등에서는 七을, 世親의 攝大乘論釋 卷六에서는 十一을 들고 있는데, 보살선계경에서 말하는 七大乘이란 十二部經 가운데 最上의 경인 毘佛略의 敎에 기초를 두고(法大), 菩提心을 일으켜서(心大), 그 교를 이해하고(解大), 청정한 마음으로(淨大), 보살의 복덕과 지혜가 몸에 나타나며(莊嚴大), 三大阿僧祗劫의 수행을 쌓아(時大), 마침내 相好를 갖추며 無上菩提를 얻는것(具足大)이라고 했다.
⑥ 印度의 대승에는 대략 中觀·瑜伽의 2系統과 밀교가 있다.
⑦ 중국에서는 대승의 諸經論에 기초한 많은 敎派(三論·涅槃·地論·淨土·禪·攝論·天台·華嚴·法相·眞言 등의 諸宗)가 있어서 각각 自宗의 우월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 대승에 관한 종종의 구별을 세웠다. 예컨대 진언종에서는 顯敎·密敎로, 華嚴宗이나 천태종에서는 權대승(대승 가운데 方便에 해당하는 敎 곧 五性各別의 說을 세운 敎)·實대승(대승 가운데 眞實敎. 모든 중생이 成佛하게 된다는 가르침)등으로 나누어진다. 또 有相大乘·無相大乘의 2종대승, 혹은 法相·破相·法性의 3大乘으로 나누는 說이 있다.
⑧ 우리 나라·중국·일본의 불교는 전통적인 대승불교이며, 서장불교, 몽고의 라마교 등도 대승의 계통에 속한다. 버마·태국·스리랑카 등의 불교는 대승교도로부터 고래로 小乘으로 불리워 온 계통에 속하는 불교다.
⑨ 천태종에서는 小乘에는 經律論의 三藏이 확실히 구별되어 갖추고 있는 점에 비추어 小乘敎를 三藏敎(藏敎)라 일컫는다.(화엄종에서는 小乘敎라 이름한다). 또 천태종에서는 小乘 가운데 有門(發智論·六足論 등)과 空門(成實論), 그리고 亦有亦空門(毘勒論, 이 논은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과 非有非空門〔迦旃延經(가전연경),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의 四門이 있다고 하고 이것을 小乘敎의 四門 또는 小乘의 四分이라고 했다.
⑩ 智顗(지의)의 金光明玄義에는 理乘(모든 存在의 本質인 眞如 理性)·隨乘(對象에 隨應해서 작용하는 智慧) 得乘(스스로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證果)의 三大乘을 說했는데 이것은 順次로 眞性·觀照·資成의 三軌에 해당시킨 분류다. 또 起信論에는 大乘의 本體는 衆生心이라고 記述하고 있다.
유식종(唯識宗) : 法相宗 · 應理圓實宗 · 普爲乘敎宗 · 唯識中道宗 · 中道宗이라고도 하며, 이 宗의 所依經典은 解深密經 · 成唯識論 · 瑜伽師地論이다. 佛滅 후 1천년경 북인도 사람인 無着과 世親이 세우고, 중국에서는 인도의 戒賢論師에게 법을 배운 玄奘이 窺基에게 전하다. 窺基는 慈恩寺에서 주석하였으므로 慈恩宗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의 圓測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玄奘에게 瑜伽論과 唯識論을 배우고 唯識疏抄를 저술하였다. 또한 경덕왕 때에는 眞表律師가 金山寺에서 戒法과 占察法을 수행하고 법상종의 宗旨를 寶宗 · 永深 · 信芳 등에게 전하여 法住寺와 桐華寺에서 크게 성하였다. 이 宗은 우주 만유의 本體보다도, 현상을 자세히 분류 설명하였으므로 법상종이라 하고, 유식종이라 함은 일체 萬有는 오직 識이 변해서 이루어 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불교의 唯識論으로서 萬有는 오로지 아뢰야식으로 緣起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 緣起의 本體인 能變의 처음은 제 8識이요, 2能變은 제 7識, 3能變은 通 6識이라 하고, 이것들은 모두 內心으로 外境을 變現하는 것이므로 三界唯一心과 心外無別法이라 말한다.
萬有를 분류하여 五位百法으로 정하며, 만유의 진정한 理 · 事 · 迷 · 悟를 밝히기 위하여 遍計所執性 · 依他起性 · 圓成實性의 3性을 말한다. 識이 外境을 인식하는 과정에 나아가서는 이것을 4分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萬法唯識의 이치를 깨달아 알게 하는 방법으로 5重唯識觀을 세웠다. 중생의 해탈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중생의 성품에는 선천적으로 菩薩定性 · 緣覺定性 · 聲聞定性 · 三乘不定性 · 無性有情의 5性이 각각 다르므로 영구히 해탈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 宗의 三乘敎만이 옳고, 다른 종파의 一乘敎는 假說이라 하므로 이 宗을 權大乘이라 부른다.
심사(尋伺) : 尋은 대상에 대하여, 그 뜻과 이치를 尋求하는 것이고, 伺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세히 분별하고 伺察하는 정신 작용을 말한다.
사정(四定) : ① 色界의 4禪定. ② 唯識宗의 加行位로 善根의 體인 明得定(煖位에서 下品 尋伺觀으로 對境의 空無함을 觀하는 定)·明增定(頂位에서 上品 尋伺觀으로 對境의 空無함을 觀하는 定)·印順定(忍位에서 下品如實觀을 일으켜 空無함을 알고 자기 心識의 空無함을 觀해서 인정하는 定)·無間定(世第一位에서 上品 如實智를 일으켜 자기의 心識이나 그 對境이 空無함을 印可하고 認許하는 定)의 네 가지를 말함. 이 4定에 의해서 尋伺如實의 觀을 일으켜서 三性의 假有實無를 觀함.
가유(假有) : 또는 俗有라고도 함. 거짓 존재라는 뜻. 萬象의 모든 법은 인연의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假有라 한다. 가유에 대한 대표적인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小乘部波에서는 有部 등에서 내세우는 法數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假와 實의 논쟁이 있다.
(2) 般若經, 中觀派, 三論宗, 天台宗 등 空觀系의 여러 종파에서는 일체의 법은 모두가 인연화합의 緣起이므로 이를 假有라 한다.
(3) 成實論에서는 因成假·相續假·相待假의 셋으로 구분한다.
(4) 法相宗에서는 聚集假·相續假·分位假의 셋으로 나누고, 또 범부 중생이 망상하는 無體의 존재(無體隨情假)와 불교가 세상법으로서 내세우는 有體의 존재(有體施設假)로도 구분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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