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 비판

근와(槿瓦) 2017. 3. 19. 00:06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 비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지금까지 대승경전의 입장에서 선()과 교()를 통하여 일관된 최고원리가 중도사상(中道思想)이라는 것을 설명해 왔는데 대중들도 이해했을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큰 문제가 하나 붙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원시경전이든 대승경전이든 모두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믿고 경전 그 자체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문이 발달되고 불교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들의 성립시기가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법화경이나 화엄경의 범어본(梵語本)을 언어학적, 문법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이 경전들이 부처님 당시에 성립된 것이 아니라 부처님 돌아가신 후 5~6세기 뒤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조스님께서도 부처님 돌아가신 후 천여 년 뒤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면 내가 지금까지 부처님 근본사상은 중도(中道)라고 법문한 것이 부처님 뜻과는 관계없는 거짓말이 되어 버리고 말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당시에 친히 하신 말씀의 기록이 아니라 돌아가신 지 5~6백년 뒤에 성립된 경전을 인용하여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경전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불교계가 크게 당황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라 합니다. 이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의 주장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경전 연구를 거듭한 결과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경전은 아니다고 하는 확증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불교의 초기경전으로 대 · 소승에서 함께 인정하는 아함경(阿含經)은 모두 다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경전인가 하고 연구해 보니 그 아함경조차도 모두 다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버리니 불교를 어디 가서 찾아야 될지 모르게 되어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살아계시다면 물어나 보겠는데 그럴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학문적으로 곤란한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학자인 우정백수(宇井伯壽)라는 분이 어떻게 해야만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알 수 있겠느냐하는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중요한 사적(史積)을 기초로 삼고, 둘째 부처님 당시의 인도 일반 사상을 참고하고, 셋째 원시경전 가운데서 제일 오래된 부분이라고 인정되는 것을 종합하면 이것만은 꼭 부처님이 설했으리라고 믿어지는 공통된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원칙들을 기둥삼고 부처님의 근본불교를 알려고 우리가 노력해야지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如是我聞)’고 시작한다고 해서 모두 다 부처님이 친히 설한 경전이라고 알아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리하여 다시 학자들이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연구하여 보니 초기의 원시경전인 아함경도 아니고 대승경전도 아니고 율장(律藏)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율장을 보면 시대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나 문법학적으로나 부처님 당시부터의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 내려온 것으로서 혹 중간에 가필한 내용이 더러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봐서는 가장 부처님 말씀에 정확하지 않은가 하고 학자들이 판단을 내렸습니다. 율장 가운데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학자들은 통칭하여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합니다. 이 초전법륜이 불교에 있어서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학자는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 율장의 초전법륜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世尊)이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출가자는 이변(二邊)에 친근치 말지니 고()와 낙()이니라. 여래도 이 이변을 버린 중도를 정등각(正等覺)이라 한다.

 

출가(出家)라는 것은 꼭 불교의 승려가 되는 것만이 아니고 인도 당시에는 집을 나가 도를 닦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도를 전념으로 닦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변에 집착해서는 안되니 예를 들면 고()와 낙()이라는 것입니다. 이변이라 하면 시 · , · , · 무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어째서 고와 낙을 예로 들었느냐 하면 부처님 당시 실정에 비춰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수행자들은 대부분이 고행주의자였으며 다섯 비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행주의자(苦行主義者)란 세상의 향락을 버리고 자기 육신을 괴롭게 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병을 따라 약을 주듯이 고행주의자들인 다섯 비구에게 고와 낙을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이 세상의 향락만 버릴 줄 알고 고행하는 이 괴로움()도 병인 줄 모르고 버리지 못하지만, 참으로 해탈하려면 고와 낙을 다 버려야 한다. 이변을 버려야만 중도를 바로 깨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변을 버리고 중도를 정등각하였다는 이 초전법륜이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부처님의 근본법이라고 확증하고 있으며 이것을 부처님의 중도대선언(中道大宣言)’이라고 합니다.

이 중도대선언은 남전대장경율부(律部)경전에 있는 것을 인용하였고, 한역(漢譯) 오분율(五分律) · 사분율(四分律) 등에도 기록되어 있으나 남전대장경과 같이 명백하고 정확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깨치신 것이 이변을 떠난 중도라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봅니다.

세계의 어느 불교학자이든간에 율장의 초전법륜편의 중도대선언을 불교의 근본 출발점으로 삼는데, 혹 또 논란하기를 경전성립사적으로 보아서 율장보다도 더 앞선 경전의 하나인 숫타니파아타에서도 중도를 설명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숫타니파아타의 피안도품(彼岸道品)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양 극단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불교의 근본이 중도사상에 있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가 부처님 돌아가신 후 몇 백년 뒤에 성립되었든간에 어떤 경전이든 중도사상에 입각해서 설법되어져 있다면 그것은 부처님 법이고 그렇지 않다면 부처님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앞에서 말한 천태종이나 화엄종이나 선종 등이 중도를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그대로 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학자들이 잘 몰라서 대승불교를 의심하고 소승불교만이 부처님 불교가 아닌가 하고 연구해 보았지만 부처님의 근본불교가 중도사상에 있다는 것이 판명된 뒤에는 대승비불설은 학계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이론은 일본의 명치(明治)말엽에서 대정(大正)초기인 20세기 초엽에 성행했습니다.

 

그러면 인도에 있어서 용수(龍樹)보살이나 마명(馬鳴)보살이 주창한 대승불교운동(大乘佛敎運動)이란 무엇인가? 대승비불설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대승불교는 용수보살 자신의 불교이지 부처님 불교는 아니라고 하여 소승불교만이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불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근본불교가 중도에 있다는 것이 학문적으로 판명됨으로 해서 그런 주장은 다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용수보살이 주장한 대승불교의 근본 뜻이 어디에 있었느냐 하면 그때까지 있었던 부파불교에서 벗어나 바로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근본불교로의 복구운동이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세월이 지나면서 제자들이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되면서 각자의 교리를 주장하게 되는데 이 시대를 불교사적으로 부파불교시대(部派佛敎時代)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는 18개 또는 20개 부파의 불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각 파가 각기 자기의 주장을 펴서 이것이 불교다 저것이 불교다 하여 논쟁을 많이 하였지만 모두 어느 한쪽에 집착한 변견이었으니 이것이 소승불교입니다.

 

그 주장들을 대체로 보면 영원한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유견(有見)과 없다는 무견(無見)으로 갈라졌는데 대중부(大衆部)계통에서는 무견(無見)을 주장하는 파가 좀 있기는 있어도 상좌부(上座部)계통에서는 모두가 유견(有見)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부파불교인 소승불교시대에 있어서는 변견으로 근본을 삼았고 소승경전도 그 당시 자기네들이 편집하였고 또 전해 내려오면서 많이 가필(加筆)하고 개필(改筆)하였습니다. 이것이 저간의 사정이었습니다.

 

용수보살이 대승불교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삿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破邪顯正)’는 것이었습니다. 즉 유견(有見)이 아니면 무견(無見)인 소승불교의 삿된 변견을 부숴버리고 부처님의 바른 견해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나선 것이 용수보살의 근본 목적이며 사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용수보살은 중론(中論)대지도론(大智度論)을 저술하여 부처님의 근본사상인 중도를 천양하였습니다. 중도! 이것만이 부처님의 정통사상이라고 주장하여 그의 제자 제바존자(提婆尊者)와 같이 부파불교의 추종자들과 논쟁을 벌여 변견을 부숴버리고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복구시키기 위해서 활약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승경전이란 시대적으로 봐서는 혹 부처님과 5 · 6 백년의 차이가 있다 하여도 사상적으로 봐서는 부처님 근본사상을 정통적으로 계승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승불교는 정통이 아니며 대승불교가 정통인 것입니다.


하나 덧붙일 것은 시대적으로 보아서 불교를 원시불교(原始佛敎) · 부파불교(部派佛敎) · 대승불교(大乘佛敎)로 나눕니다. 원시불교를 다시 부처님 당시와 직계 자제들이 있었던 불멸 후 30년까지를 대개 근본불교(根本佛敎)라 하고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후 백년까지를 협의의 원시불교라 합니다. 부파불교란 곧 소승불교로서 불멸 후 1세기부터 대승불교가 일어나기까지 4 · 5백년 사이를 말하고 또 대승불교는 서기전 1세기 무렵부터 일어난 새로운 불교를 말합니다.

 

근본불교인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인 소승불교인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부파불교시대에 있어서는 유견 아니면 무견, 무견 아니면 유견의 변견으로 각기 자기 교설을 주장한 소승불교로서 중도사상이 없는데 반하여, 근본불교는 중도사상에 입각하여 모든 교설이 설하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소승불교는 부처님 사상을 오해한 변질된 불교이며 정통의 불교는 아니라는 것은, 요즈음 와서 학자들이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 근본불교사상에 대한 연구 공적이 제일 큰 사람은 우정백수(宇井伯壽) 박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출전 : 백일법문 (성철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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