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달마(菩提達磨)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근와(槿瓦) 2017. 11. 27. 02:09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판사 자리 팽개치고 엿장수로 방랑하는 찬형.

엉덩이가 물러터지도록 용맹정진하는 절구통 수좌.

토굴 속에 들어 앉아 끼니도 잊은 채 무자(無字) 화두에 매달리는 눈 푸른 납자(衲者, 참선 수행자).

마침내 토굴을 박차고 나와 큰 소리로 노래하는 각자(覺者).

수많은 제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어둔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효봉 선사(曉峰禪師).


우리는 선사를 통하여 장쾌한 한국선풍의 진면목을 발견합니다. 경이로운 참선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 봅니다.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한 소식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신명나는 일입니까. 어깨춤이 절로 나진 않습니까.

한국선풍(韓國禪風)이라고 했지만, 물론 참선의 뿌리는 저 높이 붓다 석가모니에게서 비롯되고 초기불교의 지관(止觀)-선정수행의 원천으로부터 흘러온 것입니다. 여기서 참선의 역사를 논할 만큼 지금 우리는 한가하지 못합니다. 참선은 본래 모든 논의를 넘어서는 것이며, 지금 단박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선풍(禪風),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달마 대사의 중국 전법 이후 크게 떨치게 됩니다. 남인도의 왕자 출신인 달마대사(達磨大師, 菩提達磨大師, Bodhidharma)가 중국 숭산 소림사(少林寺)에 들어가서(A.D. 525) 9년 면벽(九年面壁)하였습니다. 9년 동안 부동의 자세로 벽만 바라보며 꼿꼿이 앉았습니다. 오직 좌선(坐禪)으로 용맹정진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벽관 바라문(壁觀波羅門)’이라고 불렀습니다. ‘벽만 보고 앉은 인도의 수행자라는 말이지요.

 

무엇 때문일까?

무엇 때문에 서쪽에서 온 조사(祖師)는 아무 말 없이 벽만 보고 앉았을까? 긴긴 9년의 세월을…….

정녕 조사께서 서쪽(인도)에서 온 뜻(祖師西來意)이 무엇일까?

고인(古人)은 그 뜻을 이렇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에 진리를 모두 설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다만 학자(學者)들이 문자의 뜻과 이치에만 골몰하고 얽매여 참뜻을 잃어버리고,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달마대사가 서쪽 인도에서 와서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성불케 한 것이다. ()은 모든 일에 걸림이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 ()는 모든 일에 걸림이 없는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가(敎家)에서는 다만 말뿐이고 실행하지 않으며, 선가(禪家)에서는 한 근기(一機)와 한 경계(一境)위에서 무애자재하게 방편을 쓰며 실천한다.”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저마다 제 본성을 보고 성불케 하기 위하여.”

 

이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조사께서 서쪽으로부터 오시고, 이것을 위하여 달마 대사께서 9년 면벽하셨습니다.

달마 대사의 이 9년 면벽사건을 계기로 중국에서 보다 새로운 행태의 선종이 크게 떨치고, 중국 선종은 육조 혜능선사(六祖慧能禪師, A.D. 638~713)의 중흥을 거치면서 오가칠종(五家七宗)의 선풍이 왕성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중국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조사선(祖師禪) 우월주의를 표방하면서 스스로 교종(敎宗)을 질책하고 그 위에 군림하였습니다. 중국 선종은 심오하고 신비하기조차 한 선 사상(禪思想), 선 문화(禪文化)를 창출하여 불교 자체를 크게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 동양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선종은 실로 동양 문화의 한 뿌리를 이루기에 충분하였던 것입니다.

 

중국 선종이 우리 나라에 소개되기는 신라 통일 당시로 추정되나 그 본격적인 발전은 9세기 초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육조 계통의 선법(禪法)을 들여온 이후의 일입니다. 도의 선사의 계승자들이 전남 장흥에 가지산(迦智山)을 연 것을 계기로 선종 구산(九山)이 일어나면서 한국 선종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정치적으로 지방 호족 세력과 연결되어, 낡은 신라를 새 고려로 개혁하는 정신적 바탕이 되었습니다.

고려 전기 천태종(天台宗)의 발전으로 구산 선종이 한때 위축되었으나, 12세기 말 무신란을 계기로 구산이 궐기하여 조계종(曹溪宗)을 창설하면서, 이후 한국 불교는 선종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조선 왕조의 참담한 탄압 속에서도 선종 중심의 법맥(法脈, 불교의 맥락)은 연면히 계승되어, 서산(西山), 사명(四溟) 등 위대한 선사(禪師)들은 핍박의 원망을 잊고 민족을 구출하였습니다.


근세에 이르러 가혹한 압박으로 선풍(禪風)이 잠시 침체하던 것을 경허(鏡虛)선사가 이를 중창하고, 혜월(慧月), 한암(漢岩), 만공(萬空), 용운(龍雲), 용성(龍城) 등 일대의 기라성들이 이를 계승함으로써, 선종을 중심으로 한 한국 불교는 불멸의 민족 정신으로서 찬란한 빛을 더욱 강렬히 발산하고 있습니다.

 

조사선은 대개 화두(話頭)를 잡고 참선하는 간화선(看話禪)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화두는 일명 공안(公案)이라고 일컫는데, 참선할 때 마음을 집중시키는 참선의 주제(主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천칠백 공안이라고 해서 많은 화두들이 있어 왔지만, 그 중에서, ‘이 뭣고(是甚麽-시심마)’‘(, 趙州無字)’‘부모님 태어나기 전 내 본래 얼굴은(父母未生前 本來面目)’‘삼 세근(麻三斤)’‘뜰 앞의 잣나무(庭前 栢樹子)’등이 많이 쓰여 왔습니다.

화두는 논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화두를 잡고(들고) 참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사고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명상에 잠기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논리를 부정하는 것이고 사고를 끊어 없애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는 무심(無心)한 상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어찌하는 것인가?

다만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 뭣고-이 뭣고-이 뭣고-’,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의심하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심을 자꾸 키워가는 것입니다. 큰 의심 덩어리를 키워가는 것입니다. 머리를 써서 의심을 풀려고 하면 틀립니다. 고양이가 쥐를 노려 보듯, 눈을 부릅뜨고(마음을 집중해서) 화두를, 의심 덩어리를 노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를 본다(看話)’고 하는 것입니다.

박산(博山)선사께서 우리를 경책하십니다.

참선할 때 조사의 공안을 생각으로 헤아려 짐작해서는 안 된다. 설사 해석하여 하나하나 알았다 하더라도 본분(本分, 本性-진리 그 자체)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조사의 말 한 마디, 글 한 구절은 마치 큰 불무더기와 같아, 가까이 갈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인데, 어찌 그 가운데 앉고 누울 수 있으랴. 더욱 그 가운데 주저앉아 크고 작은 것을 따지고, 좋고 나쁜 것을 가린다면, 목숨을 잃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참고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무소의 뿔처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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