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意識)

6식송(六識頌)

근와(槿瓦) 2015. 12. 21. 00:29

6식송(六識頌)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삼성(三性)과 삼량(三量)이며 삼경(三境)에 통하니,

三性三量으로 通三境하니.

 

제6식은 의식(意識)을 말하는데, 거기에는 삼성(三性)과 삼량(三量)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량은 현량(現量)과 비량(比量)과 비량(非量)을 말합니다. 현량은 직관적으로 대상을 아는 것이요, 비량(比量)은 유추와 추리로써 사물을 아는 것이며 비량(非量)은 잘못된 현량(現量)과 비량(比量)을 말합니다.

 

그리고 삼성은 선(善)과 악(惡)과 무기(無記)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제6식은 삼경(三境)에 통하는데, 삼경이란 성경(性鏡)과 독영경(獨影鏡)과 대질경(帶質鏡)으로 인식의 대상을 세 종류로 분류한 것입니다. 성경이란 주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세계이며, 독영경은 주관의 영향하에 나타나는 망상적 경계이고, 대질경은 본질은 있으나 본질 그대로는 나타나지 않는 경계입니다. 제6식은 바로 이 세 경계에 모두 통하는 것입니다.

 

삼계에 윤회할 때 쉽게 알 수 있느니라.

三界輪時에 易可知라.

 

중생이 삼계(三界)에 윤회할 때에 삼계에서 받는 생사(生死)와 선과 악의 인과(因果)는 바로 이 제6식의 작용으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그 행상이 8식 중에서 가장 뚜렷하여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상응하는 심소는 51가지이니, 선과 악에 임할 때 각각 그것을 배정하느니라.

相應心所는 五十一이니 善惡臨時에 別配之라.

 

유식학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총괄하여 여섯 가지[六位 : 변행(徧行) 5법, 별경(別境) 5법, 선(善) 11법, 근본번뇌(根本煩惱) 6법, 수번뇌(隨煩惱) 20법, 부정법(不定法) 4법]로 분류하는데, 그 여섯 가지에 포함되는 마음작용 전체는 51가지입니다.

 

제6식인 의식에서는 육위의 마음작용이 모두 활동하고 있으므로 선이나 악을 대할 때 그 마음작용의 종류를 각각 다르게 하여 상응하는 것입니다.

 

삼성과 삼계와 삼수가 항상 전변하여 근본번뇌와 수번뇌와 신(信)등이 총체적으로 서로 연관하니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는데 홀로 가장 뛰어나서 (업을) 이끌고 (과보를) 만족하여 능히 업력을 부르고 (8식을) 이끄느니라.

性界受三이 恒轉易하여 根隨信等이 總相連하니 動身發語에 獨爲最하여 引滿能招業力牽이라.

 

삼성(三性)은 선 · 악 · 무기를 뜻하고, 삼계(三界)는 욕계 · 색계 · 무색계를 말하며, 삼수(三受)는 세 가지 감수작용인 고(苦) · 낙(樂) · 사(捨)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항상 서로 그 위치와 상태를 바꾸어서, 어떤 때는 선할 때 악이 홀연히 일어나고 어떤 때는 기쁠 때 슬픔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할 때는 근본번뇌라든가 수번뇌의 번뇌가 따르고, 선한 일을 할 때는 신(信)등의 마음작용이 일어나 그 전체가 한데 뭉쳐서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하고 몸을 움직이는 등의 일상생활에 있어 제6식의 작용이 가장 두드러진 것입니다. 따라서 계속 업을 짓는데, 선업을 짓든 악업을 짓든 업을 지음에는 제6식인 의식이 전적으로 그 역할을 주도합니다. 중생이 여러 가지 업을 지어 그 과보를 자초하여 이리저리 끄달리면서 삼계와 육도를 윤회하는데, 그 윤회의 주체인 제8식을 이끄는 힘은 제6식이 제일 큰 것입니다.

 

초심(初心)의 환희지에서 [지(智)]가 발생하나 구생혹(俱生惑)은 오히려 스스로 전(纏)과 면(眠)을 나타내느니라.

發起初心歡喜地이나 俱生은 猶自現纏眠하며

 

제6식은 무루지(無漏智)가 발생하는 초지 환희지에서 묘관찰지(妙觀察智)로 전환하여 아(我)와 법(法)에 대한 분별혹(分別惑)은 그치게 됩니다. 그러나 구생혹(俱生惑)은 거기에서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구생혹이란 선천적으로 익혀 온 번뇌입니다. 그러므로 환희지에서는 의식작용 중 분별혹은 멈추지만 구생혹인 전(纏)과 면(眠)은 아직 남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纏)은 현행(現行)을 말하고 면(眠)은 종자(種子)를 말하므로 초지에서는 구생혹의 현행과 종자는 활동하는 것입니다.

 

遠行地後에는 순수한 무루가 되어 묘관찰지로 둥글게 밝아 대천세계를 비추느니라.

遠行地後에 純無루하여 觀察圓明照大千하니라.

 

원행지는 제7지입니다. 이 7지에 이르르면 구생혹(俱生惑)도 없어져서 번뇌가 완전히 없어집니다. 즉 원행지인 7지에서 보살이 무상정(無想定)에 들어가면 의식의 여러 작용이 완전히 그쳐서 분별혹은 물론 구생혹까지 없어져서 의식작용이 순수한 묘관찰지로 바뀌어 대천세계를 밝게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유식학에서 제6의식을 여러 가지로 분류한 것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의식은 그 발생하는 경우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오구의식(五俱意識)과 불구의식(不俱意識)이 그것입니다. 오구의식에는 전5식과 동시에 일어나며 또한 전5식과 동일한 경계를 반연하는 오동연의식(五同緣意識)과, 전5식과 동시에 같이 일어나지만 전5식과는 다른 경계를 반연하는 부동연의식(不同緣意識)이 있습니다. 불구의식은 전5식과 함께 일어나지 않고 의식만이 홀로 발생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오후의식(五後意識)과 독두의식(獨頭意識)의 구별이 있습니다. 오후의식은 전5식이 경계를 반연한 후에 그 뒤에 계속하여 일어나는 의식을 말하며, 독두의식은 전5식과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전5식이 생한 후에 계속하여 일어나지도 않는 전혀 홀로 일어나는 의식입니다. 이 독두의식에는 정중독두의식(定中獨頭意識)과 몽중독두의식(夢中獨頭意識)과 산란독두의식(散亂獨頭意識)이 있습니다. 정중독두의식은 정(定)에 들어서도 무엇인가의 물건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어떤 사물이 나타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 속에서 분명히 대상이 나타나지만 이것은 꿈속에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의 대상없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몽중독두의식은 꿈속에서 산을 보거나 물을 보는 정신작용입니다. 산란독두의식은 병이 있거나 미쳤을 때의 의식을 말합니다. 병이 있어 의식이 혼란되어 있을 때에는 사람이 없는데 보이기도 하고 있는데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사람이 미치면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혼자서만 보고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이 모두 산란독두의식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제3능변은 차별하여 여섯 종류가 있으니, 경계를 요별하므로 성(性)과 상(相)으로 삼으며 선(善)과 불선(不善)과 무기(無記)가 된다. 이 마음의 작용은 변행과 별경과 선과 번뇌와 수번뇌와 부정으로 모두 삼수(三受)와 상응한다. 의식은 항상 일어나지만 무상천에 태어나는 것과 무심의 두 선정과 수면과 민절은 제외하느니라.

次第三能變은 差別有六種하니 了境으로 爲性相하고 善不善俱非니라 此心所는 遍行과 別境과 善과 煩惱와 隨煩惱와 不定이니 皆三受相應이라 意識이 常現起호대 除生無想千과 及無心二定과 睡眠與悶絶이니라.

 

이 글은 유식 삼십송에서 제6의식에 대한 설명입니다. 유식학에서 마음의 주제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심식을 8식(八識)으로 분류하여 마음이 표층에서 심층을 향하여 중첩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설명한 것이고, 또 하나는 삼능변(三能變)으로 파악하여 마음이 심층에서 표층을 향하여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면을 보인 것입니다. 삼능변의 초능변은 제8아뢰야식이고, 제2능변은 제7말나식이며, 제3능변은 전5식과 제6식입니다.「팔식규거」는 전5식부터 시작하여 최후로 제8식을 설명하여 올라가며 해설하지만,「유식삼십송」은 초능변인 제8아뢰야식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제6식과 전5식으로 내려가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제3능변은 제6식을 말하며 차별하면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바로 앞에서 해설한 전5식과 제6식을 통칭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제6식은 경계를 분별하는 것을 그 성품으로 삼으며 삼성(三性)인 선과 악과 무기에 모두 통합니다. 또한 그 작용은 51가지가 있는데, 그를 분류하면 변행(徧行) · 별경(別境) · 선(善) · 번뇌(煩惱) · 수번뇌(隨煩惱) · 부정(不定)의 6가지가 됩니다. 이들은 모두 고(苦), 낙(樂), 사(死)의 삼수(三受)와 상응합니다.

 

그런데 의식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일체의 의식이 사라진 무상천(無想天)과 제7지의 무상정(無想定)과 제8지 이후의 멸진정(滅盡定), 그리고 수면과 민절에서는 의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7지의 무상정까지는 무심(無心)이기는 하지만 계속적인 정진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8지 이후인 색자재(色自在)의 멸진정에 들면 색에 자재해서 노력이 필요치 않는 무공용(無功用)이 됩니다. 그러므로 보통은 제7지를 모두 성인(聖人)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제7지 무상정까지는 의식적으로 수행한다는 노력(功力)이 필요하며, 제8지 멸진정 이상은 이런 노력이 필요없는 성위(聖位)에 든다고 합니다. 또 의식은 잠잘 때나 기절했을 때에도 활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출전 : 백일법문 上(성철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의식(意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식(意識)  (0) 201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