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性이란?

불성론(佛性論 緣起分)

근와(槿瓦) 2015. 1. 20. 01:10

불성론(佛性論 緣起分)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천친보살(天親菩薩) 지음

 

문) 부처님께서 무슨 인연으로 불성(佛性)을 설하셨습니까?

 

답) 여래께서 다섯 가지 과실(過失)을 제거하고, 다섯 가지 공덕을 내기 위해 이 때문에「일체 중생은 다 불성이 있다」고 설하셨다.

 

다섯 가지 과실을 제거하는 것이란, 첫째 중생들로 하여금 저하하고 용렬한 마음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요, 둘째, 교만하거나 저하한 품격의 사람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요, 셋째, 허망한 집착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요, 넷째, 진실한 법을 비방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요, 다섯째, 아집(我執)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다.

 

첫째의 이른바 중생들로 하여금 저하하고 용렬한 마음을 여의게 하는 것이란, 모든 중생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불성의 이치가 있음을 듣지 못해서 자신에게 반드시 부처가 될 이치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지라, 이 때문에 자신에 대해 저하하고 용렬한 마음을 일으켜서 보리심(菩提心)을 낼 수가 없으므로, 이제 그들로 하여금 발심하여 자신에 대한 그 저하하고 용렬한 마음을 버리게 하려고 이 때문에「중생은 다 불성이 있다」고 설하신 것이다.

 

둘째의 이른바 교만한 마음을 여의게 하는 것이란,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일찍 부처님께서 설하신「중생은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면, 그는 이것으로 인하여 발심하고 나서는 곧「나도 불성이 있기 때문에 발심할 수 있구나」하리니, 교만한 뜻을 일으켜서 다른 사람은 자기 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이러한 집착을 깨뜨리기 위해 부처님께서「일체 중생은 다 불성이 있다」고 설하신 것이다.

 

셋째의 이른바 허망한 집착을 여의게 하는 것이란,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교만한 마음을 지닌다면, 그는 진리 그대로(如理)나, 또는 현상계의 정도 그대로(如量)에 바른 지혜가 생겨날 수 없어서 이 때문에 허망함을 일으킬지라, 허망이란 것이 바로 중생들의 과실이어서 이 과실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본래부터 없음이고, 둘째는 이 객(客)이라, 첫째의 본래부터 없음이란, 그대로의 진리(如如理) 가운데엔 본래 <인아(人我)>가 없거늘, 이 <인아>의 집착을 일으키니 말이다. 이 집착이 곧 본래부터 없는 것이니, 본래부터 없는 집착으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무명(無明)따위를 일으키고, 무명으로 말미암아 업을 일으키고 업으로 말미암아 과보(果報)를 일으키며, 이러한 세 가지가 다 참된 근본이 없는지라, 이 근본 없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 집착이 다 허망함을 이룩하고 이 집착으로 말미암아 일으키는 그 무명과 모든 업과 업의 과보가 모두 허망하기 때문에 받는 것도 짓는 것도 없거늘, 그런데도 이 가운데에 있다고 집착하니, 이 모든 허망 때문에 본래부터 없음이라고 이르는 것이요,

 

둘째의 객(客)이란 것은, 함이 있는(有爲) 모든 법은 다 찰나찰나에 사라지기 마련이어서 머무는 이치가 없는지라, 그렇다면, 나무라거나 나무라고 할 이 두 가지가 다 있을 수 없고 다만 처음의 찰나가 친구가 되는 반면, 다음의 찰나가 객이 될 뿐이어서 그 나무라거나 나무라고 할 것도 일어나서는 곧 사라지리니, 이는 처음의 찰나가 원수(怨)이겠고 그 다음인즉 원수가 아닌지라, 이 객 가운데에서 친구란 집착을 일으키는 이 집착이 실답지 않기 때문에 허망하다고 이르는 것이니, 만약 이 집착을 일으킨다면 바로 지혜가 나지 않을 것이므로, 이 집착을 제거하기 의해 불성을 설하신 것이다.

 

불성이란, 곧 인(人)과 법의 두 가지가 다 <공>한데서 나타나는 진여(眞如)이니, 진여이기 때문에 나무라거나 나무라고 할 것이 없나니, 이 이치를 통달하여야 허망한 집착을 여의는 것이다.

 

넷째 이른바 진실한 법 비방함을 제거하는 것이란, 일체 중생들의 과실되는 일이 모두 이 두 가지 <공>한 것에 있는지라, 이 <공>함을 깨달으므로 말미암아 청정한 지혜와 공덕을 일으키므로, 이것을 진실이라 하고, 비방이란 말은 만약에 불성을 설하지 않았더라면, 그 <공>함을 깨닫지 못함으로써 곧 실지 있는 것으로 집착하고 진여를 비방하게 되어 청정한 지혜와 공덕이 다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른바 <아집>을 여의는 것이란, 만약에 허망한 과실과 진실한 공덕을 보지 않았다면, 중생들 가운데에 대비심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고, 부처님의 말씀하신 불성을 들으므로 말미암아 허망한 과실과 진실한 공덕을 알면 중생들 가운데에 대비심을 일으킬 것이니, 저것과 이것이 없기 때문에 <아집>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이치를 위해 그 인연으로 부처님께서 불성을 설하사 다섯 가지 공덕을 내게 하심이니, 그 다섯 가지 공덕이란, 첫째 바른 노력(正勤)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고, 둘째 공경하는 일을 내는 것이고, 셋째 반야(般若)를 내는 것이고, 넷째 사나(闍那=智)를 내는 것이고, 다섯째 대비심을 내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공덕으로 말미암아 다섯 가지 과실을 번복시킬 수 있나니, 바른 노력으로 말미암아 저하하거나 용렬한 마음을 번복시키고, 공경함으로 말미암아 교만한 뜻을 번복시키고, 반야로 말미암아 망녕된 생각의 집착을 번복시키고, 사나의 속된 지혜를 냄으로 말미암아 능히 실다운 지혜와 모든 공덕을 나타내기 때문에 진실한 법을 비방하는 것을 번복시키고, 대비심으로 말미암아 인자하게 생각하고 평등하기 때문에 <아집>을 번복시키는 것이며, <아집>을 번복한 자로선 불성으로 말미암아 일체 중생을 관하되 두 가지 <공>에 포섭함으로써 일체 공덕을 성취하여 남에게 사랑하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반야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스스로의 사랑하는 생각을 없애고 대비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남에게 사랑하는 생각을 내며, 반야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범부의 집착을 버리고 대비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이승(二乘)의 집착을 버리며, 반야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열반을 버리지 않고, 대비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생사를 버리지 않으며, 반야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불법을 성취하고, 대비로 말미암아 이 때문에 중생을 성숙시키는지라, 이 두 가지 방편으로 말미암아 머무는 곳이 없는 데에 머물러 퇴전(退轉)하지 않음으로써 빨리 보리(菩提)를 증득하여 다섯 가지 과실을 없애고 다섯 가지 공덕을 내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일체 중생은 다 불성이 있다」고 설하신 것이다.

 

 

출전 : 緣起分(瑜伽部八,한글대장경135)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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