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품(刹那品,능가경)

찰나품(刹那品,능가경)

근와(槿瓦) 2015. 10. 26. 00:27

찰나품(刹那品,능가경)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그 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를 위하여 일체 모든 법의 찰나에 파괴되는 모양을 말씀해 주소서. 어떤 모든 법이 찰나가 있다고 이름합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하리라.

대혜여, 일체법이란 이른바 善法·不善法·有爲法·無爲法, 世間法·出世間法, 有漏法·無漏法, 有受法·無受法이다.

 

대혜여, 요점을 들어서 말하면 "다섯 가지 번뇌의 온 법(五取蘊法)인데, 심·의·의식의 습기가 因이 되어 증장한다. 범우는 이에서 분별을 내어 선·불선을 말한다. 성인은 현재에 깨달은 삼매의 즐거움에 머무니, 이것이 곧 善무루법이라 이름한다.

 

또 대혜여, 선·불선이란 이른바 八種識이다. 어떤 것이 팔종인가 하면,

(1) 여래장을 이름하는 장식

(2) 意

(3) 意識과 五識身이다.

 

대혜여, 저 오식신과 더불어 의식과 함께 선·불선相이 전전히 차별되게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고 다름이 없는 체가 나고 나고서는 곧 멸한다. 경계에서 제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깨닫지 못하므로, 식이 차례로 멸할 때 다른 식이 생긴다. 의식과 더불어 저 오식은 한 가지로 함께, 가지가지 차별된 형상을 취하여 찰나에도 머물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이 찰나법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여래장을 이름하는 장식과 더불어 意 등의 모든 습기는 모두 찰나법이나, 무루 습기는 찰나법이 아니다. 이것은 범우 찰나론자가 능히 알바는 아니니, 그들은 일체 모든 법이 찰나인지 찰나 아닌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위가 모든 법의 망가짐과 같다고 계교하여 단견에 떨어진다.

 

대혜여, 오식신이 유전치 않으면 고·락을 받지 않으나 열반의 인은 아니다. 중생의 여래장은 고·락을 받고 인연과 더불어 함께 생·멸함이 있으며, 四종 습기(곧, 四住地)에 덮여 있으므로, 모든 범우는 분별이 마음을 훈습하여 깨닫지 못하고 찰나라는 소견을 일으킨다.

 

대혜여, 금과 금강 같은 부처님 사리의 기이하고 독특한 성품(奇特性)은 끝끝내 손괴(損壞)하지 않는다. 만일 "법을 깨달아도 찰나가 있다"하면, 성인은 응당 성인이 아닐 것이지만 그러나 저 성인은 일찍이 성인 아닌 적이 없음이 마치 금과 금강은 비록 수겁을 지나서 칭량(稱量)하여도 양이 덜하지 않음과 같다. 그러하거늘 어찌하여 범우는 나의 비밀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체 법에서 찰나라는 생각을 짓는가?

 

대혜 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만일 육바라밀을 만족하게 얻으면 문득 정각을 이룬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이 육바라밀이며 어떻게 만족시킵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대혜여, 바라밀에는 삼종의 차별이 있으니 이른바

(1) 세간

(2) 출세간

(3) 출세간상상이다.

 

대혜여, (1) 세간 바라밀이란 모든 범우가 나와 내것에 집착하고 이변을 집취(執取)하여 三有의 몸을 구하고 물질등의 경계를 탐하여,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 바라밀을 수행하고 신통을 성취하여 범세(=범천)에 남을 말한다.

 

대혜여, (2) 출세간 바라밀이란 성문·연각이 열반을 집착하고 자기의 즐거움을 희구하여 모든 바라밀을 닦아 익힘을 말한다.

 

대혜여, (3) 출세간상상 바라밀이란 보살마하살이 自心의 이법(능·소법)은 오직 분별에서 나타난 것임을 깨달아 알고 망상을 일으키지 않고, 집착을 내지 않고 색상을 취하지 않으면서, 일체 중생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 위하여 항상 보시바라밀을 수행한다. 모든 경계에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지계바라밀을 수행함이다.

 

분별을 일으키지 않을 때 능취·소취의 자성을 인지(앎)하는 것이 인욕바라밀이다.

 

초 저녁·밤중·새벽에 부지런히 닦고 게으르지 않으며 진실한 견해(實解)에 수순하고 분별을 내지 않음이 정진바라밀이다.

 

분별을 내지 않고 외도의 열반견을 일으키지 않음이 선정바라밀이다.

 

지혜로써 마음을 관찰하여 분별을 없애고 이변에 떨어지지 않으며, 의지하는 바를 청정하게 바꾸어서 괴멸치 않고, 거룩한 지혜로 안으로 깨닫는 경계(聖智內證境界)를 얻음이 곧 반야바라밀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이, 유위를 분별하여

공·무상·찰나라 하나

분별하는 찰나의 뜻(義)은

강물·등불·종자 같네

일체법은 나지 않고

고요하고 지은 바 없어

모든 일과 성품 모두 여읜 것

이것이 내가 말한 찰나의 뜻

사이 없이 태어남이 곧 멸함은

어리석은 범부 위해 말한 것 아녀

사이 없이 계속하는 법과

모든 갈래(육도)는 분별에서 생긴다네

무명이 그 인이 되고

마음은 그로부터 나나

색이 생기는 것 깨닫지 못했거늘

중간이 어디에 머무르랴!

사이 없이 계속함이 멸해도

다른 마음 일어남이 있다 하나

색에 머물지 않을 때에

무엇에 반연하여 나리오

만일 저것을 緣하여 일어난다면

그 因이 곧 허망하므로

인이 허망하면 자체가 이뤄지지 않거늘

어찌하여 찰나에 멸하랴!

수행자의 삼매와

금강 같은 부처님 사리

그리고 광음천 궁전은

세간에서 망가지지 않는 것

여래의 원만한 지혜와

그리고 비구가 깨달은

모든 법성은, 항상 머물거늘

어찌하여 찰나를 보랴!

건달바성·환 등의 색은

무슨 까닭에 찰나가 아닌가

大種은 實性이 없거늘

어찌하여 짓는 것(能造)을 말하랴.

 

 

출전 : 능가경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찰나품(刹那品,능가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념(一念)  (0) 2015.11.19
모든 것은 한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楞伽經 刹那品)  (0) 2015.10.29
찰나(刹那)   (0)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