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경대강좌(151)-소이자하 수보리~

근와(槿瓦) 2016. 5. 21. 00:12

금강경대강좌(151)-소이자하 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원문]

所以者何 須菩提 佛說般若波羅蜜 即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解義]

그 다음에 부처님께서 왜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지어 가지고 가지라 했느냐 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부처님이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반야바라밀 · 관조반야바라밀 · 실상반야바라밀의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서 이제까지 그게 실지로 말하면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설명해서 이 문자반야는 어떻고 또 관조반야는 어떻게 살피는 것이라 했지만 실은 살필 것도 없다. 마지막 자성자리인 실상반야는 어떻고 어떤 것이라 설명했지만, 또 그래서 그것을 실천해서 바라밀을 해서 부처가 되고 하는데 지혜가 제일이니까 그랬지마는 사실은 그게 반야바라밀이 아닌 것이므로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긍정하시는 것 같으면서 부정하시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것으로 언제나 같은 말씀 같은 그런 내용이지만 그러나 언제나 그 말씀하시는 구절(句節)에 의지해서 그 구절은 해결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을 여지껏 고구정녕(苦口叮嚀)으로 이십년 동안 설명하셨는데 이제사실은 그게 반야바라밀이 아니다.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문자나 반야에 의지해서 걸려 있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보시하는 것이나 계행 가지는 것이나 인욕이나 다 잘하면 세상에 알려지고 저절로 밖으로 드러납니다. 또 정진하는 것도 모두 보고 알 수가 있고 또 선정한다고 앉아 가지고 며칠씩 먹지도 않고 하게 되므로 그것도 알 수 있습니다. 요새 미술가들도 선정과 같은 그런 것이 있습니다. 한 일 주일씩 안 먹고 삼매(三昧)에 들어가서 구상(構想)을 합니다. 우리 한국에도 그런 굉장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일 주일씩 어떤 땐 한 달씩 자기도 모르고 앉아서 구상하고 그럽니다. 이렇게 일종의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가면 자연히 지혜가 나옵니다. 이 여섯가지 바라밀 가운데 구경(究竟)에 들어가면 다 하나가 됩니다. 이 금강경은 반야바라밀을 밝히는 경전이고 반야를 역성(力說)하는 경전이기 때문에 복 짓는 수행도 따라오게 됩니다. 그런데 수즉파 파즉수(水即波波即水)로 물과 물결을 둘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복 짓는 것이나 지혜를 닦는 것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내가 반야바라밀을 그렇게 애써 설명했지만 그게 반야바라밀이 아니니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을 해라.하신 말씀에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뜻은 앞에서 말한 것과 역시 같은 뜻입니다. 견성하기 위해 참선한다고 벽을 향해 돌아앉아 있지만 그것은 초학자(初學者)가 금강반야(金剛般若)를 체득(體得)해야 하겠으니 이 마음자리를 깨닫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지, 실상 금강이란 마음자리에서는 그것은 다 버려야 할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금강반야의 실체는 아니고 하나의 방법으로 설명하느라고 이름한 것뿐입니다.

 

바라밀이다, 도피안이다, 하는 말은 생사니 번뇌니 망상이니 하는 것이 떨어져서 불생불멸하고 영원불멸하는 생명체가 온전히 티 하나 없이 드러나면 도피안이고 이것을 성불했다, 생사를 해탈했다, 그럽니다. 그때 가면 일체가 무소부지(無所不知)하고 무소불능(無所不能)한 본체의 지혜가 나타납니다. 그걸 설명하느라고 금강이니 반야바라밀이니 하고 또 부인(否認)하고 그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마음 자체가 곧 반야바라밀이 다 되어 있습니다. 이미 말씀은 다 끝나신 것이지만 이것을 문자로 설명하면서 틀림없이 이론으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일을 위해불설 반야바라밀은 곧 그것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니라.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출전 : 금강경대강좌(청담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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