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큰스님 말씀

청정(淸淨)비구로 살아라

근와(槿瓦) 2015. 4. 22. 00:15

청정(淸淨)비구로 살아라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성철대종사께서는 과거 현재의 어느 누구보다도 계(戒)행에 대하여 철저히 지키고 행할 것을 강조하시는 분이다. 청정 비구, 청정 비구니를 주장하시는 분인 것이다. 성철대종사의 계에 대한 관념은 승려가 되기 이전부터 고정관념으로 되어 있었고, 그 관념으로 하마터면 출가 입산을 거부할 뻔 하였다.

 

성철대종사께서는 철학에 뜻을 두고 홍안으로 도일(渡日), 동경에서 유학하시다가 웬지 마음에 계합된 바 없어 23세 때 관부연락선을 타고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다.

 

대종사의 고향은 산자수려하기로 유명한 경남 산청 향리에 돌아와 쉬고 있을 때 어느 날 우연히 산청에 있는 대원사 주지 오산스님을 만났다. 오산스님은 소련 모스크바 대학을 나온 스님이었다.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오산스님은 마침내 총명하고 박학다식한 청년을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고, 대원사에 초청했다.

 

성철대종사는 오산스님의 초청을 수락하고 어느 날 홀홀이 대원사를 방문했다. 대원사에서 쉬면서 어느 날 성철대종사의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주는 서적을 발견하게 된다. 텅 빈 큰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이 선반에 오랜 시간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오래된 책자에 간 것이다. 무슨 서적일까. 무심코 손을 뻗어 책을 집어 들었고, 먼지를 툭툭 털어 표지의 책명을 읽었다. 서장(書狀), 중국 대혜(大慧) 선사의 서장이었다.

 

그 서장을 읽을 때 가슴은 말할 수 없이 흥분되고 떨려 왔다고 전한다. 세상에 이러한 가르침이 있었구나..... 성철대종사는 그때 처음으로 선문(禪門)의 화두(話頭)를 알 수 있었다.

서장에 나와 있는 화두 하나로 그는 일주일 동안이나 침식을 잊고 화두삼매에 들었고 비로소 마음에 계합된 바를 느꼈다.

 

오산스님은 크게 놀랐고, 그가 불연이 있음을 알고 출가 입산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불전(佛典)은 환희심으로 탐독하면서도 오산스님의 권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오산스님에게 대놓고 말은 아니 하였지만 대처승들의 사는 것을 보고 출가 입산은 아니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오산스님은 대처승이었던 것이다. 참선은 하되 승려 생활은 아니한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대원사는 해인사의 말사인데 일년에 몇 번씩 있는 본말(本末) 주지 회의에는 주지 오산스님이 본사인 해인사를 찾았다. 때마침 주지 회의가 있어 오산스님은 본사를 찾아가 당시 선원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비구승인 하동산(河東山) 대선사께 대원사에 쉬고 있는 젊은 인재에 대하여 소상히 말씀드리고 천거했다. 하동산 대선사는 큰 법기(法器)임을 느끼고 점두하였다.

 

며칠 후 해인사 선원에서 운명적으로, 하동산 대선사는 젊은이를 접견했다.

하동산 대선사는 젊은이가 큰 법기임을 한 눈에 알고 문하에 거두었고, 젊은이는 하동산 대선사가 청정 비구승의 참선납자라는 것을 알고 비로소 머리를 깎았다.

해인사에서 참선납자로 운수행각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성철대종사는 출가 입산하기 이전부터 승려의 청정행을 주장하였는데 항차 입산수도의 길에는 오직 청정행을 부르짖으셨을 것인가. 청정한 비구, 청정한 비구니들이 조계종 교단의 중심이 되어 불교를 흥왕시키는 것이 성철대종사의 유일한 기쁨인 것이다. <道雨스님>

 

 

출전 : 큰빛 큰지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성철큰스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心識說의 근원   (0) 2015.09.01
마조스님(백일법문 下)  (0) 2015.08.29
중도사상의 독창성  (0) 2015.04.08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0) 2015.02.13
우리의 영혼은 불멸한다  (0) 2015.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