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六波羅蜜)

함께 사는 세상

근와(槿瓦) 2016. 1. 13. 01:26

함께 사는 세상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어리석게 살지 말라.

남의 흉내를 내면서 살지 말라.

잘못된 생각에 끌려가지 말라.

그리고 물질에 너무 탐닉하지도 말라. <법구경>

 

매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가정에서는 가족과 친척. 학교에서는 스승과 친구. 그리고 직장에서는 동료와 상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과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나중에는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너’와 ‘나’라는 입장에서 자기 것을 집착하는 어리석음에서 시작된다. 함께 살아가며서도 ‘너’와 ‘나’로 나뉜 채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무지에서 벗어나 진리를 발견하게 되면 결국 ‘너’와 ‘내’가 서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하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의식을 가질 때 사람들과의 관계는 한층 가깝고 따뜻한 사이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수행이 필요하고, 자신보다 나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배우려는 자세로 나아가야 하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자신도 과거에 그러했음을 반성하며 친절하게 일러주는 태도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행동은 어디서나 문제의 화근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불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적극적인 이타행을 강조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6가지 실천 행동 즉, 6바라밀이다.

 

(1) 보시(布施)

 

인색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베풀 줄을 모른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베푸는 걸 좋아하나니

그는 그 선행으로 인하여

보다 높은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게 된다. <법구경>

 

옛날 인도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베풀어주면 그 공덕으로 자신에게 좋은 과보가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수행자 등을 만나면 자신의 복을 짓게 해준다고 믿고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 주었다. 까닭에 도움을 받는 사람을 복전(福田) 또는 복밭이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보시라 한다. 부처님은 깨달음에 이르신 후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땅에 머무르셨다. 부처님께서 보이신 연민과 사랑을 본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연민과 사랑의 마음인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보시이다. 보시에는 재물을 베풀어주는 재시(財施), 두려움을 없애 주는 무외시(無畏施),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법시(法施)가 있다.

 

자기 것을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보시는 자신의 것을 남에게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주는 것이다. 보시는 우리의 집착과 그로 인해 생긴 모든 번뇌를 없애주는 길이기도 하다. 탐욕을 버리는 가장 좋은 길은 첫째,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요. 둘째, 행동으로 나의 것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마음이라 한다.

 

보시를 바라는 사람이 있음을 보고 나서 주는 것은 보시라고는 하지만 바라밀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만약 보시를 바라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자진해서 베풀 때는 이를 보시바라밀이라고 부른다.

 

만약 이따금 하는 보시라면 이를 보시라고는 해도 바라밀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언제나 보시하는 경우, 이를 보시바라밀이라고 부른다.

 

만일 남에게 주고 나서 뉘우침이 생긴다면 이를 보시라고는 해도 바라밀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주고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을 때 이를 보시바라밀이라고 부른다.

 

궁극의 깨달음을 위해 수도하는 사람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주고 받는 물건이 여기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직 대승의 궁극적 깨달음인 영원의 법을 위해 보시하고, 세상에 삶을 받은 모든 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 보시하고, 모든 사람의 번뇌를 끊어주기 위해 보시한다. <대반열반경> <고귀덕왕보살품>

 

이처럼 보시를 행할 때에는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내서는 안 된다. 물질의 소유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불성을 지닌 평등한 존재이다. 부처님은 보시할 때 어떠한 보답을 바래서는 안되며 심지어 자신이 남에게 보시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2) 지계(持戒)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때, 전생의 과보로 열반에 들기 전에 등창이 생겨 고생했다고 하는 내용이 전생담에 실려 있다. 이것은 깨달음에 이른 사람조차도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알게 모르게 행하는 우리의 행동은 결국 다시 본인에게로 되돌아온다는 법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행위를 하더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동기나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듯, 악한 행위에 좋은 결과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행동은 내일의 모습을 결정한다. 부처님은 우리가 행한 모든 행동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고 하셨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큰 항아리를 채우는 것과 같이, 우리가 ‘별거 아니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하면서 저지른 악행이 결국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인이 되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행에 물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좋은 행위는 쉽게 몸에 배이지 않지만 나쁜 행위는 그렇지 못하다. 항상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자신을 다스리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서 제자들에게 계를 스승삼아 열심히 정진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미 저질렀거나 아직 저지르지 않았거나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은 일체 보지 말라.

이미 저질렀거나 아직 저지르지 않았거나를 막론하고

그대 자신의 잘못은 반드시 되돌아보라. <수타니파타>

 

(3) 인욕(忍辱)

 

불교를 흔히 수행의 종교라 한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참아 가며 참사람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참는다는 것은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을 자제하는 것을 말하며, 탐내는 마음을 잘 참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고, 성내는 마음을 잘 참기 위해서는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물이나 조건 혹은 상대방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로 하여금 분한 마음이 솟아오르게 하는 상대방이 있을 때에는,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거나, 혹은 그가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그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도 생기고 저절로 참을성이 생겨나기도 할 것이다.

 

마치 초보 운전자가 길과 교통체계를 알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행동을 보고 경멸할 것이 아니라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살며시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와 이해하는 참을성을 길러야 하겠다.

 

(4) 정진(精進)

 

과거의 버릇이 얼마나 오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속담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해도 과거의 탐욕에 길들여진 버릇을 하루 아침에 털어버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몸과 말과 마음의 수행이 어느 정도 되는가 싶다가도 금방 그것을 흔들고 허물어 버리는 삼독심이 솟구치곤 한다. 그러므로 보다 굳건한 마음으로 생활하면서 과거의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투철하게 깨달음을 이루어 다시는 어제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그 길을 용감하게 가는 일이 중요하다. 반복하여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보다 더 끈질기게 다시 떨치고 일어나는 용맹한 정진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깨달음을 이루고 못이루는 것도 정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위의 결과를 미리 예측해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결과에 어떤 과보를 받을지를 안다면 정진에 많은 장애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더욱 열심히 깨달음의 길을 향해 정진해야만 어제와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5) 선정(禪定)

 

앞에서 본 것처럼 선정은 개인의 수행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싸움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내가 먼저 인욕하고 깊이있는 생각으로 모든 행동을 차분하게 처리한다면 상대방도 다투려는 마음보다는 평온한 마음으로 상대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수행인 선정을 닦아야 한다.

 

선정은 지혜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 길은 머리가 좋은 사람만이 가는 것도 아니고 학벌과 학위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어떤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깊이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그동안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전체의 모습과 나와 남으로 나눌 수 없는 하나로 연결된 삶의 전 과정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지킬 것과 얻을 것, 버릴 것 등을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다.

 

(6) 지혜(智慧) - 반야(般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꽃피울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향기를 준다. 마치 언덕에 곱게 핀 꽃이 그윽한 향기를 바람에 실어 그 향기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듯이, 지혜로운 사람들 곁에 사는 삶은 나와 이웃 그리고 자연의 세계를 정화시키는 감로의 물줄기가 될 것이다.

 

다섯가지 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없이는

바라밀이라고 불리지 못한다.

마치 전륜성왕이 윤보(輪寶)가 없을 때에는

전륜성왕이라는 이름을 가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 <대지도론>

 

 

출전 : 불교입문(조계종 포교원)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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