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성품을 깨달아라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속리산 법주사가 있는 산내에 복천암(福泉庵)이 있다. 해방 몇해 전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 무렵 나는 복천암 선방에서 성철스님과 청담스님 두 분을 모시고 함께 참선에 열중해 있었다.
그때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은 불법의 오묘한 담론과 참선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서로 깊은 계합이 있어 서로들 아끼고 존경하는 도반이었다. 두 분은 촌음을 아끼어 선실에서 정진에 여념이 없었다.
성철, 청담 두 분의 수도정진의 고행이 얼마나 소문이 자자했던지 많은 관리들이 두분 선승들을 한번 친견하기가 원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뚜렷하지만, 보은군수가 여러 번 성철스님을 친견하고 법어를 듣고자 각종 방법을 통하여 시도하였으나 웬지 성철스님은 번번히 거절하고 선정 닦기에만 전념할 뿐이었다.
성철스님이 그렇다고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방선(放禪) 시간이나 삭발하고 목욕하며 쉬는 날이면 가난한 나뭇꾼이나 농부, 코흘리개 아이들과 만나게 되면 항상 자비로운 미소로 대하며「마음이 주인공」이라는 말씀을 알기쉽게 들려주곤 하였다. 그런데 웬지 관리들에게는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지금도 성철스님을 두고 느끼는 것은 사자(獅子)와 같은 느낌이 있으나, 젊은 시절은 더욱 그러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두 눈과 눈빛은 보통 사람들은 마주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형형한 빛을 발했다. 사자 같은 눈만이 아니다.
그 법체 또한 사자처럼 우람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었다. 목소리 또한 사자의 포효였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자신의 의복 빨래는 절대로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 사자 같은 장중한 선승이 빨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어느 날 시냇가에 쪼그리고 앉아 빨래를 하고 있는 성철스님이 하도 청승스러워 나는 한마디하고 말았다.
「큰스님, 빨래감을 나를 주시든지, 아니면 공양주 보살한테 맡기시지요. 빨래는 여자가 잘하잖습니까」
「옛끼!」
사자 같은 눈이 번쩍 빛나며 나무랐다.
성철스님의 빨래 솜씨는 형편 없었다. 때묻은 옷가지를 흘러가는 시냇물에 휘휘 몇 번 내젖고는 나뭇가지에 척 걸쳐 놓는다. 물기가 거의 마른다 싶으면 다른 스님들처럼 다리미질을 하지 않는다. 휙 걷어다가 자신의 발로 밟고서는 그냥 걸쳐 버린다. 나는 그때마다 그 빨래 솜씨에 비해 감히 면대하여 웃지 못하고 밖에 나가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저 고집이란.....핫, 핫하하.....
어느 봄날 아침 방선 시간이 되어 모두 방안에서 나오는데 법주사 큰절 스님들이 돌연 나타나 복천암 도량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어어, 웬일이야?」
큰절 대중이 암자까지 동원되어 청소한다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기에 복천암 대중은 놀랐다. 나는 청소하는 이유를 알아냈다.
「무슨 일이던가?」
성철스님이 물었다.
「오늘 정오쯤 총독부 모 국장이 복천암을 방문한답니다. 그래서 청소를.....」
「복천암은 왜 찾는가?」
「총독부 국장이 고명한 선승을 만나고 싶다하여 큰절 주지 스님은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을 소개하려 한답니다.」
「그래서 청소를 한다 이거군.」
「네, 그렇습니다.」
성철스님은 잠시 묵연히 하늘을 우러렀다.
이때 청담스님이 다가왔다. 나는 역시 청담스님에게 청소하는 이유를 보고했다. 묵연히 하늘을 우러르던 성철스님이 돌연 엉뚱한 제안을 해왔다.
「화창한 봄날이야. 하늘은 맑고 푸르군. 이런 날은 봄산에 올라 새로이 솟는 나물을 뜯는 게 좋겠어. 어때, 함께 가지 않겠나?」
성철스님은 나와 청담스님을 둘러 보았다.
나는 이내 성철스님의 봄나물 뜯으러 가자는 뜻을 눈치채고「예, 동행하겠습니다」하고 나물 캐는 도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때 청담스님은 손에 염주를 구을리며 머뭇거렸다.
나는 나물 담는 바구니를 들고 잠시 후 성철스님과 속리산 비로봉 어느 바위 위에 앉아 단 둘이서 하늘과 속리산을 건너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성철스님은 담담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인간의 성품은 평등하다네. 빈부귀천이 없지. 그런데 현세의 사람들은 차별심을 갖고 살고 있어. 오늘의 도량청소도 차별심이야. 무릇 수도인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져야지. 권력자라고 해서 다른 마음을 내어 되겠는가?」
어디선가 뻐꾸기 우는 소리가 계곡을 메워왔다. 뻐꾹-뻐꾹-뻐꾹-내가 뻐꾹새 이야기를 하려니 어느결에 성철스님은 바위 위에 두눈을 지그시 감고 좌선삼매에 들어 있었다. 오래 전에 성철스님은 대자연과 온 우주와 합일이 되어 있는 듯 보였다.
당시 성철스님은 31세였고, 나는 21세의 청년이었다. <道雨스님>
출전 : 큰빛 큰지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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