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戒律,불자의 생활규범)

계율(戒律,불자의 생활규범)

근와(槿瓦) 2016. 8. 24. 00:08

계율(戒律,불자의 생활규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계(戒)는 산스크리트 실라(sila)에서, 율(律)은 비나야(vinaya)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계와 율은 불교도의 생활윤리, 또는 삶과 수행의 규범이다. 계율은 일반적으로 승가를 구성하는 사부대중이 준수해야 하는 삶의 방식과 규율로서 함께 통칭된다.


그러나 계와 율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 뜻이 다르다. 계는 불교수행을 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덕적 수행이며, 율은 승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타율적인 행위 규범이다. 따라서 계는 주체적이며 자율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고, 율은 타율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율의 조항을 위반했을 때에는 규제나 벌칙이 가해지지만, 계에는 그 같은 벌칙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중도(中道)는 어디까지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법에 근거를 둔 생활방식을 자각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행위였다. 그러한 생활 방식을 계(戒)라고 한다.


그러나 교단이 커지고 수행자가 늘어나면서 수행자 개개인의 자각만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 가운데는 출가자로서 훈련이 덜 된 사람이나 전혀 자각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따라서 수행자로서 허용될 수 없는 행위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런 옳지 않은 행위가 있을 때마다 부처님은 그것을 규제하는 금지조항을 만드셨다. 이것을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한다.


그러므로 불교의 율은 일정한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하고 일시에 율장으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그때 그때 제정한 것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렇게 수행자로서 개인적으로나 교단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행위 규범을 율(律)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율은 경전 결집 과정에서 계속 전승되어 왔고, 출가자와 재가자의 규범으로서 계속 지켜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이 자자와 포살이다.


믿음 있으면 계 절로 지켜지고

계를 따르면 이름이 높아진다.

이름을 좇아 어진 벗 많으리니

가는 곳 어디서나 공양 받는다. <법구경 광연품>


그런데 대승불교가 발전하면서 율보다 오히려 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생겨났다. 즉 율의 조항을 중시하면서도 더 자각적이고 적극적인 계의 관점에서 율을 새로이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대승불교가 가진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자세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계율 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종 불교의 특색으로 청규(淸規)를 들 수 있다. 청규는 청정한 규칙이라는 뜻으로, 대중생활의 규율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당나라 백장 회해(百丈懷海)선사가 제정하고 시행한 ‘백장 청규’가 대표적이다. 백장 회해 선사가 총림에서 시행해야 할 규칙을 제정하였고, 그 뒤 각 사찰에서 자기 절에서 시행할 규칙을 마련하여 이를 청규라 하였다.


청규에는 일반적인 계율과 어긋나는 조항이 있다. 출가자의 생산행위를 금하고 있는 계율과 반대로, 백장 청규에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이라 하여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와 같이 청규에 계율과 어긋나는 조항이 있는 것은 노동을 통한 수행이라는 선종의 정신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규의 정신에도 계율을 존중하면서 대중생활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기본 원칙이 살아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가불자가 수지해야 하는 오계, 십선계, 보살계 등은 모두 이와 같은 계의 정신을 따르고 있다. 이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자율적인 것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율의 각 조항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자구(字句)해석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오계를 지키는 것은 불자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오계(五戒)

첫째,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不殺生)

둘째,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라.(不偸盜)

셋째,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다섯째, 술을 먹지 말라.(不飮酒)


오계는 모든 악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다섯 가지 악을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하지 말라’는 것은 금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전제로 한다. 이를테면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의 경우, 모든 생명은 본래 불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이므로 죽이지 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오계의 목적은 악을 범하지 않고 선을 실천함으로써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청정한 계를 지킴으로써 지혜와 선정의 온갖 좋은 공덕을 얻을 수 있다.


불자는 오계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즉 일상의 삶 구석구석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더불어 사는 이 세상을 청정정토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살생을 금하는 것이 가장 큰 계율임에도 불구하고 더 큰 살생을 막기 위해 그것을 열어야 할 때와 닫아야 할 때가 있다. 이것을 지범개차(持犯開遮) 또는 개차법이라고 한다. 지(持)는 계율을 지킨다는 뜻이고 범(犯)은 못 지킨다는 뜻인데, 지킬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이를 허용하는 것을 개(開)라고 한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를 어기고 사냥꾼에게서 사슴을 구해준 나무꾼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면 원칙대로 다시 막아야 하는데, 그것을 차(遮)라고 한다. 계율을 지키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에 제약이 되거나, 또는 그 계를 지키기 위해 더 큰 계를 어겨야 하는 경우, 그 상황을 타개할 때까지 열고 상황이 달라지면 다시 닫을 수 있어야 한다.


계율은 또한 자기 스스로 그것에 얽매이게 된다면, 계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계는 수행자의 심신이 더 이상 오욕 등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번뇌에 휘둘리지 않고 두려움 없는 평온한 상태로 이끌어주는 동반자여야 한다. 계를 지키는 것은 성실하고 참된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이며 발원이므로 자유롭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것이 중도에 입각하여 계를 지키는 것이다.


계는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규범을 세우기 위해 지키는 것이다. 계율은 불교도의 생활윤리 또는 삶과 수행의 규범이다. 계를 수지한 뒤에는 계율을 삶의 좌표이자, 가치관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참되게 하는 길잡이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불자들은 이러한 계를 지키기 위해서 항상 노력하고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출전 : 불교입문(조계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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