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교(印度敎)

탄트라밀교(~密敎)

근와(槿瓦) 2016. 12. 28. 00:30

탄트라밀교(~密敎)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대략 4~7세기 의 밀교 이전 단계를 雜部密敎라 하고 이것이 인도 밀교의 제1기이며, 그후 8세기 중엽까지의 대일경 · 금강정경으로 대표되는 순수밀교는 제2기이며, 이 순수밀교는 중국 · 한국 · 일본에 전파되었다. 그리고 8세기 후반부터는 밀교의 제3기 내지 말기가 시작되며 이것이 탄트라 밀교의 성립이다.


이 무렵의 인도에는 힌두교와 자이나교를 포함하여 탄트리즘이란 새로운 종교문화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탄트라라고 하는 것은 힌두교의 쉬바파 가운데 특히 性力(샤크티)을 숭배하는 집단의 문헌을 총칭하는 말이다. 5세기 경부터 성행하던 여신 숭배 과정을 거치면서 이들 여신은 점차 남신의 배필로 짝지워지며, 그에 따라서 여신들의 활동 에너지(샤크티)는 남편인 남신의 기능을 대행하게 된다.


철학적인 측면에서는 샤크티가 우주의 천계라든가 個我에 대한 구제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탄트리즘에도 물론 여러 가지 흐름이 있으나, 모두가 요가 행법을 통한 신비적 체험을 얻어서 절대자와 합일하는 경지에서 해탈을 구한다. 특히 佐道派에서는 인간이 육체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관련이 있는 특별한 행법이 개발되었다. 인간의 몸에는 미묘한 신경들이 무수하게 많이 통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몸의 중앙을 정수리에서 성기 및 항문을 연결하는 곳까지 달리고 있는 수습나라는 신경과 그 좌우를 달리는 두 줄기의 신경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줄기의 신경은 말단에 가서 중앙 신경의 맨 아래에 위치한 고리(바퀴, 차크라)부분과 접속되어 있다. 좌우 두 줄기의 주신경은 「핑갈라」와 「이다」라고 하며 이 밖에도 갖가지 상징적인 이름이 붙어 있다. 예컨대 해와 달, 난자와 정자, 갠지스와 야무나 등이 그것인데, 그들은 모두 일상 세계의 2원적 대립 관념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 세계는 차별과 대립의 세계로서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어 있는데, 그것은 生氣가 두 줄기의 신경을 돌아 다님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같은 2차원적 대립이 요가 행법에 의해서 통일이 되고, 또 좌우 양신경의 합류점, 즉 중앙 신경의 아래쪽에 그 생기가 집합하여 진정되었을 때, 비로소 대립 관념이 해소되어 불완전한 해탈이 이루어진다.


이때 중앙 신경 하부의 차크라에서 뱀 모양을 한 쿤달리니 샤크티가 깨어나게 되는데, 깨어난 샤크티는 중앙 신경의 도처에 산재해 있는 몇몇 고리를 통과하여 차례로 위쪽으로 올라가서 마침내 일체의 대립이 소멸된 완전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다. 이것이 대략적인 힌두 탄트리즘의 사고방식이다. 불교 중에서도 「사하자(sahaja)乘」은 탄트리즘과 거의 비숫한 관념과 행법을 쓰고 있는데, 각 술어에는 불교의 교리와 사상이 원융되어 있다. 예컨대 좌우 두 줄기의 신경은 각각 반야와 방편 내지 해와 달이라 불리는데, 이 반야와 방편으로 대표되는 작용이 중앙 신경의 최하부에서 합일될 때 비로소 보리심이 생겨난다고 한다. 이는 前期, 즉 순수 밀교에 있어서의 보리심이 지혜와 자비 및 반야의 방편으로 분리되기 어려우며, 따라서 양자는 일치되어 있다는 사고를 계승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리심 자체를 불완전한(조잡한) 깨달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sahaja 乘」의 교리는 밀교 내부에서 진행되어 온 실천적 사상의 변화와 발전의 자취를 잘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일어난 보리심은 최하부의 것을 포함한 4개의 차크라를 통과하면서 천천히 중앙 신경을 상승하여 제4의 차크라에 이르러 유무와 상대성을 떠난 무상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이를 大樂이라고 한다. 또한 반야와 방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2차적인 대립관념을 하나로 융합하여 보리심을 발생시키기 위한 의례로 남녀의 성교가 행해지기도 했다.


비속하고 외설적이며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아 온 이 탄트리즘은 곧 힌두교 탄트리즘의 좌도파로 불교에도 침투하였다. 온갖 오해와 억측을 불러 일으켰으면서도, 이 탄트리즘이 고차적인 신비주의에 입각한 수행법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그것이 해탈을 구하는 차원을 벗어나서 비속한 관습으로 전락된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탄트리즘을 밀교의 전부로 보고 탄트릭한 밀교를 인도 밀교 그 자체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탄트릭 밀교는 엄연히 인도 밀교 제3기의 총칭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이를 잡부밀교나 순수밀교에 대입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순수밀교는 많은 민간 신앙적 종교 관념과 의례가 혼합되어 있으며, 불교의 술어를 사용하고, 불교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수도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물론 종교적 차원에서는 출세간적 신비 체험을 설한 것이 분명하지만, 과연 탄트릭 밀교를 신앙이나 교리적 측면에서 불교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기본적으로 힌두 탄트리즘과 동일한 구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불교도로 자처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도에 있어서 불교의 최후 단계를 나타냈다.


불교의 본질적인 열반이나 출세간 차원의 관념 및 의례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힌두 탄트리즘과 동질화되었을 때, 불교는 불교로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힌두 세계로 흡수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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