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무상(一切無常)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인생으로서 생하고(生), 늙고(老), 병들고(病), 죽는(死) 과정(有爲四相)을 거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고 하여도 인간의 불사영생(不死永生)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자연물 또한 무상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거대한 천체(天體)로부터 작은 티끌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 안의 모든 존재는 생하고(生) 머물고(住) 달라지고(異) 없어지고(滅) 마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지 · 수 · 화 · 풍과 같은 물질적 요소는 어떨까? 순세파(順世派)와 사명파(邪命派)에서는 이것을 불변적 요소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석존은 그것 또한 무상함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설하신다. 현대 자연과학에서는 원소가 원자로 분석되고 원자 또한 파괴되며,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素粒子)도 불변의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실증하고 있다. 에너지(energy)불변의 법칙이 있지만, 에너지가 물질로 변할 수 있고 물질이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면 이것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한 것의 범주에 속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혼(靈魂)이나 자아(自我)와 같은 것은 어떨까? 대개의 종교에서는 인간의 육신은 비록 사멸하여도 그 영혼은 죽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거나 또는 다른 몸을 만나 재생한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그렇게 불변의 존재일까? 이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이나 자아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뚜렷이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앞서 불교의 오온설을 살피는 곳에서, 우파니샤드 철학의 자아나 생활파의 명(命), 이계파의 영혼 등은 모두가 오취온설의 차원에서 이야기되고 있었던 것을 보았다.
그러기에 석존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불변적 아체(我體)가 있다고 헤아린다면 그들은 모두가 오취온에서 그렇게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잡아함(雜阿含) 권3>
그렇다면 바라문들이 말하는 자아나 사문들이 말하는 영혼도 마땅히 무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오취온에서 맨처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색온인데, 색온을 구성하고 있는 사대요소가 이미 무상한 것이니, 오취온의 무상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색(色)을 발생시키는 인(因)과 연(緣)이 벌써 무상하니, 무상한 인과 무상한 연으로 발생한 색이 어찌 유상(有常)하겠는가. 수 · 상 · 행 · 식 또한 그러하다.” <잡아함(雜阿含) 권1>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십이처로부터 사대 · 오온에 이르는 모든 것은 하나도 항구불변의 것은 없다. 그러기에 “일체는 무상하다.”고 석존은 단언하신다. 이 단언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보다 잘 알려져 있다. 이 말 속의 ‘행(行)’은 오온 중의 행온(行蘊)을 가리키는데 무상한 세계 속에서 개체를 유지하려는 행의 작용이야말로 무상함을 가장 실감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행은 이렇게 덧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사실을 진정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고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친구들의 임종을 보며 삶의 덧없음을 느끼고, 고대문명의 유적을 보며 하염없는 탄식을 보낸다. 그러나 존재의 밑바탕에서부터 무상함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바라문이나 사문들까지도 그러지 못하였으니, 일반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만큼 사람들은 유상(有常)하다고 본다. 백 년이나 천 년을 살 것 같이 생각하고, 자기의 재산과 권력과 명예는 영원히 갈 것으로 본다. 탐착과 인색과 교만은 이런 생각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일생 동안 남에게 선심 한번 써보지 못한 채 깊은 회한 속에서 생을 마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불교의 무상설은 중생들의 이러한 뒤바뀐(顚倒) 착각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다. 값싼 감상주의나 비관적인 현실관이 아니다. 올바른 인생관을 수립코자 하면 먼저 현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일체무상은 이러한 목적을 가진 것이다.
출전 : 불교학개론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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