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姙娠) 前中後?

불위아난설처태회(佛爲阿難說處胎會)

근와(槿瓦) 2014. 12. 29. 01:31

 

불위아난설처태회(佛爲阿難說處胎會)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존자 아난이 해가 저물 때에 선정에서 깨어나서 오백의 비구들과 함께 부처님께로 나아가서 합장 공경하고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한 뒤에 물러나 한편에 서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곧 아난과 모든 비구들에게 말슴하셨다.

“나에게 중요한 법(法要)이 있으니, 처음도 중간도 나중도 훌륭한 그 이치는 미묘하여 순전하고 전일하며 뒤섞임이 없으며 청백(淸白)한 범행(梵行)의 모양을 두루 갖추었나니, 이른바 어머니의 태 안으로 들어가는 수다라 법(入母胎藏修多羅法)이니라. 마땅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니,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분별하고 설명할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하옵니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태(胎)에 들고자 할 때에는 인연(因緣)이 두루 갖추어져야 몸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만일 두루 갖추지 못하면 몸을 받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인연이 두루 갖추지 못햇다고 하느냐 하면, 부모될 이가 애염(愛染)의 마음을 일으키면 중음(中陰)이 그 앞으로 가서 받아 날 곳을 구하는 것인데 그러나 이 부모의 적백(赤白)이 어울릴 때에 혹은 먼저이거나 혹은 나중이어서 때를 함께 맞추지 못하고, 또는 몸 속에 각각 여러 가지 질병이 있게 되면 태 안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그 어머니의 태 안이 혹은 풍(風)을 앓아서 황혈(黃血)의 기운으로 막히게 되거나 혹은 태가 박혀 있거나, 혹은 살덩이가 맺혀 있거나 혹은 함병(醎病)이 있거나, 혹은 맥복병(麥腹病)이 있거나 혹은 의요병(蟻腰病)이 있거나 혹은 낙타의 입과 같거나 혹은 수레의 끌채처럼 굽어져 있거나, 혹은 수레의 굴대와 같거나 혹은 수레 바퀴통의 입과 같거나, 혹은 나뭇잎과 같거나 혹은 감겨 회전된 모양이 마치 등나무의 순과 같거나, 혹은 태 안이 마치 보리의 까끄라기와 같거나, 혹은 정혈(精血)이 많이 쏟아지며 잠시도 그치지 않거나, 혹은 대하(帶下)로 물이 흐르거나, 혹은 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껄끄럽거나, 혹은 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뾰족하거나, 혹은 굽어 있거나, 혹은 얕거나, 혹은 뚫려서 세거나, 혹은 높기도 하고, 혹은 낮기도 하고, 혹은 짧고 작은 등 여러 가지의 병들이 있으면 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느니라.

 

또 부모될 이는 존귀하고 큰 복덕이 있는데 중음이 낮고 천하거나, 혹은 중음은 존귀하고 복덕이 있는데 그 부모될 이가 낮고 천하거나, 혹은 양쪽의 복덕이 서로 느낄 업이 없으면 역시 아이를 배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이 중음이 아이가 될 때에는 먼저 두 가지 뒤바뀐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냐 하면, 부모가 화합할 때에 만일 그가 남자라면 어머니에 대하여는 사랑을 내고 아버지에 대하여는 성을 내며 아버지가 정액(精液)을 쏟을 때에는 그것이 자기의 것이라고 여기게 되고, 만일 그가 여자라면 아버지에 대하여는 사랑을 내고 어머니에 대하여는 성을 내면서 어머니가 정액을 쏟을 때에는 역시 그것이 자기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니, 만일 이런 성을 내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또 아난아, 어떻게 어머니의 태 안으로 들어가게 되느냐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애염(愛染)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월경(月經)이 순조롭고 중음이 앞에 나타나고 위에서와 같은 여러 가지 허물이나 병환이 없고 업연(業緣)이 완전히 갖추어지면 곧 태 안으로 들어가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중음이 태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는 또 두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이냐 하면, 하나는 복덕이 없는 이요, 둘은 큰 복덕이 있는 이이니라. 복이 없는 이는 거친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을 일으켜서 보게 되는 경계에서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바람이 불고 춥고 비를 만난 데다 대중이 떠들고 많은 위엄이 와서 핍박하고 있으므로 무섭고도 두렵다. 나는 이제 풀로 만든 집으로 들어가거나 잎으로 만든 집으로 들어가야겠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담장 밑으로 가서 숨어야겠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산이나 못이나 우거진 숲이나 굴로 들어가야겠다‘고 하기도 하며, 또 갖가지 모든 생각을 내어 그가 보는 바에 따라 곧 어머니의 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니라.

 

큰 복덕이 있는 이도 역시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바람이 불고 춥고 비를 만난 데다 대중이 떠들고 위엄이 닥쳐와서 핍박하고 있으므로 무섭고도 두렵다. 곧 높은 누각으로 올라가야겠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큰 집으로 올라가야겠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전당(殿堂)으로 들어가거나 평상으로 올라야겠다‘고 하기도 하며, 역시 그 밖의 갖가지 생각들을 내어 그가 보는 바에 따라 곧 어머니의 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중음이 맨 처음에 태 안으로 들어갔을 때를 가라라(歌羅邏)라 하는데 모두가 부모의 부정(不淨)과 과거의 업(業)에 의거하여 몸을 받게 되나니, 이와 같은 업과 부모의 모든 연(緣)이 저마다 스스로 나지 못하고 화합(和合)하는 힘 때문에 곧 몸을 받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그릇에 담긴 타락(酪)을 사람이 정제함으로써 곧 소(酥)를 내는 것이나 모든 연(緣) 가운데서 모두 얻을 수는 없고 화합하는 힘 때문에 비로소 나게 되는 것처럼 가라라의 몸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인(因)과 연(緣)의 힘 때문에 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니라.

 

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푸른 풀이나 소의 똥이나 대추나 타락이 서로 의지함으로 저마다 벌레가 생기는 것이요, 하나하나에서는 벌레가 생길 수 없고 인과 연의 힘 때문에 벌레가 비로소 생기게 되며, 이 벌레가 생길 때에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것은 저마다 의지한 것에 따라서 그 빛으로 되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부모의 부정(不淨)으로써 이 몸이 생기게 하는 것이요, 모든 연(緣) 가운데서는 구한다 해도 모두 얻을 수 없고 또한 연을 여의지 않고 화합하는 힘 때문에 곧 태 안으로 들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몸이 생길 때에는 그 부모의 네 가지 요소(四大種)의 성질과 함께 하며 차별이 없나니, 이른바 땅(地)은 단단한 성질이 되고 물(水)은 축축한 성질이 되며 불(火)은 더운 성질이 되고 바람(風)은 움직이는 성질이 되는 것이니라.

 

가라라의 몸에 만일 땅의 요소(界)만 있고 물의 요소가 없다면 마치 어떤 사람이 마른 미숫가루나 재를 쥐는 것과 같아서 끝내 어우러지지 않을 것이요, 만일 물의 요소만 있고 땅의 요소가 없다면 마치 기름이나 물의 성질이 물기만 있으므로 단단하거나 속이 차지 않아서 바로 흘러내리고 흩어져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며, 만일 땅과 물의 요소만 있고 불의 요소가 없다면 마치 여름철에 응달에 놓아둔 고깃덩이가 햇빛을 쬐지 않으면 곧 썩어서 문드러지는 것과 같을 것이요, 만일 땅 · 물 ·불의 요소만 있고 바람의 요소가 없다면 더 자라지 못하는 것이 마치 어떤 사람과 그 제자들이 엿을 잘 둥글려 만들면서 만든 것마다 그 속이 모두 텅비게 하려는데 만일 바람의 힘이 없으면 끝내 성취하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니라.

 

이와 같이 네 가지의 요소는 서로서로 의지하고 부지하면서 이룩하게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가라라 몸이 부모되는 이의 네 가지 요소인 업의 바람(業風)을 인(因)하여 생기게 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많은 연(緣)가운데서는 모두 얻을 수 없고 화합하는 힘 때문에 곧 몸을 받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깨끗한 새 종자를 잘 간수해 두었으므로 벌레가 먹지 않고 썩거나 탔거나 구멍이 뚫리지 않아서 어떤 사람이 물기가 있고 기름진 좋은 밭을 골라서 이 종자를 뿌렸다 하자, 그 종자가 하룻동안에 싹과 줄기와 가지와 잎이 나서 무성해지고 그늘이 지며 꽃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게 되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가라라의 몸도 그와 같아서 모두가 인(因)과 연(緣)을 따라 차례로 자라는 것이요 한꺼번에 모든 감관(根)이 완전하게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니라. 그러므로 부모로부터 이 몸이 있게 된다 하더라도 모든 연(緣) 가운데서 구하면 모두 얻을 수 없고 화합하게 되는 힘 때문에 곧 태어나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눈이 밝은 사람이 일광주(日光珠)를 햇빛에 가져다 놓고 마른 쇠똥을 그 구슬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달아 놓으면 불이 곧 일어나게 되지만, 쇠똥이나 일광주는 스스로 저마다 불을 낼 수는 없는데 역시 서로가 여의지 않아서 인과 연의 힘 때문에 불이 나오게 되는 것과 같나니, 부모에게서 나게 되는 몸도 이와 같느니라.

 

가라라의 몸을 물질(色)이라 하고 느낌(受) · 생각(想) · 지어감(行) · 의식(識)을 이름(名)이라 하는데 아름과 물질의 오음(五陰)이 찰나 동안에 몸을 받은 것도 벌써 모든 고통을 겪는 것이므로 나는 찬탄하지 않거늘 하물며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존재(有)에 바퀴 돌듯함이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적은 똥도 오히려 더러운 악취가 나거늘 하물며 많은 똥이겠느냐, 이와 같아서 오음인 가라라의 몸을 그 누가 사랑하고 좋아하겠느냐.

 

또 아난아, 이와 같은 몸이 어머니의 태 안에 있어서 서른 여덟 번 째의 칠 일을 지내야 비로소 출생하게 되느니라.

 

첫 번째의 칠 일 동안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가라라(歌羅邏)라 하는 몸의 모양이 처음 나타나는데 마치 타락(酪)이 생긴 것과 같으며, 이 칠 일 동안에 속의 열(內熱)에 끓이고 삶아지며 네 가지 요소(四大)가 점점 이루어지느니라.

 

두 번째의 칠 일 동안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감응(感應)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業風)이 있어서 이름을 변만(遍滿)이라 하는데 그 바람이 어머니의 왼 겨드랑이와 오른 겨드랑이에 미세하게 붙어서 가라라의 몸 모양이 점차로 나타나게 하며, 그 형상이 마치 진한 타락과 같기도 하고 혹은 엉긴 소(酥)와 같기도 하여 속의 열에 끓이고 삶아지며 안부타(安浮陀)몸으로 바뀌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네 가지 요소가 점점 이루어지느니라.

 

세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 또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어서 그 이름을 장구(藏口)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점차로 엉기게 되어 그 안부타가 폐수(閉手)로 바뀌면서 그 형상이 마치 약 찧는 공이와 같아 아주 짧고도 작은 것이 그 태 안에서 안의 열에 끓이고 삶아지는 것이니, 이렇게 하여 네 가지 요소가 점차로 자라게 되느니라.

 

네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또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어서 그 이름을 섭취(攝取)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폐수가 가나(伽那)로 바뀌면서 그 형상이 마치 따뜻하게 달군 돌과 같아지며, 속의 열에 끓이고 삶아지면서 네 가지 요소가 점차로 커지느니라.

 

다섯 번째의 칠 일 동안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섭지(攝持)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가나가 반라사거(般羅奢佉)로 바뀌면서 모든 부스럼(皰)이 열리어 두 개의 넓적다리와 두 개의 어깨와 그 몸의 머리가 출현하는 것이 마치 봄철의 따뜻한 날씨에 때맞추어 비가 내리면 나무의 가지와 줄기가 출현하는 것과 같나니, 업의 바람의 힘으로 인하여 모든 부스럼이 나타나는 때도 그와 같느니라.

 

여섯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반(飯)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네 개의 모양이 출현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개의 모양인가 하면 두 개의 무릎과 두 개의 팔꿈치이니, 이것을 네 개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일곱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선전(旋轉)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네 개의 모양이 출현하느니라. 무늬 없는 손바닥과 발바닥의 모양이 그것이니, 그 모양은 부드러워서 마치 무더기의 거품과 같느니라.

 

여덟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번전(翻轉)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스무 개의 모양이 나타나는 것이니, 손가락과 발가락의 모양이 생기게 되느니라.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나무의 가지와 줄기가 점차로 자라게 되는 것처럼 업의 바람의 힘 때문에 모든 모양이 나타나게 되는 것도 그와 같느니라.

 

아홉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분산(分散)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아홉 가지 모양이 나타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아홉 가지 모양이냐 하면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대소변을 누는 곳이니, 이것을 아홉 가지 모양이라 하느니라.

 

열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견경(堅硬)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곧 굳어지고 속이 차게 되느니라. 다시 하나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보문(普門)이라 하는데 저 태 속에 있는 몸에 붙어서 모두 부풀어 뚱뚱하게 하여 마치 부낭(浮囊)과 같게 하느니라.

 

열 한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금강(金剛)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 몸의 구멍들을 모두 완전하게 뚫리게 하느니라. 그리고 이 바람의 힘으로써 아이를 밴 이로 하여금 혹은 슬프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하며, 가고 서고 앉고 눕게 하면서 그 성질의 항상한 것이 고쳐져서 손과 발을 운동하여 태 속의 몸과 구멍들이 점차로 자라게 하는 것이며, 그 입 안에서는 검은 피가 나오게 하고 다시 콧속에서는 더러운 물을 쏟게 하는 등 이 바람이 모든 감관을 빙빙 돈 뒤에는 곧 그쳐 없어지느니라.

 

열 두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곡구(曲口)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좌우의 겨드랑 사이에서 대장(大腸) · 소장(小腸)이 생기는 것이 마치 연뿌리 속에 있는 섬유(纖維)와 같은 실로 팽팽하게 잡아매어 땅에다 놓아 두고 열 여덟 번을 빙빙 둘러서 몸에 의지하여 머무르게 하는 것과 같느니라. 다시 또 하나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천발(穿髮)이라 하는데 이 바람으로 말미암아 삼백 이십의 뼈마디와 일백 하나의 구멍이 몸 속에서 생기게 되느니라.

 

열 세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기갈(飢渴)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 안의 몸이 허기를 느끼게 하여 배고프고 목마르다는 생각을 내게 하므로 그 어머니가 먹는 음식의 모든 영양을 몸의 구멍과 배꼽을 통하여 보급시켜 주느니라.”그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 아이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

이미 열 세 번째 칠 일을 지나면

몸은 허기를 깨닫게 되어

배고픔과 목마름의 생각을 내느니라.

 

어머니가 먹는 모든 음식으로

태 안에서 양분을 보급해 주나니

이로 말미암아 몸과 목숨이 보존되어

점점 더 자라게 되느니라.

 

“열 네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선구(線口)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구백 개의 힘줄이 생기게 되어 몸의 앞뒤와 좌우로 서로 엇갈리며 이어지게 되느니라.

 

열 다섯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어서 그 이름을 연화(蓮花)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스무 개의 맥(脈)이 생기면서 음식의 양분이 이 맥을 통하여 흘러 들어가 그의 몸을 유익하게 하느니라. 어느 것이 스무 개냐 하면, 몸의 앞과 뒤와 왼편과 오른편에 각각 다섯 개의 맥이 있고 이 하나의 맥마다 모두 마흔 개씩의 지맥(枝脈)과 소맥(小脈)이 있으며 이러한 맥에도 또 각각 일백 개의 지맥이 있게 되느니라. 몸 앞의 이만 개의 맥을 상거(商佉)라 하고(여기의 말로는 싼다(赢)라고 한다) 몸 뒤의 이만 개의 맥을 역(力)이라 하며, 몸 왼편의 이만 개의 맥을 안정(安定)이라 하고 몸 오른편의 이만 개의 맥을 구세(具勢)라고 이름하나니, 이와 같은 팔만 개의 소 · 지맥이 이 몸에 생기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 맥에는 다시 갖가지의 빛깔이 있게 되나니,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빛깔과 소(酥) · 타락(酪) · 기름의 빛깔 등이 그것이니라. 이 팔만의 맥에는 하나의 맥마다 하나의 뿌리가 있고 그 뿌리 위에는 한 개의 구멍 또는 두 개 내지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그 낱낱의 구멍은 모두가 털구멍으로 이어져 있나니, 마치 연뿌리에 여러 구멍들이 나 있는 것과 같느니라.

 

열 여섯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감로(甘露)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눈과 귀와 코와 입과 가슴과 심장(心臟)과 네 주위에 있는 아홉 개의 구멍을 모두 열리게 되며,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위아래로 통하면서 장애가 없게 되느니라. 또 음식을 먹어서 그 몸에 양분을 보급하여 주면 쌓여 멈추는 곳이 있고 다시 소화하여 아래로 흘러나오게 하나니, 마치 옹기장이와 그의 제자가 진흙을 잘 이겨서 받침대에 올려 놓고 아래와 위로 돌리면 만들게 될 그릇이 완성되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모두가 바람의 힘과 선악의 업으로 말미암아 눈과 귀 등이 점차로 갖추어지게 되느니라.

 

열 일곱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네 주위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모우면(髦牛面)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양쪽 눈에 깨끗한 광명을 얻게 되고 귀와 코의 모든 감관을 점점 완성하게 되나니, 마치 거울에 먼지가 끼어 있을 때 혹은 벽돌가루나 기름이나 재로써 문질러 닦아서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느니라. 그러므로 업의 바람의 힘으로써 그 눈 등에 불어서 밝고 깨끗하게 하는 것도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열 여덟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네 주위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대견강(大堅强)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감관을 점차로 완성시키면서 다시 밝고 깨끗하게 하나니, 마치 해와 달이 구름과 안개가 가렸을 때에 사나운 바람이 갑자기 일어서 사방으로 흩어버리면 이 해와 달이 홀연히 크게 밝아지는 것처럼 이 업의 바람으로 그 모든 감관에 불어서 더욱 더 밝고 깨끗하게 하는 것도 그와 같느니라.

 

열 아홉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네 주위는 앞의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눈 · 귀 · 코 · 혀의 네 가지 감관을 완성하게 되고 처음 태 안으로 들어갈 때에 이미 세 가지 감관은 갖추어지나니, 하나는 몸의 감관이요, 둘은 목숨의 감관이며, 셋은 뜻의 감관이니라. 이와 같은 모든 감관은 이미 완전하게 갖추어진 것이니라.

 

스무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견고(堅固)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몸 속에서 갖가지 뼈가 생기게 되느니라. 왼 다리 안에서 스무 개의 뼈가 생기게 되고 오른 다리에서도 스무 개의 뼈가 생기게 되며, 발 뒤꿈치에는 네 개의 뼈를 생기게 되고 발목에는 스무 개의 뼈가 생기게 되며, 무릎에도 두 개의 뼈를 생기게 되고 넓적다리에도 두 개의 뼈가 생기게 되며, 엉덩이에 세 개의 뼈가 생기게 되고 등골에는 열 여덟 개의 뼈를 생기게 되며, 갈빗대에는 스물 네 개의 뼈가 생기게 되고 가슴에는 열 세 개의 뼈가 생기게 되며, 좌우의 두 손에는 각각 스무 개의 뼈가 생기게 되고 팔에는 네 개의 뼈가 생기게 되며, 어깨에는 두 개의 뼈가 생기게 되고 턱에도 두 개의 뼈가 생기게 되며, 해골에는 네 개의 뼈가 생기게 되고 그리고 이 뿌리 등에는 서른 두 개의 뼈가 생기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흙으로 형상을 만든 사람이나 그의 제자가 먼저 나무를 세우고 그 뒤에 줄로 묶어 놓고 여러 형상을 만들 때에 아직 흙을 바르기 전의 이러한 때를 골상(骨相)이라고 하는 것처럼 업의 바람의 힘으로써 모든 뼈를 생기게 할 때에도 역시 그와 같나니, 그러므로 이 칠 일 동안에 그 작은 뼈를 제외한 큰 뼈를 생기게 하는 것만도 그 수가 이백이나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스물 한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생기(生起)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아이의 몸에서 살이 생기게 하나니, 비유하면 마치 미장이나 그의 제자가 진흙을 잘 이긴 뒤에 모든 담장이나 벽을 바르는 것처럼 이 업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몸의 살이 생기게 되는 것도 그와 같느니라.

 

스물 두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부류(浮流)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몸에서 피가 생기게 되느니라.

 

스물 세 번째의 칠 일 동안에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지운(持雲)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피부를 모두 고르게 하고 윤택한 빛이 나게 하느니라.

 

스물 다섯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지성(持城)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아이의 몸의 살과 피를 더 자라게 하면서 점차로 불어나게 하느니라.

 

스물 여섯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며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생성(生成)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곧 머리카락과 손 · 발톱이 생기게 되고 그 하나하나가 모든 맥(脈)과 서로 이어지게 하느니라.

 

스물 일곱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곡약(曲藥)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몸의 모양이 점차로 완성되느니라.

 

혹시 전세에 모든 악업(惡業)을 지으며 모든 살림 도구에 간탐을 부리고 인색하여 보시를 즐기지 않았거나, 혹은 또 부모와 스승과 어른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면 이런 업 때문에 갖가지의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을 얻나니, 만일 키가 크고 살지며 희며 부드러운 몸으로 단정하게 될 이가 그와 반대로 키가 작고 여위고 검고 딱딱한 몸을 받게 되며, 만일 키가 작고 여위고 검으며 딱딱한 몸으로 단정하게 될 이가 그와 반대로 키가 크고 살지고 희며 부드러운 몸을 받게 되며, 만일 그의 온몸 안에 높고 낮고 많고 적고 엉성하고 촘촘함이 있음으로써 단정하게 될 이는 그와 반대로 높고 낮은 데와 엉성하고 촘촘한데도 없고 불구의 몸을 받게 되며, 혹은 또 귀머거리 · 소경 · 벙어리가 되기도 하고 손발이 오그라지는 등의 모든 감관이 불구가 되기도 하며, 그런 사람의 음성은 사람들이 듣기를 좋아하지 않고 또 그 몸이 추하고 더러움이 마치 아귀(餓鬼)와 같이 되느니라. 악업 때문에 이러한 갖가지가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을 받는 것이니, 부모와 친족조차도 오히려 보기 싫어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사람이겠느냐.

 

만일 전세에 열 가지 선업(善業)을 짓고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간탐과 아첨과 속이는 마음이 없었으며 부모와 스승과 어른의 모든 가르침을 모두 믿고 받았었다면 이런 인연 때문에 사람의 몸이 될 때에는 위와 같은 모든 악업의 몸을 받지 않고 곧 갖가지 빼어나고 묘한(殊妙) 몸을 얻게 되어 얼굴이 단정하고 모든 몸매(相)가 구족하게 되며, 그의 음성이나 하는 말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나니, 그러므로 이것은 선업 때문에 이렇게 빼어나고 묘한 과보를 얻는다는 것을 알지니라.

 

아난아, 이러한 몸이 만일 남자라면 어머니 뱃속의 오른쪽 옆구리 아래 쭈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등골을 향하여 머무를 것이요, 만일 여자라면 왼쪽 옆구리 아래 쭈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등골을 뒤로 하여 머무를 것이니라.

 

생장(生藏)의 아래와 숙장(熟藏)의 위에서 속의 열(熱)에 끓여지고 삶아져서 온몸(五處)이 얽매인 것이 마치 가죽 주머니에 있는 것과 같으며, 그의 어머니가 음식을 많이 먹거나, 혹은 적게 먹거나 단 것을 먹거나 떫은 것을 먹거나 마른 것을 먹거나 기름진 것을 먹거나 맵고 짜고 쓰고 시고 차고 더운 음식을 먹을 때에, 혹은 또 음행을 할 때에 또는 급하게 다니고 뛰고 머뭇거리거나 오래 누어 있거나 오래 앉아 있거나 할 때에는 모두가 고통을 받게 되나니, 그러므로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이러한 고통으로 핍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지금 간략하게 인간에 대하여 말하면서도 오히려 그렇거늘 하물며 지옥이야 비유하기도 어렵느니라. 그 누가 지혜 있는 이라면 나고 죽는 바다에서 이러한 몸을 좋아하겠느냐.

 

스물 여덟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여덟 가지 뒤바뀐 생각을 내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이냐 하면, 첫째는 말을 타고 있다는 생각이요, 둘째는 누각에 있다는 생각이며, 셋째는 평상이나 탑위에 있다는 생각이요, 넷째는 물이 흐른다는 생각이며, 다섯째는 못가에서 있다는 생각이요, 여섯째는 강가에서 있다는 생각이며, 일곱째는 동산에 있다는 생각이요, 여덟 번째는 울 안에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니, 이것을 여덟 가지 생각이라 하느니라.

 

스물 아홉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화조(花條)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 안의 몸빛이 윤택하게 되고 모든 모양이 분명하여지며, 모두가 과거에 지었던 모든 업의 차별과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형류(形類)를 따라 갖가지 빛이 생기게 되나니, 혹은 흰 빛이 되기도 하고 혹은 검은 빛이 되기도 하며 혹은 희지도 검지도 않은 빛이 되기도 하고 혹은 푸른 빛이 되기도 하며, 혹은 바짝 마른 빛이 되기도 하고 혹은 윤택한 빛이 되기도 하는 등 이러한 색상(色相)을 이루게 되느니라.

 

서른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철구(鐵口)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머리칼과 털과 손 · 발톱이 모두 더욱더 자라게 되며 또한 희고 검은 모든 빛을 나타나게 하나니, 업연(業緣)을 따라 이런 모양이 생기게 되느니라.

 

서른 한 번째의 칠 일 동안과 나아가 서른 다섯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몸의 모양이 커지고 점점 불어나며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게 되느니라.

 

서른 여섯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며 즐겁다고 여기지 않게 되느니라.

 

서른 일곱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에는 다섯 가지 뒤바뀌지 않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이냐 하면, 첫째는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이요, 둘째는 냄새가 나고 더럽다는 생각이며, 셋째는 옥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요, 넷째는 검고 어둡다는 생각이며, 다섯째는 싫고 밉다는 생각이니, 그 아이는 태 안에 있으면서 이러한 싫증내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서른 여덟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다시 감응하여 생기는 업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이 구연(拘緣)이라 하는데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곧 회전(廻轉)하게 되느니라. 또 하나의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취하(趣下)라 하는데 그 몸의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두 팔을 길게 펴면서 점점 출생하려 하게 되느니라.

 

그러나 이 아이가 혹은 전세에 일찍이 낙태(落胎)의 업을 쌓았었다면 이 아이의 몸과 손발이 자유자재하게 움직일 수 없게 되나니, 나쁜 업연 때문에 어머니의 뱃속에서 죽게 되고 그 어머니는 이때 큰 고통을 받게 되며 혹은 목숨을 마치게도 되느니라. 만일 전세에 모든 선업을 지었거나 오래 살 인(因)을 지었었으면 태어나려 할 때에 어머니와 아이는 편안하게 되고 위에서와 같은 악업에서 받는 모든 고통이 없느니라.

 

서른 여덟 번째의 칠 일 동안을 지난 뒤에 태 안에서 나오려 할 당시는 갖가지 고통을 받고서야 태어나게 되나니, 그러므로 이 몸을 받는다는 것이 실로 큰 고통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처음 태에서 나올 당시는 남자건 여자건 막 태어나 땅에 떨어지면 혹은 손으로 받치기도 하고 혹은 옷으로 대서 받아 혹은 평상에 놓아 두기도 하고 혹은 집 안에 놓아 두기도 하며, 혹은 땅 위에 놓아 두기도 하고 혹은 멀리 집 밖에 놓아 두기도 하며 혹은 햇빛 속에 놓아 두기도 하고 혹은 겨울철 여름철에 춥고 더운 바람이 이 몸에 닿기도 하는 등 이러한 때에 처음 태어나 받는 큰 고통을 마치 소를 산 채로 껍질을 벗기면서 담장 벽에다 붙박아 놓은 것과 같으며, 혹은 또 집 밖이면 그 있는 곳에서 벌레에 뜯김은 역시 어떤 사람이 모기와 등에 등의 모든 벌레에 뜯기는 것과 같으며, 게다가 몽둥이와 회초리로 때리고 치는 것과 같나니라. 그리고 처음 태에서 나온 뒤에 따뜻한 물로 그 몸을 씻어 줄 때에 받게 되는 고통도 그와 같으며, 아이가 태어나서 점점 자랄 때에는 어머니 몸에서 나오는 피로 된 젖을 먹고 자라게 되느니라.

 

나는 나머지 모든 경전에서 먼저 이미 자세하게 설명하였었나니, 그러므로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몸은 모두가 부정(不淨)하고 많은 고통으로 이루어졌나니, 그 누가 지혜가 있는 이면 나고 죽는 가운데서 이와 같은 몸을 사랑하거나 좋아하겠느냐.

 

또 아난아, 처음 태 안에서 나와 칠 일을 지나면 팔만 마리의 벌레(九蟲)가 몸으로부터 생기어 여기저기서 뜯어먹느니라. 지발(舐髮)이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머리칼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머리칼을 뜯어먹고 또 두 마리의 벌레는 눈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눈을 뜯어 먹으며 안승(鞍乘) · 유악(有腭) · 발병(發病) · 원만(圓滿)이라는 네 마리의 벌레는 머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머리를 뜯어먹고 흑도엽(黑稻葉)이라는 벌레는 귀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귀를 뜯어먹느니라.

 

또 장구(藏口)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코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코를 뜯어먹고 요척(遙擲)이라는 벌레와 변척(遍擲)이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입술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입술을 쪼아 먹으며, 침구(針口)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혀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혀를 뜯어먹고 이구(利口)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혀 뿌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혀의 뿌리를 뜯어먹으며 수원(手圓)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턱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턱을 뜯어먹고 수망(手網)이라는 벌레와 반굴(半屈)이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손바닥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손바닥을 뜯어먹느니라.

 

또 원비(遠臂)라는 벌레와 근비(近臂)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팔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팔을 뜯어먹고 철(鐵)이라는 벌레와 근철(近鐵)이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목구멍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목구멍을 뜯어먹으며, 금강(金剛)이라는 벌레와 대금강(大金剛)이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염통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염통을 뜯어먹고 이(羸)라는 벌레와 이구(羸口)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살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살을 뜯어먹으며, 구색(具色)이라는 벌레와 구칭(具稱)이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피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피를 빨아 먹느니라.

 

또 용건(勇健)이라는 벌레와 향구(香口)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힘줄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힘줄을 뜯어먹고 불고(不高)라는 벌레와 하구(下口)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등골뼈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등골뼈를 뜯어먹으며, 지색(脂色)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비계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비계를 뜯어먹고 황색(黃色)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쓸개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쓸개를 뜯어먹느니라.

 

또 진주(眞珠)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폐(肺)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폐를 뜯어먹고 적(荻)이라는 한 마리의 벌레는 지라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지라를 뜯어먹으며, 월(月)이라는 일백 마리의 벌레와 월구(月口)라는 일백 마리의 벌레와 휘요(輝耀)라는 일백 마리의 벌레와 휘면(輝面)이라는 일백 마리의 벌레와 광대(廣大)라는 일백 마리의 벌레 등 합하여 오백 마리의 벌레는 왼편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왼편을 뜯어먹고, 또다른 이러한 이름을 가진 오백 마리의 벌레가 오른편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오른편을 뜯어먹느니라.

 

또 소천(少穿)이라는 벌레와 대천(大穿)이라는 벌레와 골천(骨穿)이라는 벌레와 골면(骨面)이라는 이 네 마리의 벌레는 뼈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뼈를 뜯어먹고 대백(大白)이라는 벌레와 소백(小白)이라는 벌레와 흡력(吸力)이라는 벌레와 호도(虎道)라는 이 네 마리의 벌레는 맥(脈)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맥을 뜯어먹으며, 의요(意樂)라는 벌레와 사자력(師子力)이라는 벌레와 토복(兎腹)이라는 벌레와 탐욕(耽欲)이라는 이 네 마리의 벌레는 생장(生藏)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생장을 뜯어먹느니라.

 

또 용맹(勇猛)이라는 벌레와 용맹주(勇猛主)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숙장(熟藏)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숙장을 뜯어먹고 염구(鹽口)라는 벌레와 망구(網口)라는 벌레와 온구(蘊口)라는 벌레와 조구(鳥口)라는 이 네 마리의 벌레는 소변보는 곳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소변보는 곳을 뜯어먹으며, 응작(應作)이라는 벌레와 대작(大作)이라는 벌레와 쇄말(碎末)이라는 벌레와 억추(臆皺)라는 이 네 마리의 벌레는 대변보는 곳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대변보는 곳을 뜯어먹느니라.

 

또 흑면(黑面)이라는 벌레와 가외면(可畏面)이라는 두 마리의 벌레는 넓적다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넓적다리를 뜯어먹고 질뢰(疾癩)라는 벌레와 소뢰(小癩)라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무릎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무릎을 뜯어먹으며, 우근(愚根)이라는 벌레는 어깨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어깨를 뜯어먹고 흑두(黑頭)라는 벌레는 다리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다리를 뜯어먹느니라.

 

아난아, 나는 지금 너희들을 위하여 팔만 마리의 벌레가 이 몸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밤낮으로 뜯어먹고 있음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나니, 이로 말미암아 또한 기력이 허약해지고 얼굴이 초췌하게 되며 갖가지 병고(病苦)가 이 몸에 모두 모이고 또 그 마음으로 하여금 근심과 슬픔이 생기며, 뜨거운 고뇌에 시달리게 되느니라. 비록 훌륭한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미혹되어서 어느 약으로 이런 병을 다스려야 할 지를 모르는 것이니,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나고 죽는 바다에서 이러한 몸을 사랑하거나 좋아하겠느냐.

 

또 아난아,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장대(長大)해지기까지 옷과 음식으로 돕고 길러 이 몸을 성립시키지만, 그러나 그 수명은 혹은 백 년을 살기도 하고 혹은 그보다 짧게 살기도 하느니라. 그 백 년 동안에는 삼백의 계절(時)이 있나니, 그것은 봄과 여름과 겨울이니라. 봄은 더운 계절이요, 여름은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며, 겨울은 추운 계절이니라. 이 세 개의 계절에는 각각 넉 달씩이 있으므로 일 년은 열 두 달이 되고 백 년은 천 이백 달이 되며 흑월(黑月)과 백월(白月)로 치면 이천 사백이요 이렇게 지나게 되는 밤과 낮은 삼만 육천이니라.

 

하루에 두 끼를 먹으면 칠만 이천 끼인데 혹은 먹지 않는다 해도 그 수(數)는 마찬가지이니, 혹은 병이 들어서 혹은 술에 취하여 어떤 때는 먹지 않아서 혹은 성을 내고 잠을 자고 희롱을 하다가 굶고, 그 밖의 다른 사무 때문에 또는 어머니의 젖을 먹는 때 등이 그것이니라. 이러한 인연들을 먹지 않는다(不食)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몸이 비록 백 년 동안을 산다 하더라도 반드시 닳아서 없어지고 말거늘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나고 죽는 바다를 좋아하겠느냐.

 

또 아난아, 이 몸을 받으면 두 가지 괴로움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이냐 하면, 하나는 많은 질병이 몸에 모이는 것을 안의 괴로움(內苦)이라 하고, 둘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에게 시달리는 것을 바깥의 괴로움(外苦)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많은 질병이 몸에 모인다 하는가 하면, 눈 · 귀 · 코 · 혀 · 목구멍 · 이 · 가슴 · 배 및 손발에 모든 병이 생기는 것이요, 혹은 또 중풍과 간질로 눈물과 침을 흘리는 병 · 미친 병 · 간소병(乾消病) · 상기(上氣) · 폐역(肺逆) · 소변의 임력(小便淋瀝) · 몸 · 문둥병 · 종기 · 현벽(痃癖) · 치질 및 악창으로 인한 고름과 피 · 전한(煎寒) · 장열(壯熱) 등 갖가지 모든 병이 이 몸에 모두 모여드는 것이니라.

 

또 일백 한 가지 종류의 심황(心黃)병과 일백한 가지의 풍병(風病)과 일백 한 가지의 담병(痰病)이 있고 이 풍병 · 심황병 · 담병이 함께 합쳐 생긴 병에 다시 일백 한 가지가 있나니, 이와 같은 사백 네 병(病)이 그 몸을 몹시 괴롭히므로 이것을 안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또 바깥의 괴로움이 있어서 이 몸에 해를 끼치나니, 혹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으며 쇠고랑 · 차꼬 · 칼 · 쇠사슬 등을 차게 되는 모든 괴로움을 당하기도 하고 혹은 귀와 코를 베이고 손발을 잘리고 머리를 끊기기도 하며, 모든 천신들의 수호를 받지도 못하여 곧 사람 아닌 이와 모든 악귀 · 야차 · 나찰 등에게 그 틈을 주거나 또는 모기 · 등에 · 벌 등 독충에게 빨아 먹히며,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이며 바람과 비가 한꺼번에 닥치는 등 갖가지의 괴로움으로 이 몸이 시달리게 되느니라.

 

인간에서도 오히려 그렇거늘 하물며 악도(惡道)이겠느냐. 말로는 이루 다하기 어렵느니라. 그러므로 이 모두는 과거에 착하지 않은 업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과보를 받는 것임을 알아야 할지니라. 가령 칼과 몽둥이에 해를 당할까 염려하여 모든 성벽(城壁)과 담장을 쌓아 놓고 그 몸을 방위한다 해도, 또 모진 바람과 비와 모기와 등에며 벌들 때문에 집을 구하여 들어간다 해도, 또 사백 사병의 안의 괴로움과 바깥의 괴로움 때문에 음식 · 침구 · 의약 · 전원(田園) · 실택(室宅) 및 금 · 은의 칠보(七寶)와 노비 · 탈 것 등 살림 도구를 구하여 필요한 대로 공급한다 해도 끝내 재물을 얻은 뒤에 간탐을 부리고 애착하고 아끼면서 늘 힘을 더하여 수호한다 해도 때로는 흩어지고 잃어버려 또다른 큰 고통을 부르게 되느니라.

 

아난아, 이 오음(五陰)으로 된 몸의 낱낱의 위의로써 가고 서고 앉고 눕는 것마다 모두가 괴롭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잠시도 휴식하지 못하는 것을 곧 괴로움이라 하며, 서고 앉고 눕는 것도 각각 오랫동안 하면 모두가 괴로운 것이니라. 만일 오랫동안 가다가 잠시만이라도 서게 되면 즐거운 마음이 생기기는 하나 실은 즐거운 것이 아니요, 오랫동안 섰다가 잠시만이라도 앉게 되거나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잠시만이라도 눕게 되면 부질없는 즐거운 생각이 생기기는 하나 실은 즐거운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이 오음으로 된 몸은 모두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또 어떤 사람이 혹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고 혹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하고 혹은 자기와 남이 똑같이 이익이 되기를 위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은 모든 괴로움을 싫어하여 집을 떠나 닦고 배우면서 열반과 해탈의 법을 헛되이 버리지 않게 해야 하며, 만일 또 어떤 사람이 혹은 의복 · 침구 · 의약 등 살림 도구를 이 사람에게 공양하게 되면 큰 과보와 위덕과 명문(名聞)을 얻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色)은 항상한(常) 것이냐, 항상함이 없는(無常) 것이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물질은 항상함이 없는 것이옵니다.”

 

“만일 항상함이 없다면 이것은 괴로운(苦) 것이냐, 괴롭지 않은 것이냐.”

 

“물질은 곧 괴로운 것이옵니다.”

 

“만일 항상함도 없고 오직 괴로운 것이라면 이것은 부서지고 무너지는 법이니, 만일 견문이 많은 성인 제자라면 이런 말을 들은 뒤에 이러한 물질인 이 몸에 대하여 곧 <나>(我)와 내 것(我所)이라고 집착하겠느냐.”

 

“집착하지 않으리이다. 세존이시여, 물질 가운데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나이다.”

 

“또 아난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느낌(受) · 생각(想) · 지어감(行) · 의식(識)은 항상한 것이냐, 항상함이 없는 것이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항상함이 없는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항상함이 없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이냐, 괴롭지 않은 것이냐.”

 

“이와 같은 사음(四陰)은 곧 괴로운 것이라 하나이다.”

 

“만일 항상함도 없고 오직 괴로운 것이라면 이것은 부서지고 무너지는 법이니, 만일 견문이 많은 모든 성인 제자라면 이런 말을 들은 뒤에 이러한 사음인 이 몸에 대하여 곧 <나>와 내 것이라고 집착하겠느냐.”

 

“집착하지 않으리이다. 세존이시여, 이 사음에는 실로 <나>와 내 것이 없나이다.”

 

“또 아난아, 이와 같이 <나>라는 것은 과거 · 미래 · 현재에도 있지 않으며 안과 바깥과 거친 것과 미세한 것과 훌륭한 것과 하열한 것과 가까운 것과 먼 것 등 저 모든 법에도 <나>와 내 것은 있지 않느니라.”

 

“아난아, 그러므로 여실지(如實智)로써 관찰하여 모든 법에는 <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명문(名聞)이 있는 성인 제자라면 이런 관찰을 지은 뒤에는 곧 싫증을 내면서 해탈과 마지막 열반을 얻게 되리니, 이와 같이 닦고 배워서 이러한 법을 증득할 때는 생(生)의 분한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벌써 확립되며 할 일을 다 마치고 후생의 몸(後有)을 받지 않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존자 아난은 티끌을 멀리하고(遠塵) 때를 여의어(離垢) 법 눈의 청정함을 얻었고 오백의 비구들은 모든 법을 받지 않고 번뇌가 다하여 뜻이 풀렸으며, 그때에 모든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면서 믿어 받고 행하였다.

 

출전 : 보적부3(한글대장경 98)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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