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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개공(五蘊皆空)

근와(槿瓦) 2018. 3. 9. 02:44

오온개공(五蘊皆空)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몸과 마음은 모두 五蘊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일정한 본체가 없이 無我인 것을 말함.

 

참고

오온(五蘊) : 五陰이라고도 한다. 은 범어 skandha의 번역. 塞建陀音譯하며 모인다는 뜻. 가지가지의 종류를 일괄해서 聚說한다는 뜻.

五蘊이라 함은 色蘊(물질) · 受蘊(印象感覺) · 想蘊(知覺 · 表象) · 行蘊(意志 기타의 마음 작용 등) · 識蘊()의 총칭.

· · 은 대체로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에, 五蘊은 물질계와 정신계의 양면에 걸치는 일체의 有爲法(인연에 의해서 생긴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五蘊有情個體를 형성하는 을 강조한 말로 보면, 五蘊心身環境을 가리킨다.

육신은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事物이 모두 인연(온갖 조건)에 의해서 五蘊이 잠정적으로 모여서 이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五蘊假和合이라 하고, 특히 有情의 개체에 대해서 말한다면 나라고 하여 집착할 實體가 없는 것을 나타낸다.

有漏五蘊을 또 五取蘊(五受陰)이라고도 한다. ()煩惱異名이다. 또 이와 같은 五蘊은 중생에게 종종의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五妄想이라고도 불리운다. 五分法身[無漏五蘊이라고도 한다. 無學(최고의 깨달음)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 구비해야 할 다섯 가지 功德. 戒蘊(戒身 · 戒品이라고도 부른다) · 定蘊 · 慧蘊 · 解脫蘊 · 解脫知見蘊의 총칭. 解脫解脫知見을 모아서 解知見이라고도 한다.

小乘佛敎해석에 따르면 身業語業無漏淸淨이 되어(), · 無相 · 無願三三昧를 성취하고(), 正見 · 正知() · 盡知 · 無生知 正見과 상응하는 勝解를 얻고(解脫), 盡知 · 無生知를 얻는다(解脫知見)고 되어 있으나 근본은 불교교단에 들어가 육체적 · 정신적 욕망을 억제하고 마음을 寂靜하게 하여 智慧를 닦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그 해방된 마음으로 말미암아 편안함을 스스로 의식하는 開悟境地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無漏五蘊이라고도 한다.

 

공(空) : 범어 sunya의 번역. 舜若라 음역한다. 이라는 것은空性이라 하며, 主空神舜若多神이라고도 칭한다. 이란, 一切法因緣을 따라서 생겨난 것이므로, 거기에 我體 · 本體 · 實體라 할만한 것이 없으므로 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諸法皆空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일체가 이라고 觀見하는 것을 空觀이라 한다. 虛無(偏空)이 아니고 하는 것은 진실한 가치의 별견이므로, 眞空 그대로가 妙有라는 것이다. 이것을 眞空妙有라 한다. 이에 반하여 을 허무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惡取空이라 한다. 이것이 佛敎 전반에 통하는 기본적인 교리이다. .......


무아(無我) : 非我라 번역하기도 한다. 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自存하며(), 핵심적인 所有, 곧 주인공으로서(), 지배적 능력이 있는 주체()로 생각되는 영혼적 또는 本體的 實體를 의미한다. 모든 物體에는 이런 가 없고 가 아니라고 설하는 것을 諸法無我라고 하며 無我하는 것을 無我觀이라 한다. 無我는 불교의 근본교리로서 三法印의 하나인 無我印에 해당된다. 諸法無我印에서의 의 뜻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 뜻과는 구별해야 할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고래로 brahman교의 교설에 의해 atman() 사상이 젖어 잇었기 때문에 釋尊은 일차적으로는 그런 의미의 의 관념을 부인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석존은 가 될 수 없는 것, 가 있지 않은 것, 라는 집착에서 떨어질 것, 가 아닌 것을 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며, 라는 관념,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배제하는 사고방식, 는 존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었다. 팔리어 聖典에서의 無我의 원어는 anattan이다. 그 뜻은 가 아니다라는 의미와 내가 있지 않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초기 佛敎에선 결코 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은 없었다고 한다. 원래는 에 대한 집착에서 떨어진다는 뜻이다. Upanisad 철학에서는 實體視하는 것에 비해서 佛敎에서는 이런 見解를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고 客體的, 기능적인 를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반대한 것이다. 存在 · 不存在라고 하는 形而上學的 문제에 대한 대답은 석존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참다운 나의 문제는 존재적 존재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문제이므로 존재 · 非存在의 관념적 · 논리적 차원을 초월한 영역이기 때문에 석존은 일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석존은 다만 곧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원시불교에서는五蘊의 하나하나가 이므로 非我이다라는 敎說, 無常이므로 無我이다라는 敎說(雜阿含經 卷三)이 있다. 이것은 가 아닌 것을 , 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특히 身體를 나의 것, 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라는 觀念排除하고자 했다. 說一切有部에서는 人無我를 말하며 아를 부정하였으나 諸法實有라 하고 法無我는 말하지 않았다. 뒤에 와서 차차 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無我說이 확립되었으며, 이런 입장은 說一切有部, 초기 大乘佛敎에도 계승된다.

이렇게 하여 無我에는 人法二無我이 있게 됐다. 有情(살아 있는 것들 : 衆生) 五取蘊(凡夫의 생존을 이루는 物心의 다섯가지 요소(五蘊))假和合的 존재이므로 이런 五蘊的 假和合體實體的인 생명의 주체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人無我라고 칭한다. 또 모든 것은 因緣(結果를 내는 親因, 結果를 내는데 보조되는 것은 )에 따라 나타난 것(로 성립되는 것)이므로  그것에는 원래 고유한 獨自的 本性(自性)이 없다고 하는 것을 法無我라고 한다

阿含에는 모든 것은 조건에 의존하며, 이에 따라 변천하고 사라져 가는 無常한 것이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므로 無我라고 한다.

有部에서는 我空法有라 하여 人無我하고 있지만,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는 각각 自性이 있다고 보아 法無我를 설하지 않는다.

成實論에서는 五蘊안에 참된 自我가 없다고 보고 人無我하는 것을 空觀, 五蘊이 다  無常이어서 참된 自性이 없다고 보아 法無我하는 것을 無我觀이라고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無我說空觀과 관련되어 無我란 사물에서 나(영원불멸의 本體, 고정적 실체)가 없다. 無自性의 뜻이 있다고 하여(中論 卷二二 · 二三) 無我(人無我法無我 我法二空) 를 설했다. 二種無我相謂人無我及法無我 楞伽經卷一특히 唯識宗에서는 三性說에 따라 三無我를 세우고 또 阿賴耶識과 관련시켜 無我를 고찰하여서 阿賴耶識本性이므로, 諸法阿賴耶識중의 種子顯現에 불과함으로 無我라고 하고 있다. 實我實法情有理無로 참된 이 없으므로 無相無我, 依他起似我似法如幻假有로서 집착된 과는 다르므로 異相無我, 圓成實實性으로 無我의 상태에서 나타난 眞如自相이라고 하므로 自相無我라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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