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전과 동국역경원의 탄생

불교사전과 동국역경원의 탄생

근와(槿瓦) 2016. 7. 2. 22:31

불교사전과 동국역경원의 탄생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햇빛을 보게 된 불교사전-


운허스님은 후학들에게 경학을 가르치는 일 이외에는 오로지 경전 번역사업 하나에만 불철주야 매달렸다. 길을 걷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하니 역경을 위해 쏟는 그 정성과 치밀함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58년 한해만 해도 운허스님은 금강경, 정토삼부경을 한글로 옮겨 책으로 펴냈을 뿐만 아니라 조계종사 강요를 발행하였다.


운허스님은 어느 날 제자 월운을 불러 앉히더니 친히 붓을 들어 월운당 해룡장식이라 제하시고 전법게를 써내려 가는 것이었다.


왕사성에 뚜렷이 밝은 달 그 맑은 빛

예부터 오늘에 이르렀네

내 이제 그 빛을 그대에게 전하노니

잘 간직해서 산 속을 밝혀주게.


전법게를 받은 제자 월운은 송구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스님! 참으로 송구스럽사옵니다.”


! 아니야, 월운. 그대는 이미 우뚝 섰어. 그만한 수행, 그만한 공부라면 이제는 어떠한 큰일도 맡을만 하니 경학에 더욱 더 매진해 줘야겠어.”


, 스님. 스님의 분부 반드시 받들어 지키겠사옵니다.”


제자 월운에게 전법게를 내린 운허스님은 그해에도 쉬지 않고 역경에 매진하였다. 수능엄경을 한글로 펴내셨고 보현행원품, 사미율의 요약을 계속해서 간행하셨다. 어찌 보면 운허스님은 불교경전을 한글로 옮겨 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신 분 같기도 했다.


운허스님은 학인들에게 경전을 강의하실 때도 철저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눈감고도 훤히 아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강의하시기 하루 전에는 반드시 먼저 경전을 읽고 메모하기를 되풀이 했다. 스님의 문하에 여러 명의 대강백이 출현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철두철미한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해 101.


운허스님은 큰방에 대중들을 모아놓고 대중공양을 베푸신 뒤 제자 월운에게 강을 전하는 전강식을 마련하였다.


오늘로 내가 강을 놓고 월운에게 전하니 여러 대중들은 그리 아시오.”


스님은 평소 분신처럼 아끼던 염주와 강의주해 공책, 그리고 책갈피에 꽂는 간첩을 제자 월운에게 물려주었다. 이날을 기해 운허스님은 학인들을 가르치는 일을 월운을 비롯한 지관, 홍법 등의 제자들에게 완전히 물려주시고 역경사업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경사업을 진행하면서도 늘 운허스님의 가슴을 체증처럼 무겁게 짓누르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 원고를 다 만들어놓고도 막대한 출판비용 때문에 몇 년째 펴내지 못하고 있는 불교사전이었다. 운허스님은 한갓 종이뭉치로 썩고 있는 불교사전 원고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스님은 간혹 제자 월운을 보면 지나가는 말처럼 묻곤 했다.


이것봐, 월운.”

, 스님.”


그 원고보따리 잘 간수하고 있는가?”

불교사전 원고 말씀이시옵니까요, 스님?”


, 그래. 그걸 어서 책으로 펴내야 공부하다 막히면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터인데 내 생전에 책이 되어 나오기는 어려울 모양이야.”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어떻게든 스님 생전에 펴내도록 해야지요.”


원고나 잘 보관하시게. 나 간 뒤에라도 시절인연이 닿으면 월운이 출판하도록 하고, 그거 원고 만드느라고 고생한 철정, 법정, 관일, 명철, 인환, 정묵, 법안 그 수좌들한테도 면목이 없게 되었어.”

너무 염려마십시오, 스님. 무슨 길이 있겠지요, 스님.”


불교사전 원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운허스님의 얼굴빛은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묘하게 얽혀 있는 스님의 그 표정을 대할 때마다 월운은 실로 송구하기 그지없었다. 은사께서 수년간 노심초사하여 만들어 놓은 불교사전 원고가 보자기에 쌓인 채로 몇 년째 다락방에 방치되어 있는 게 너무도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산에 살고 있던 신도 이수광 거사와 오보명일 보살 내외가 통도사에 참배를 하러 왔다. 두 내외 모두 아주 신심이 깊은 신도였다.


월운스님을 찾아온 두 내외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월운스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아니! 아이고, 이번에도 거사님과 보살님이 함께 오셨군요!”

운허스님께서는 평안히 잘 계시는지요.”

, 예예.”


운허스님 이야기가 나오자 월운스님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평소와는 달리 월운스님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수심이 어리자 오보명일 보살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왜요? 노스님께서 혹 건강이 안좋으시기라두?”

, 아닙니다, 보살님. 그게 아니라 실은 노스님께서 요즘 큰 근심거리가 한 가지 있으셔서. 행여 병이라도 나실까 걱정인 게지요.”


아니 무슨 근심거리가 있으신데요!”

, 노스님께서는 우리나라 불교가 잘되자면 불교경전이 우리말 우리글로 옮겨져야 한다고 역경에만 매달려 계시는 분 아니십니까요!”


그야 노스님 생각이 백번 옳으시지요!”

그래서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만들어져야 하는 게 바로 불교사전이라고 생각하시고 몇 년이나 걸려서 그 원고를 만들어 놓으셨어요. 헌데 그걸 책으로 내지 못하고 있으니.”


아니 원고까지 다 만들어 놓으셨다면서 왜 책으로 못내신단 말씀이십니까?”

돈 때문이지요! 출판비용이 많이 드는 책이라 그래서 못내고 있거든요.”

원 세상에! 아니 돈 때문에 불교사전을 못낸단 말씀이십니까?”


오보명일 보살이 말도 안된다는 듯 혀를 차며 소리쳤다.

비용이 많이 드는 큰 사전이라서요.”


월운스님의 한숨섞인 이야기를 들은 두 내외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이윽고 이수광 거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월운스님! 그 비용 우리가 부담할테니 돈걱정은 마시고 어서 내드리도록 하십시오.”

, 예예? 아니 보살님 내외분께서요?”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우리가 책임질 것이니 어서 노스님께 말씀드리구요, 하루라도 빨리 그 책을 내도록 하십시오!”

! 고맙습니다, 보살님! 정말 고맙습니다!”


전혀 뜻밖의 제안에 감격한 월운스님은 신도 내외 앞에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부산의 불교신도 이수광 거사와 오보명일 보살 부부가 불교사전 출판비용을 책임져 주겠다고 나서 주었으니 이것은 참으로 꿈 같은 일이었다.


월운스님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들은 운허스님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운허스님은 두 내외를 만난 자리에서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래, 거사님과 보살님 내외가 참으로 불교사전 출판비용을 맡아주시겠단 말씀이시던가?”


오보명일 보살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옵니다, 스님. 더 이상 돈걱정은 마시고 어서 일을 추진하십시오.”


허허, 세상에 이런 고마울 데가 있으신가.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야.”


아닙니다, 스님. 옛날 심청이는 제 몸을 팔아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거니와 심청이의 효심과 불심에 비하면 저희들의 정성이야 감히 어찌 거기에 비할 수 있겠사옵니까.”


으음.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여러 가지 보시 가운데서 가르침을 전하는 법보시가 으뜸이라고 하셨거니와 그동안 우리 불교가 가르침을 전하는 일엔 소홀해서 이 지경이 되었는데 오늘에야 갸륵한 불심을 만나 뜻을 이루게 되었으니 이 고마운 마음을 무어라고 전해야 할지 모르겠구만.”


이수광 거사는 두 손을 저으며 겸손하게 말했다.


아니옵니다, 스님. 과찬의 말씀이시옵니다. 저희는 비록 큰 부자는 아니옵니다만 저희의 이 조그만 정성으로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 가르침과 인연을 맺어 악함을 멀리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좋은 세상이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사옵니다.”

으음……장한 일이야, 참으로 장한 일이야! 이것봐 월운!”

, 스님.”


인환수좌, 법정수좌, 정묵수좌한테 어서 기별을 해서 하루 속히 불교사전을 만들어내도록 해야겠어.”

, 스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한국불교 일천육백년 역사상 처음으로 불교사전이 햇빛을 보게 됐으니 이때의 기쁨을 퇴경 권상로 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번에 이 불교사전을 편집한 운허스님의 은혜와 공덕은 이 책을 보는 이는 다 동일하게 느낄 것이니 둔한 붓이나 어눌한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으며 다만 우리의 어두운 밤거리에 밝은 등불이 켜졌고 아득한 먼바다에 좋은 배를 만났다는 한 말씀으로 대중을 대표하여 수희하며 찬탄하는 바입니다.”


또한 청담스님은 불교사전 간행의 기쁨을 그 서문에다가 이렇게 표현했다.

이번에 운허스님께서 펴내시는 이 불교사전은 대장경을 보는 돋보기인 것이니 환히 잘 보이기도 하지만 잘 알아지기도 하는 돋보기이니 참 좋은 돋보기로다. 온 법계의 중생과 더불어 운허스님 복혜구족하소서.”


운허스님은 천이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한글판 불교사전을 펴내게 된 감회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을 출판하기로 한 작년 삼월부터 오늘까지 일년이 넘는 동안 꾸준히 도와준 인환, 법정, 정묵 세 스님과 한때 한때씩 수고하여준 철정, 법안, 관일, 명철 네 스님과 편찬하고 출판하는 데 물심양면으로 협조하고 성원하여 주신 축산, 자운, 벽안, 월하, 석주, 이불화 여러분과 이 책 간행에 큰 힘이 되어 주신 이수광 거사, 오보명일 보살님과 그리고 간행의 동기를 만들어준 월운스님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바이오.”


운허스님은 경기도 양주 봉선사를 떠난 지 근 십년 만에 봉선사 주지 발령을 받아 봉선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돌아온 봉선사는 옛모습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육이오 전란통에 대웅전은 불타버렸고 황량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설립했던 광동중학교 역시 육이오 전란통에 폭격을 맞아 가건물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형편이었다. 절살림도 형편이 어려웠고 학교살림도 말씀이 아닌 상황이라 교사들의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그러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불타버린 사찰이나 폭격을 맞은 학교건물보다도 운허스님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돈이 없어 교사들의 월급조차도 못준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의 교사가 몇 달째 급료도 못받고 굶고 있다는 이야기에 운허스님의 마음은 미어질 듯 아팠다.


부르셨습니까요, 스님.”

으음, 그래. 저 빈 걸망하고 목탁을 가져오너라. 오늘부터 내가 탁발을 나가야겠다.”

?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스님? 탁발은 저희들이 나가겠습니다, 스님.”


젊은 스님들이 기겁을 하며 말리는데도 운허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으음, 절 양식을 만들고자 탁발을 하려는 게 아니야. 광동학교 선생님들이 굶고 있어. 선생님들은 굶고 있는데 명색이 학교 이사장이라는 내가 절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그 밥이 어찌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느냐.”


운허스님은 스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는 빈 걸망을 짊어진 채 산을 내려갔다. 칠십 노구를 이끌고 손수 목탁을 치며 탁발에 나선 운허스님을 본 마을의 할머니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이고! 이거 노스님께서 다 탁발을 나오시다니요! 아유! 세상에 아니 봉선사에는 젊은 스님들도 안계신답니까요, 그래?”

허허허, 이거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봉선사 양식이 떨어져서가 아니오라 광동학교 선생님들이 굶고 계셔서요.”

아유 세상에, 세상에나! 학교선생님들이 굶고 계시다니요! 에유, 저 그럼 잠깐만 기다리시유. 내 쌀 한 말 드릴테니 우선 갖다드리시유.”

어이구 이거 고맙소이다. 보살님 정말 고맙소이다!”


봉선사 주지와 광동학교 이사장을 다시 맡게 된 운허스님은 칠십 노구를 이끌고 손수 탁발을 해다가 굶고 있던 광동 중학 교사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었다. 가난과 굶주림에 지친 광동학교 교사들은 다른 학교로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노스님의 정성에 감복해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게 되었다.


운허스님은 자나깨나 광동학원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늘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것봐, 월운.”

, 스님.”


광동학교는 우리 봉선사를 비롯해서 수국사, 현등사, 봉영사가 힘을 모아 세운 학교야.”

, 스님. 알고 있습니다.”


여기 이 교가를 좀 봐.”

…….”


이 교가는 내 속가형님 되시는 춘원 이광수 선생이 지어주신 교가야.”

, 스님.”


월운스님은 춘원 이광수 선생이 지었다는 교가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운학산 구름 속이 우리들 배우는 집

송백숲 푸른 그늘 맑은 물 흐르는데

광동, 광동, 광동 우리 모교

구름이 간들 산이야 움직이랴

눈서리 되게 쳐도 송백은 한빛일세

광동, 광동, 광동 우리 모교

바다로 흘러 흘러 쉬임없는 내와 같이

광동의 밝은 빛이 이 나라 빛내로세

광동, 광동, 광동, 우리 모교.


이 광동중학 교가를 지어준 춘원도 복쪽으로 끌려가 버렸으니 전쟁만 일어나지 아니했더라면 학교가 이젠 자리를 제대로 잡았을 때인데…….”

운허스님은 회한이 어린 눈빛으로 먼산을 바라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먹고 살기가 어려운 지경이라 공납금도 제대로 못내는 아이들이 많다니 정말로 큰 걱정입니다, 스님.”

허나 이 광동중학교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 키워야 해. 미군들이 도와주어서 건물은 다시 지었지만 교사들 대우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으니 그게 걱정이야. 도서관도 지어야 하고 과학관도 있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은데 말이야.”


나라를 잘되게 하려면 인재양성이 첩경이요, 불교를 중흥시키려면 불교경전을 한글로 옮겨야 한다는 게 운허스님의 두 가지 큰 서원이었다.


운허스님은 거처가 마땅치 않아 봉선사에서 선학원으로 선학원에서 다시 통도사로 옮겨다니면서 불교경전을 한글로 옮기는 일만은 쉬지 않고 계속하였다. 1961년에는 불교사전의 출판에 이어 한글로 된 부모은중경, 목련경, 우란분경을 펴내셨으며 1962년에는 역시 한글로 된 승만경, 금광명경을 계속해서 펴내었다.


운허스님은 1962815, 종교지도자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훈장을 받으셨고, 196331일에는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공적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스님은 결코 이런 치하에 만족하실 분이 아니었다. 스님은 더욱더 열심히 불교경전을 우리말 우리글로 옮기는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이때 스님의 나이 벌써 일흔셋.


스님 혼자의 힘으로 저 많은 불교경전을 한글로 옮긴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운허스님은 당시 총무원장을 맡고 있던 이청담 스님과 당시 동국대학교 총장이던 김법린 박사를 한자리에서 만나 역경사업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동국대학교에 동국역경원을 설립해 줄 것을 간절히 요청했던 것이다.


역경원 설립에 대한 운허스님의 요청을 받은 김법린 박사는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불교중흥을 위해서는 역경사업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는 것은 총장인 저로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헌데 학교에 역경원이라는 기구를 설치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재정적인 지원은 학교의 형편상 어려운 실정이니 이게 참 걱정입니다.”


재정문제에 대해서만은 난색을 표하는 김법린 총장에게 이청담 스님이 말했다.

, . 그렇다면 말씀입니다, 김총장님. 우선 동국대학교에서는 학교 안에 역경원이라는 기구만 설치해 주십시오.”


글쎄, 기구만 설치를 하고 재정지원을 못하면 하나마나가 아니겠습니까, 원장스님?”

역경원 설치에 따른 재정지원은 종단에서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종단에서 재정지원만 책임져 주신다면 학교에 역경원을 설치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면 재정은 종단에서 맡아주시고 역경사 양성이나 역경사업 자체는 운허스님께서 맡아주시는 것이지요?”


운허스님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흔연히 동의하며 말했다.

아 좋습니다. 학교에서는 기구를 설치해 주시고 종단에서는 재정지원을 해 주시고 그러면 이 늙은 중은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역경사를 양성할 것이오. 역경사업을 추진해서 팔만대장경을 반드시 우리말 우리글로 옮기는 일을 기꺼이 맡겠습니다.”


운허스님의 말을 받아 청담스님이 말했다.

, 그럼 우리 불교계의 숙원사업 한가지가 오늘에야 비로소 해결되게 됐습니다.”


논의가 순조롭게 매듭지어지자 운허스님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원장스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총장이신 김박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동국대학교에 역경원이 설치되서 부처님 팔만사천 법문이 한글책으로 나오게 되면 이 나라 불교는 반드시 새로운 중흥을 맞게 될 것이니 이 아니 좋은 일이겠습니까!”

허허허, 자 그럼 이제 운허스님만 믿겠습니다.”


청담스님은 파안대소를 하며 운허스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운허스님은 이렇게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청담스님의 도움으로 동국대학교에 동국역경원을 설립하였고, 곧이어 그 초대원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출전 : 고승열전(운허큰스님 편,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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