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말씀

밖에서 찾지 말라(解題)

근와(槿瓦) 2015. 9. 9. 01:43

밖에서 찾지 말라(解題)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지눌(知訥) 보조(普照) 스님은 53년(1158~1210)의 길지 않은 생애를 살고 갔지만, 그분의 빛나는 삶과 뛰어난 가르침은 고려 불교는 물론 현재의 한국불교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쳐주고 있다. 그 영향력은 먼 미래에까지 인류의 사상으로 계승 발전되리라 믿는다.

 

스님이 살았던 그 시절은 안팎으로 몹시 어지러웠던 격동의 시대다. 사회적으로는 계속된 무신들끼리의 권력다툼과 정변의 소용돌이에 불교가 휘말리어 수행과 교화 등 종교적인 기능을 다 할 수 없었고, 안으로는 선(禪)과 교(敎)의 대립이 극심했었다.

 

그때의 승려들이 추악한 정치권력에 휩쓸림에 따라 승려 사회의 기강은 극도로 문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타락된 고려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벌인 운동이 정혜결사(定慧結社)다. 이 책에 옮겨 실은 <권수 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은 그 당시 불교 중흥을 결의한 일종의 선언서다. 스님은 25세 때(1182년) 당시의 서울인 개성 보제사 담선법회(談禪法會)에서 승선(僧選)에 합격하고 동지 10여명과 함께 결사의 뜻을 천명한다.

 

'우리는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함께 뜻을 맺고 항상 선정(禪定)을 익히고 지혜를 닦기에 힘쓰자. 예불과 독경과 노동으로 운력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맡은 소임을 다하여, 인연따라 심성을 수양해 나가자. 한평생 거리낌없이 지내면서 진인(眞人) 달사(達士)의 높은 수행을 따른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약속이 있은 후 도반들은 하나 둘 흩어진 채 10여년의 세월이 흐른다. 그 무렵 팔공산 거조사에 득재(得才) 스님이 살고 있었는데 옛날 지눌스님과의 약속을 떠올린다. 마침내 1188년 일찌기 결사를 언약했던 도반들을 불렀지만 모인 수는 겨우 서너 사람뿐이었다. 이때 3, 4인의 뜻이 한데 뭉쳐 마침내 결사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보조스님의 나이 33세.

 

아무리 큰 일일지라도 처음 시작은 한두 사람의 간절하고 청정한 발원에서 싹튼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결사문>에도 이런 귀절이 들어 있다.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이 곧 도량이다. 그러니 그것은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칠보탑을 만드는 공덕보다 훨씬 뛰어나다. 보배로 된 탑은 언젠가는 무너져 티끌로 돌아가고 말겠지만,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은 마침내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이 결사문은 1190년 스님의 나이 33세 때 팔공산 거조사에서 씌어졌다. 그 10년 뒤 장소가 비좁아 결사도량을 조계산 송광사로 옮기어 본격적인 결사운동을 전개, 한국불교의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스님은 수심(修心)에 투철할 것을 강조한다. 마음 닦는 일을 통해 정법이 구현되고 선교간의 갈등도 해소될 수 있으며 중생의 온갖 시비도 이 수심으로 인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수심의 근거는 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데 있다. <수심결(修心訣)>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윤회를 벗어나려면 부처를 찾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부처란 곧 이 마음인데, 마음을 어찌 먼데서 찾으려고 하는가. 마음은 이 몸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다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육신은 헛것이어서 생이 있고 멸이 있지만, 참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몸은 무너지고 흩어져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사라지지만, 마음은 항상 신령스러워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고 한 것이다.'

 

이 수심결에서 스님의 뛰어난 사상인 '돈오 점수(頓悟漸修)'가 등장한다.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과 그 실현을 이상으로 하는 수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틀은 깨달음과 닦음이다. 올바른 수도는 먼저 마음의 바탕을 분명히 깨치고 나서, 그 깨침에 의지해 점점 닦아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생들이 어리석어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 성품이 참 법신일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지혜가 진짜 부처인 줄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고 바른 길에 들어 한 생각에 문득 마음의 빛을 돌이켜 자기 본성을 본다. 번뇌없는 지혜가 본래부터 갖추어져 모든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아는 이것을 돈오라 한다.'

 

그러므로 돈오란 마음이 곧 부처라는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다. 그러면 한번 깨쳤으면 그만이지 어째서 닦음이 또 필요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서 <수심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본성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닫기는 했지만, 끝없이 익혀온 버릇은 갑자기 없애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의지해 닦고 차츰 익혀서 공이 이루어지고 성인의 모태 기르기를 오래 하면 성(聖)을 이루게 되는 이것을 점수라고 한다.'

 

또 이 가르침에는 바르게 알아야 바르게 행할 수 있다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바른 행이란 우리들 일상적인 삶이다. 그렇다면 깨달음과 닦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상호보완하는 두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다. 또 깨달음과 닦음의 관계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지혜와 자비에 일치한다. 자비가 없는 지혜는 메마른 것이고, 지혜가 없는 자비 또한 맹목에 흐르기 쉽다. 깨달음과 닦음은 종교적인 주장이기에 앞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눈을 떠야 바른 길을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돈오 점수의 사상은 불타 석가모니의 45년의 설법 정신을 이루고 있는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닦을 것이 없는 깨달음' 이 말은 그럴듯 하지만 깨닫고 나서의 닦음이야말로 진짜 닦음이다. 중생교화란 무엇을 말함인가. 점수란 무얼 뜻하는가. 눈을 뜬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닦음이 아니겠는가. 닦음(修)이란 곧 행(行)인데, 행에 완성이 있을 수 있는가. 중생계가 끝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일시에 마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종교란 영원한 닦음이고 끝없는 행이다. 바른 지견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을 떠난 허무맹랑한 공리공론에 속지 말아야 한다.

 

<진심직설(眞心直說)>은 실제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물음과 대답(사실은 자문 자답이다)의 형식으로 된 이 글은 스님의 방대한 독서량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진심(眞心) 곧 무심(無心)을 배우고 익히는 후학들에게 밝은 스승의 역할을 해 준다. 특히 진심을 드러내기 위한 열 가지 공부는 참으로 뛰어난 법문이다. 스님은, 이 열 가지 무심공부를 반드시 순서적으로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그 중 한 가지 길을 골라 공부를 성취하면 그릇된 마음이 사라지고 진심이 드러날 터이니, 자기의 근기와 취향에 맞추어 익혀 가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 망심(妄心)을 쉬는 법문이 가장 긴요하기 때문에 말이 많아진 것이니 글이 번거롭다고 탓하지 말라.'

 

송광사 국사전(國師殿)에는 보조스님의 모습을 그린 진영(眞影)이 모셔져 있다. 이 영은 물론 후세에 그려진 것이지만, 여러 자료에 의해 그려졌을 것이므로 전혀 터무니없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조그마한 체구로 의자에 앉은 모습인데, 바른 손으로는 육환장을 짚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은 채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은 지극히 인자하고 겸손하게 보인다.

이와 같은 영의 모습이 스님의 실제 모습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처음 입산출가한 사람들을 위해 스님께서 손수 써 놓으신 <초심학인에게 주는 글(誡初心學人文)>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처음 절에 들어온 사람들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과 일상적인 행동이며 예절들을, 마치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낱낱이 타이르듯 자상하게 말씀하신 그런 모습을 이 영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스님의 인상은 여기에 옮겨 실은 글 속에서도 자주 느끼게 된다. 스스로 질문과 대답의 형식을 빌어 배우는 사람들이 갖기 쉬운 의문점들을 낱낱이 들어서, 그것도 자신의 주장보다 고인들의 가르침을 번거로울 정도로 인용해 가면서 깨우쳐 주고 있다. 번역을 진행하면서도 느낀 바지만, 스님의 엄청난 그 독서량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독서카드를 만들어 사용했는지 아니면 어디에 메모해 두었다가 사용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 기억력도 비상했을 듯 싶다.

8백년 전 보조스님께서 머무시던 옛도량에 몸담아 살게 된 고마운 인연으로, 선사의 종재(宗齋)를 맞아 이 책을 옮겨 펼쳐내기로 했다.

"산승(山僧)의 목숨이 그대들의 수중에 있다. 그것을 그대들에게 맡기니, 옆으로 끌든지 거꾸로 세우든지 마음대로 하라!"

이 최후의 말씀이 선사께서 오늘의 불자들에게 당부한 교훈임을 다같이 명심했으면 좋겠다.

 

                                                                                                      불기 2533(1989)년 3월 26일

                                                                                                                               佛日庵에서

                                                                                                                                 法頂 합장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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