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無着禪師와 文殊와의 문답에서 나온 말. 五臺山에서 文殊를 親見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소를 끌고 가는 한 老翁과 길에서 만나게 됐다.
翁「어디서 오는 길이요」
師「南方에서 옵니다」
翁「南方의 佛法은 어떠합니까? 잘 住持합니까?」
師「末法比丘들이니 계율을 잘 奉行하는 자가 얼마 되지 못해요」
翁「몇이나 있습니까?」
師「3백이라고도 하고 한 5백쯤 될지 모르겠소」
師「이곳 佛法은 어떠합니까? 住持합니까?」
翁「龍과 뱀이 섞여 살고 있소. 凡聖同居라니까요」
師「몇이나 되는데요?」
翁「前三三後三三이요」.....라고 한데서 나온 말.
이는 숫자를 뜻하는 말이 아니고 前後(彼此)가 같다는 뜻이며 無量壽의 뜻으로도 쓰인다. 仁岳私記에서는, 前三三은 複數로 3000×3=9,000, 300×3=900, 30×3=90 합하여 9,900인, 文殊(翁)을 더하면 1만명이라고 풀었다.
참고
인악사기(仁岳私記,義沼)
(1) 의소(義沼,1746년 ~ 1796년)는 조선후기의 중이다. 일명 의첨(義沾), 호는 인악(仁岳), 자는 자의(子宜). 18세에 중이 되어 벽봉(碧峰)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서악(西岳) 등에게서 배웠다. 영조 44년 벽봉에게 돌아와 법을 이어받고, 설법, 상언(尙彦)에게 가서 <화엄경(華嚴經)> <선문염송(禪門拈頌)>을 배운 다음, 비슬산(琵瑟山) 등을 유력하면서 불경을 강의하였다. 정조 14년 수원 용주사(龍珠寺) 창건시 증사(證師)로서 <불복장원문경찬조(佛腹藏願文慶讚疏)> 등을 지었다. 저서로 <인악집(仁岳集)>과 수편의 경론(經論) 사기(私記)가 있다. <출처 : 위키백과>
(2) 조선시대 후기에는 학식 있는 선승(禪僧)들이 배출되어 <화엄경(華嚴經)>과 <법화경> 등을 널리 폈는데 그 중에서도 연담(蓮潭) 유일(有一, 1720∼1799)의 <연담사기(蓮潭私記)>는 인악(仁岳) 의소(義沼, 1746∼1796)의 <인악사기(仁岳私記)>와 더불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널리 읽혀지고 있다.<위키백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