悟道歌(경허스님)

悟道歌

근와(槿瓦) 2014. 11. 29. 00:04

경허스님 [약보(畧譜)]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사(師)의 성은 송(宋)씨이며 법명은 성우(惺牛)요, 처음 이름은 동욱(東旭)이고 호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지금(1918.9.2)으로부터 94년 전 기유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두옥이요, 어머니는 밀양 박씨였다. 태어난 후 사흘 동안 울지 않으니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여겼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에 올라와선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맡겨져 계허(桂虛)대사에 의해 축발(祝髮)하고 계를 받았다.(나이들면서) 일의일발(一衣一鉢)의 텅빈 마음으로 소연(蕭然)히 운수행각하고도 싶었으나 나뭇지게 지고 물을 길으며 부처님을 공양하고 스승을 모시기에 자신을 위하여 마음대로 독서할 겨를도 없었다.

 

14세 때였다. 마침 절에 어느 선비가 머물렀다. 그는 여름을 지내면서 여가 때마다 공부를 하는데 (師가) 지나치며 보게 되면 외워버리고 듣게 되면 문리(文理)를 해석할 정도로 크게 진척되었다. 얼마 안되어 계허 스승이 환속하면서 사(師)를 대성시키지 못함을 애석하게 여기고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萬化)강백에게 추천하였다. 師는 만화 강백의 처소에서 일대시교(一大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하나를 하면 자신은 열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열을 하게 되면 자신은 백을 하게 되어 내외전(內外典)을 널리 섭렵하였는데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명성이 팔도에 떨쳤다.

23세 때에 대중들이 갈망하여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사방의 학인들이 물밀듯이 동학사로 모여들었다.

 

31세 때 여름에 師는 문득 계허 스승이 앞서 권속으로 아껴주던 정분을 생각하고선 한번 찾아뵈려 대중들에게 이르고 길을 나섰다. 중도(천안 인근)에 갑자기 폭풍과 소나기를 만나 황급히 촌가에 들어가 풍우를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주인이 급박하게 쫓아내며 허락하지 않았다. 한 마을 수십 집이 집집마다 다 그러했다. 그 연유를 묻자 “지금 전염병이 크게 치성(熾盛)하여 병에 걸리기만 하면 서있다가도 죽어나니 어찌 감히 손님을 맞이하겠습니까?”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師는 그 말을 듣고 심신이 두려워 떨었는데 마치 삶이 죽음의 절벽에 부딪힌 듯한 느낌을 받으며 문자(文字)가 생사(生死)문제를 면하게 할 수 없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곧바로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동학사로 돌아온 후 학인들을 해산시켰다.

즉시 폐문하고 단좌(端坐)하여 오로지 영운(靈雲)선사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驪事未去 馬事到來)’란 화두를 참구하며 허벅지를 찌르고 머리를 두드려서 수마(睡魔)를 물리쳤다. 일념(一念)의 만년이요, 만년의 일념으로 상즉(相卽)하여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대하고 앉아 이같이 세 달을 하니 萬機(마음의 온갖 기근)가 이미 익었다.

이 무렵 (귀전에 흘러든) 어느 납승의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을 뚫을 곳이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는 말에 사(師)는 “언하(言下)에 대지가 평평하다가 푹 꺼지고, 물아구망(物我俱忘)하며, 백천법문(百千法門)의 무량한 묘의(妙義)가 그대로 얼음 녹듯이 녹아버림을 느꼈다.”

 

때는 바로 기묘(己卯. 1939)년 동짓달 보름쯤이었다. 이로부터 육신을 초탈(超脫)하여 조그만 일에도 매이지 않고 임운등등(任運騰騰)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였다.

32세 때 홍주 천장암(天藏庵)에서 주석하면서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별히 전등(傳燈)의 연원을 밝혔는데 곧 당신은 용암(龍巖)화상에게서 법을 이었으니 청허휴정(淸虛休靜)으로부터 7세손이 된다고 하였다. 그때부터 홍주의 천장암과 서산(瑞山)의 개심사(開心寺)와 부석사(浮石寺) 등지를 오가면서 어떤 때는 명상하고 좌선하며 어떤 때는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떨쳤다.

51세에 합천 해인사(海印寺)에 가니 절에서는 마침 칙명의 인경(印經)불사와 새로 수선사(修禪寺)를 설치하는 일이 있었다. 대중들이 師를 추대하여 법주가 되었다.

54세에 동래 범어사(梵魚寺) 금강암과 마하사(摩訶寺)의 나한(羅漢) 개분(改粉)불사의 증명이 되었다.

 

56세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지나 안변 석왕사(釋王寺)에 도착하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이 되었다. 그 후 세상을 피하고 이름을 숨기고자 갑산(甲山) 강계(江界) 등지에 잠적하였다. 스스로 난주(蘭州)라 호를 짓고 머리를 길러 유관을 쓰고 바라문신을 드러내었으며 만행두타(萬行頭陀)하고 흙탕물에도 들어가 인연 따라 행화(行化)하였다.

64세 때 임자(壬子)년 4월 25일 병 없이 갑산 웅이방(熊耳坊)의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하니 법랍(法臘)이

56세시다.

 

이상의 약보는 자세히 전해진 것이 아니다. 다만 뒷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부분들과 내가 평소에 들은 자료들인데 혹시 빠지고 흘려버린 것들이 있을 것이기에 ‘약보’라 하였으니 독자들의 양해를 바랄 뿐이다.

 

                                                                                                            한용운(韓龍雲) 찬

 

 

悟道歌[도를 깨치고 부르는 노래(경허 성우 지음)]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으니

가사와 바루는 누구에게 전하랴

가사와 바루는 누구에게 전하랴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도다

봄동산엔 꽃들이 화사한데 뭇새들 노래부르고, 가을밤엔 달도 밝고 바람은 서늘하도다. 바로 이러한 시절에 무생법인(無生法忍)의 노래 한 곡을 몇 번이나 부르건만, 이 한 곡조 노래여! 아는 사람이 없구나.

시절탓이뇨? 운수가 그러하뇨? 아하 어찌하랴! 저 산빛은 문수보살의 눈빛이요, 흐르는 물소리는 관세음보살의 귀이고, 소를 부르고 말을 부르는 것은 바로 보현보살이며,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다 본래 비로자나불이로다.

부처님과 조사님네 이름을 부르고 선(禪)과 교(敎)를 말한다마는, 무얼 그리 별다르게 분별심을 내는가? ‘돌장승이 피리를 불어대는데 목마(木馬)는 졸고 있네.’

 

범부는 자기자신의 본래 성품을 알지 못하여 “성인의 경계는 나의 분수가 아니다”고 말한다.

가련하구나! 이런 사람들은 지옥의 찌꺼기일 뿐이다. 나의 전생의 일을 돌이켜 추억해보니 태(胎) · 난(卵) · 습(濕) · 화(化)의 사생(四生)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간 · 천취인 육도(六途)의 험한 길에서 장구한 겁(劫)동안 윤회를 거듭하며 받아온 괴롭고 쓰디쓴 업보가 지금 눈앞에 대하고 보듯이 분명한데, 사람들로 하여금 (幸苦의 삶을) 견뎌 살게 할 수 없잖은가.

다행히 전세부터의 인연이 있기에 사람으로서 장부가 되어 출가하여 도(道)를 깨치니, 네 가지 얻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도 빠진 것이 없도다.

 

(이렇게) 희언하는 사람이 있었다.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지” 하자, 언하(言下)에 나의 본래 마음을 깨치니 이름도 공(空)하고 상(相) 또한 공한데 공인 허적처(虛寂處)에 광명이 사무치는구나.

이로부터 한 번 들으면 곧 천 가지가 깨쳐지니 눈앞은 고월(孤月)이 밝히는 적광토(寂光土)요, 광배(光背)로 드러나는 정신계는 금강반야의 세계로세.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의 사대(四大)와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오음(五陰)의 허망성이 바로 청정법신이요, 극락국토는 확탕지옥과 한빙지옥이요, 화장세계는 검수지옥과 도산지옥이요, 법성토(法性土)는 썩은 흙과 똥무더기요, 삼천대천세계는 개미굴이며 모기의 속눈썹이요, 삼신(三身)과 사지(四智)는 저 허공과 만상삼라(萬像森羅)인지라, 눈길이 닿는 곳은 본래 천연한 진여(眞如)이니 너무 기이하구나! 너무 기이해!

솔바람이 시원하니 사방이 청산이요, 가을달이 밝으니 온하늘은 물같이 푸르구나. 노란꽃 푸른대나무와 앵무새의 지저귐, 제비의 지지배배소리는 항상 그렇게 대용(大用)하여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도다.

세간의 천자(天子)가 되라 한들 어찌 취하겠는가? 평지에 이는 파도요, 저 구천(九天)에 있는 옥도장이로다. 참으로 괴이하구나. 해골 안에 있는 눈동자여! 한량없는 부처와 조사들이 늘상 눈앞에서 거닐고 있으니 풀이나 나무들, 기왓장이나 돌들이 바로 화엄(華嚴)이요, 법화(法華)의 모습일세.

 

나는 항상 설하노니, 행주좌와(行住坐臥)에는 따로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음을. 이는 나의 망령된 말이 아니다. 지옥이 변하여 천당이 이뤄지니 모두 자유자재한 나의 작용이며, 백천 법문(法門)의 무량한 뜻은 흡사 꿈에서 깨는 것이 연꽃이 피는 것과 같구나.

이변(二邊)과 삼제(三際)를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시방세계는 (안과) 밖이 없이 광명만이 사무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대법왕(大法王)이기에 법(法)에 대하여 모두 자유자재하도다. 옳고 그름과 좋아하고 미워함에 어찌 걸리고 가림이 있겠는가?

 

지혜 없는 사람은 이 말을 듣고서 내가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하여 믿지 않고 또한 따르지도 않겠지만, 만일 귀가 뚫린 운수객(雲水客)이라도 있어서 잘 알고 믿어 의심이 없다면 바로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얻을 것이다.

각별히 세상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하노니 ‘한 번 사람 몸(身)을 잃어버리면 만겁을 지내더라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덧없는 목숨(命)은 아침에 저녁일을 알 겨를이 없는데 저 눈먼 나귀는 저기도 이와 같고 여기도 이와 같은데 어찌 나에게 와서 무생일곡가(無生一曲歌)를 배우지 않는가? 어찌 나에게 와서 인천(人天)의 대장부가 되려하지 않는가?

내가 이와 같이 애써 입을 놀려 두 번 세 번 당부하는 것은 일찍이 방랑자가 되어 보았기에 오로지 운수객을 가련히 여기기 때문에서이다.

 

오호라.

가사와 바루는 누구에게 전하랴.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도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도다.

가사와 바루는 누구에게 전하랴. 게송으로 이른다.

‘콧구멍을 뚫을 곳이 없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언하에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몰록 깨쳤네.

해는 유월, 연암산 아랫녘 길 지나노라니

야인(野人)은 일없이 태평하게 노래 부르네. -終-

 

 

출전 : 초발심자경문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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