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禪의 功德

근와(槿瓦) 2013. 9. 5. 00:41

禪의 功德

 

 

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잠깐동안만이라도 좌선하면 항하사수(恒河沙數)의 보탑(寶塔)을

쌓은 것보다 나으니라. 보탑은 마침내 허물어져 돌아가지만 한 생각 맑은 마음은 필경 부처를

이룬다.」하였다.

 

대개 마음이 있고 닦음이 있고 얻음이 있는, 이른바 유위(有爲)의 공덕은 생멸의 법이며 유한

이다. 그러나 좌선은 무위(無爲)를 닦는 것이니 그 공덕이 온갖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홍인(弘忍)조사가 말하기를 「본래의 참마음을 지키는 것(守本眞心)이 일체 번뇌가 끊인

대해탈에 이르는 근본이며 도에 들어가는 요긴한 문이고 부처님의 조(祖)가 된다.」하였고,

관심론(觀心論)에는 「마음을 관하는 이 한 법이 온갖 수행문을 총섭한다. (觀心一法總攝諸行)

하였다. 참마음을 닦는 한 수행 속에 일체 공덕이 원만구족하다는 말이다.

 

원래로 성불한다는 것은 불성의 완전한 자기회복이다. 이것을 견성(見性)이라 한다. 부처님의

모든 경전이 필경 본성을 밝히는 것 뿐이니 본성을 보면 일체 경전은 빈 껍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조사는 「원만 청정한 자성(自性)이 본사(本師)이며 이를 깨닫는 것이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성을 깨닫는 禪에서 성불이 있는 것이며 인간의 궁극적 완성이 있다. 홍주(洪州)선사도

마조선사의 법문에서 깨치고는 「백천삼매(百千三昧)와 무량한 묘한 진리를 단번에 송두리째

알아버렸다.」하였고 나융(懶融)선사가 말하기를「백천법문이 한마음에 돌아가고 항하사 공덕이

오직 이 마음에 있다. 온갖 청정한 도행의 문과 정(定)의 문과 지혜의 문과 신통변화가 그대 마음

속에 모두 완전히 갖추어 있다. 」라고 말하였다.

 

禪은 인간이 마땅히 돌아가야 할 본분 도리이다. 정신을 올바로 차려서 참자기를 회복하는 것보다

더 요긴하고 더 급한 것은 없다. 거듭 말하지만 부(富)도 안락도 건강도 제정신을 차려 참자기를

회복한 후에 비로소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인간본성을 깨닫는 선의 수행은 이런 점에서 그 가치는

절대적이다. 설사 이 법문을 듣고 거슬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정코 성불할 사람이라고 말해온

것이며 또 닦아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공덕은 온세계에 가득한 복보다 낫고 세세생생 해탈의 문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천리길을 가고자 하면 그 첫걸음이 바르어야 하니 만약 첫걸음을 그르치면

천리가 모두 허망해진다. 禪에 의하여 인생의 바른길을 착실하게 닦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 이것이 선의 길이다(佛光)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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