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사리보초삼매경(文殊師利普超)

문수사리보초삼매경(文殊師利普超三昧經)

근와(槿瓦) 2015. 10. 19. 00:43

문수사리보초삼매경(文殊師利普超三昧經)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0 결의품(決疑品)

그리하여 아사세왕은 보살과 성문들이 공양을 마치고 다 씻은 것을 보고 다시 낮은 평상을 가져다 연수 앞에 놓고 거기 앉아 법을 들으려 하였다.

「연수님, 내 의심을 풀어 주십시오.」

 

연수는 답하였다.

「대왕의 의심은 항하의 모래알 수 같은 부처님도 풀지 못할 것입니다.」

 

왕은 자신이 구제될 수 없을 것을 반성하고 마치 큰 나무가 부러져 땅에 쓰러지는 것처럼 그 평상에서 떨어졌다.

 

카아샤파는 말하였다.

「대왕은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마십시오. 왜 그러냐 하면 연수 동진은 큰 공덕의 갑옷을 입고 묘한 방편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니 천천히 물어 보십시오.」

 

왕은 곧 일어나 연수에게 물었다.

「아까 왜 항하의 모래알 수 같은 부처도 내 의심을 풀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까.」

 

연수는 말하였다.

「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처님네는 마음의 행을 반연합니까.」

「아닙니다.」

 

「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처님네는 마음의 행을 일으킵니까.」

「아닙니다.」

 

「부처님네는 마음의 행을 없앱니까.」

「아닙니다.」

 

「부처님네는 유위(有爲)를 행합니까.」

「아닙니다.」

 

「부처님네는 무위(無爲)를 행합니까.」

「아닙니다.」

 

「부처님네는 무위를 행하라고 가르칩니까.」

「아닙니다.」

 

「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모든 법은 행이 없으며 행이 없으면 돌아가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사람을 법으로 교화하여 결단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연수는 말하였다.

「왕은 아셔야 합니다. 그 때문에 나는 아까 왕의 의심은 항하의 모래알 수 같은 부처도 풀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 대왕이여, 가사 어떤 사람이 「나는 티끌 · 어두움 · 재 · 연기 · 안개 등으로 허공을 더럽히리라.」한들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더럽힐 수 없습니다.」

 

「또 설령 대왕이 나는 저 허공을 가져다 깨끗이 씻겠다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연수는 말하였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여래는 모든 법은 허공과 같음을 환히 알며 정각을 이루어 저절로 깨끗해진 것은 더러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법이 더럽혀져 그 한정을 보이겠으며 또 어떻게 그것이 깨끗해졌다고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대왕은 이 법의 이치를 평등하게 보십시오. 그러기 위해 나는 아까 항하의 모래알 수 같은 부처도 풀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 대왕이여, 모든 부처는 안 마음에도 머무르지 않고 바깥 마음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법은 저절로 청정하여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니 저절로 청정하면 있는 곳이 없고 또 소원의 머무르는 곳도 없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자재를 얻는 것은 모든 법이 자연이기 때문이요, 자연이 없음은 모든 법은 일어남이 없기 때문이며 차질이 없음은 모든 법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요, 가진 것이 없음은 모든 법은 형상을 떠났기 때문이며, 형상이 없음은 모든 법이 허무이기 때문이요, 장애가 없음은 모든 법이 가르친다는 관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화가 없음은 모든 법이 자연이어서 가짐이 없기 때문이요, 가짐이 없음 · 모든 법이 돌아갈 곳을 버렸기 때문이며 돌아갈 곳이 없음은 모든 법이 헤어짐이 없기 때문이요, 헤어짐이 없음은 모든 법이 생김이 없기 때문이며 의지함이 없음은 모든 법이 저절로 깨끗하기 때문이요, 심성이 깨끗함은 모든 법이 허공처럼 분별이 없기 때문이며 견줄 데가 없음은 모든 법이 짝이 없기 때문이요, 짝이 없음은 모든 법이 둘을 떠났기 때문이며 둘이 없음은 모든 법이 담박하기 때문입니다.

 

한량이 없음은 모든 법이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요, 가이 없음은 모든 법이 한계가 없기 때문이요, 진실이 없음은 모든 법이 뒤바뀌어서 진실하지 않은 데에 머무르기 때문이며 뒤바뀜이 없음은 모든 법이 항상 깨끗하여 편안하기 때문이요, 영원한 것은 모든 법이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며 청정한 것은 모든 법이 본래 깨끗하여 밝게 통달하기 때문이요, 자연인 것은 모든 법이 나가 없으면서 빛나기 때문이며 안온한 것은 모든 법이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머뭇거림이 없음은 모든 법이 안이 고요하기 때문이요, 거짓이 없음은 모든 법이 마침내 없어서 진실하기 때문이며 고요함은 모든 법이 담박한 모양이기 때문이요, 나가 없음은 모든 법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며 번뇌가 없음은 모든 법이 해탈하였기 때문이요, 적멸(寂滅)로 돌아감은 모든 법이 생각을 떠났기 때문이며 두려움이 없음은 모든 법이 여러가지를 떠났기 때문이요, 평등함은 모든 법이 평등하게 해탈하였기 때문입니다.

 

황홀함은 모든 법이 본제(本際)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요, 생각이 없음은 모든 법이 무너짐이 없고 고요하기 때문이며 공(空)에 순응함은 모든 법이 갖가지 견해를 떠났기 때문이요, 소원이 없음은 모든 법이 삼세를 떠났기 때문이며 삼세가 끊어졌음은 모든 법이 과거 · 미래 · 현재가 없기 때문이요, 함이 없이 평등함은 모든 법이 끝내 생(生)이 없기 때문입니다. 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법은 생기지도 않고 가짐도 없으며 또 진실도 없는데 어떻게 누가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그 법을 과연 끊을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법은 열반과 같이 평등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가장 알고 바른 깨달음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의심을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왕은 어떤 것을 짓기 위해 수행해서는 안될 것이요 다만 뒤바뀐 마음을 버리고 진실한 관(觀)을 닦아 근본이 없음을 관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잘 관찰하면 모든 법에서 받아들일 것이 없고 깨달을 것도 없으며 함께 놀 것도 없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만일 모든 법과 함께 놀 것도 없으면 그것을 믿음으로 삼아야 하고 그것을 믿으면 고요해질 것이며 고요해지면 저절로 깨끗해질 것이요, 저절로 깨끗해지면 지을 것이 없을 것이며 지을 것이 없으면 모든 법에 주인이 없을 것이니 그렇다면 모든 법을 짓는다 하나 실은 지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왕은 아셔야 합니다. 지음이 없으면 그것이 열반이니, 모든 법은 지어짐도 없고 무너짐도 없으며 지음도 없고 짓지 않음도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열반입니다.

 

만일 대왕이 이 해탈에 순응하면 그것은 평등한 해탈이요, 평등하게 해탈하면 그 법에는 나아감도 없고 얻을 것도 없으며 좋아하거나 미워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일체의 법에는 이로운 것도 없고 구할 것도 없으니 그것은 근본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이 없으면 생김이 없고 생김이 없으면 또한 근본이 없는 것이니 그 근본이 없는 것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이 없는 것은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대왕이 이 근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믿으면 일체의 의심은 다 저절로 끊어질 것입니다.

 

또 대왕이여, 눈은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으로서 근본이 없기 때문이니 근본이 없고 자연이므로 눈이라 합니다. 귀 · 코 · 혀 · 꿈 · 마음 등에 있어서도 그와 같습니다. 대왕이여, 마음은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습니다. 마음 등은 자연으로서 근본이 없기 때문이니 근본이 없고 자연이므로 마음이라 합니다.

 

왕은 아셔야 합니다. 몸은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으로서 근본이 없기 때문이니 근본이 없고 자연이므로 몸이라 합니다. 느낌 · 상상 · 지어감 · 의식 등에 있어서도 그와 같아서, 의식은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습니다. 의식 등은 자연으로서 근본이 없기 때문이니 근본이 없고 자연이므로 의식이라 합니다.

 

왕은 아셔야 합니다. 모든 법은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으로서 근본이 없기 때문이니 근본이 없고 자연이므로 모든 법이라 합니다. 마음은 형상이 없으므로 볼 수도 없고 해칠 수도 없으며 있는 곳도 없고 말도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환상이 밖에도 있지 않고 안에도 있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란 본래 깨끗하고 저절로 밝은 것입니다. 마음이 본래 깨끗하면 그것은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는 것입니다.

 

왕은 아셔야 합니다. 이 본래 깨끗한 마음이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다면 그것은 허망한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으며 위태로울 것도 없습니다. 분명한 생각이 이 무엇을 짓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한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혹 집착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치한 범부의 욕심에 의한 번뇌이니 그것을 어찌 진실이라 하겠습니까. 진실하지 않은 생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모든 법은 진리가 아닌 데에 머무르고 진리가 아닌 데에 머무르므로 진실한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비유하면 저 허공은 빛깔이 없어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으며 또 버릴 수도 없고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허공은 빛깔이 없어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으며 또 버릴 수도 없고 말도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티끌 · 연기 · 불꽃 · 구름 · 안개 등으로 이 허공을 더럽히려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마음은 본래 깨끗하고 저절로 밝은 것이므로 티끌 · 연기 · 불꽃 · 구름 · 안개 등으로 덮어 더럽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비유하면 티끌 · 연기 · 불꽃 · 구름 · 안개 등이 허공에 머물더라도 끝내 그 허공을 물들여 더럽힐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대왕이여, 〈나〉라는 생각을 내어 「이것은 내것이다」하여 그 인연으로 음욕 · 분노 · 우치 등 번뇌를 일으키더라도 그것은 마음을 더럽히지 못하고 마음의 본래 깨끗함을 더럽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왕은 거기에 의심을 품지 마십시오.

 

왕은 알고 싶습니까. 과거의 마음과 미래의 마음은 형상이 없고 미래의 마음과 과거의 마음도 형상이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의지하는 데가 없고 또 가질 것도 없습니다. 앞의 마음의 생각이 뒤의 마음을 막을 수 없고 뒤의 마음의 생각은 앞의 마음을 막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이런 줄을 밝게 알아 이렇게 관찰해야 합니다. 즉 과거의 마음은 이미 없어졌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의 마음은 머무르는 곳이 없습니다. 모든 법은 미래에도 머무름이 없다고 보아 모든 견해를 버리면 의심됨이 없을 것이니 그것은 해탈했기 때문입니다.

 

청정한 생각이란 모든 법에서 번뇌를 떠나 세상에 두루 평등하고 평등하게 두루 밝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것도 없고 말도 없으며 또 말도 없으나 어디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고요함의 이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요함이란 것도 법에서 따지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니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법이 있는 곳을 찾는다면 말에서 찾아야 할 뿐일 것입니다.

 

만일 대왕이 모든 법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으면 의심하는 번뇌를 다 버리고 모든 법에서 버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그 의심은 모든 법과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법계는 평등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법과 법계 등 이런 법은 다 평등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왜 그러냐하면 모든 법은 법계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법계와 평등하면 모든 법과 평등할 것이니 그러므로 법계는 모든 법과 평등하며 또 모든 법을 평등하게 어거한다는 것입니다.」이렇게 말했을 때 아사세왕은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어 기뻐 뛰며 마음이 아주 편안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장하고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그처럼 시원하게 설명하여 내 의심을 풀어 주었습니다.」

 

연수는 말하였다.

「왕은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크게 어두운 의심의 맺힘입니다. 왕은 어떻게 최후의 법을 알았기에 「장합니다. 연수님, 그처럼 시원스레 설명하여 내 의혹을 풀어 주었습니다.」고 말하였습니까.」

 

「내 온갖 번뇌를 없애어 주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마치더라도 반드시 도에 이를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대왕이 큰 의심을 가지고 모든 법을 끝까지 알아 열반에 이르려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열반을 희망하고 열반을 이루었는데 또 어떤 법에서 열반을 바랍니까. 최후의 열반이란 모든 법이 본래 깨끗해 남(生)이 없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아사세왕은 백천 냥의 값어치되는 부드럽고 묘한 옷을 가져다 연수에게 바치되 그 법을 갚으려고 그 몸에 입었다. 연수 동진은 갑자기 사라져 어디로 갔는지 그 몸은 보이지 않고 허공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지금 대왕이 연수의 몸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의심을 보는 것도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의심을 보는 것처럼 모든 법을 보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을 보는 것처럼 보는 것이 없음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소리는 또 말하였다.

「대왕이여, 몸이 보이는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연수 다음에 혜영당(慧永幢)이라는 보살이 앉아 있었다. 아사세왕은 그에게 옷을 주었다. 그러나 그 보살은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고 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벗어나고 싶지 않고 성내지도 않으며 열반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범부를 가까이하여 그 옷을 받지 않고 범부의 행을 벗어난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배우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번뇌를 벗어난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배우지 않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배울 것이 없어 법을 뛰어난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연각에게서도 받지 않고 연각을 뛰어난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여래에게서도 받지 않고 여래의 법을 뛰어난 이에게서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만일 이런 법을 행하지도 버리지도 않는 이가 있으면 나는 그에게서 받을 것이니 받는 이나 주는 이가 다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시는 청정한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사세왕은 곧 그 옷을 혜영당에게 입히려 하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곧 사라지고 공중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그 몸이 보이는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다음에 신희적(信喜寂)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왕은 그에게 그 옷을 주려 했다. 그러나 그 보살은 말하였다. 「그 몸이 보이는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나도 자신을 보는 이에게서 받지 않는 것처럼 남을 보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번뇌에 집착한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번뇌를 떠난 이에게도 받지 않으며 고요한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뜻이 안정된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뜻이 어지러운 이에게서 받지 않으며 지혜로운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지혜롭지 않은 이에게서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그 옷을 그 보살에게 입히려 하였다. 그는 곧 사라지고 공중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그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다음에 불사소념(不捨所念)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왕은 그에게 옷을 주었다. 그러나 그 보살은 받으려 하지 않고 말하였다. 「나는 몸을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말을 의지하는 이에게도 받지 않고 지혜를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이치를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오음을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종성(種姓)을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진리를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부처의 음성을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법은 의지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으며 끝까지 편안하여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왕은 그에게 옷을 주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사라지고 공중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그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다음에 존지(尊志)라는 보살이 앉아 있었다. 왕은 그에게 옷을 주었으나 그는 받으려 하지 않고 말하였다. 「나는 비열하게 해탈하려는 이에게서는 받지 않습니다. 만일 대왕이 위 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마음을 두어 그 마음이 평등하면 도의 뜻도 평등할 것이니 도의 뜻이 평등함을 믿고 도가 평등하면 그 마음도 평등할 것이요. 도의 뜻이 평등하면 모든 법도 평등할 것이며 모든 법이 평등하여야 나는 대왕에게서 그 옷을 받을 것입니다. 또 모든 법에서 받거나 버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모든 법에서 해탈하려는 생각도 해탈하려하지 않는 생각도 없으며 또 모든 법에서〈나〉를 보지 않고〈나〉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의 옷을 나는 받을 것입니다.」

 

왕은 그에게 옷을 주려 하였다. 그는 곧 사라지고 공중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그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다음에 정화왕(定華王)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왕은 그에게 옷을 주려 하였다. 「만일 대왕이 온갖 삼매를 행하여 그 뜻이 고요하여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고 모든 법은 본래 깨끗하고 평등하여 해탈할 것이 없다고 알고 믿으면 나는 당신에게서 이 옷을 받겠습니다.」

 

왕은 그 옷을 보살에게 입히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사라지고 공중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그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다음에는 무체득(無逮得)이라는 보살이 앉아 있었다.

왕은 그에게 옷을 주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받으려 하지 않고 말하였다. 「만일 대왕이 일체 번뇌에서 제도될 줄을 믿고 문자와 음성은 다 평등하여 얻을 것이 없음을 알며, 모든 법은 얻을 것이 없으므로 중생을 인도하고 이롭게 하되 얻을 것이 없는 도리를 보아 갖가지 즐거움을 어거하지 않으면서 장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는 왕에게서 그것을 받으리다.」

 

왕은 그 옷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사라지고 공중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그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다음에 정삼구(淨三垢)라는 보살이 있었다. 왕은 그에게 옷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받으려 하지 않고 말하였다. 「대왕이여, 만일 자신으로 받는 이도 없고 주는 이도 바라는 것이 없으면 나는 그것을 받으리다.」

 

왕은 옷을 던졌다. 그는 곧 사라지고 허공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그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다음에 화제법왕(化諸法王)이라는 이가 앉아 있었다. 왕은 그에게 옷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받으려 하지 않고 말하였다. 「만일 대왕이 성문을 나타내어 열반에 들되 멸도(滅度)하지 않고 연각을 나타내어 열반에 들되 멸도하지 않으며 부처를 나타내어 열반에 들되 멸도하지 않아 처음과 마치는 법이 없고 멸도하는 법이 없으면 나는 그 옷을 받을 것입니다.」

 

왕은 그 옷을 던졌다. 그는 곧 사라지고 허공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그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왕은 이렇게 차례로 옷을 주려 하였으나 보살들은 모두 사라지고 각기 말하기를,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하고 평상과 책상들도 다 사라졌다.

 

아사세왕은 마하아 카아샤파에게 말하였다.

「지금 여기 계시는 당신이 받으십시오. 당신은 존상으로서 부처님도 칭찬하십니다. 당신이 받으십시오.」

 

카아샤파는 답하였다.

「나는 음욕 · 분노 · 우치 등을 다 버리지 못했으므로 지금 나로서는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무명을 버리지 못했고 애욕을 버리지 못했으며 고뇌를 끊지 못했고 훈습을 없애지 못했으며 끝까지 깨닫지 못했고 또 그 길을 따르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부처를 보지 못했고 법도 듣지 못했으며 대중을 어거하지도 못하고 번뇌를 버리지 못했으며 생각을 내지도 못했고 생각을 떠나지 못했으며 지혜를 세우지도 못했고 지혜를 떠나지도 못했습니다.

 

내 눈은 깨끗하지 못하여 지혜를 짓지도 못했고 또 없애지도 못했습니다. 내게 보시하는 이는 큰 복을 얻지 못할 것이요, 복이 없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고 죽는 법에 있지도 않고 멸도하는 법도 없으므로 내게 보시하는 이는 부처의 덕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대왕이 이런 도리를 지닐 수 있으면 나는 그 옷을 받겠습니다.」

 

아사세왕은 옷을 던졌다. 그는 갑자기 사라지고 공중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왕은 차례로 옷을 던졌으나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렇게 오백의 뛰어난 제자들은 모두 황황히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허공에서 소리가 들리었다.

「왕에게 보이는 사람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왕은 생각하였다.

「보살과 성문들은 모두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돌아가 첫째 왕후에게 주리라.」그는 궁중에 들어가 두루 살펴 보았으나 여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사세왕은 곧 어떤 삼매를 얻었다. 그 눈에는 어떤 빛깔도 보이지 않았다. 즉 어떤 남녀도 보이지 않았으니 소년도 보이지 않고 소녀도 보이지 않으며 늙은이도 보이지 않고 젊은이도 보이지 않았다. 담도 보이지 않고 나무도 보이지 않으며 집도 보이지 않고 성곽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 몸을 보았을 때 다시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 몸을 나타낸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왕은 곧 자기가 입으려 하였다. 그러나 자기 몸이 보이지 않고 일체의 형상은 다 없어졌다. 다시 소리가 들리었다. 「대왕은 온갖 빛깔과 형상을 보지 못하거든 고요히 그 의심을 관찰해 보고, 그 의심을 관찰하는 것처럼 모든 법도 그렇게 관찰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만일 보는 것이 없으면 그것은 곧 보면서 보는 것을 떠난 것입니다. 만일 보는 것을 떠나 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보는 것이 없으면서 보는 것을 떠나지 않은 것이니 이렇게 보면 그것은 평등한 관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아사세왕은 일체의 집착하는 생각을 버리고 삼매에서 일어나서는 다시 대중과 왕후 · 미녀 · 성곽 · 집 · 등이 여전히 있음을 보았다.

 

아사세왕은 연수에게 사뢰었다.

「아까 그 대중은 다 어디 있었습니까. 내 앞에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했습니다.」

 

연수는 대답하였다.

「마치 대왕이 의심이 있은 것처럼 그 대중도 아까 거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물었다.

「대왕은 지금 대중을 봅니까.」

「봅니다.」

 

「어떻게 봅니까.」

「의심을 보는 것처럼 대중을 보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어떻게 의심을 봅니까.」

「내가 눈 앞에 있는 대중의 형상을 보는 것처럼 의심도 그와 같아 그 안팎을 볼 수 없습니다.」

 

「역죄(逆罪)를 범한 사람은 끊임 없이 무간지옥에 있을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왕은 자신이 지옥에 갈줄을 압니까.」

「연수님,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었을 때 어떻게 감옥에 들어가는 법을 보았기에 이들은 세 갈래 나쁜 길로 나아가고 이들은 천상에 가며 이들은 열반으로 간다고 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연수님, 살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모든 법을 깨달았습니다. 그 법을 깨달았다 하지만 얻은 법이 없습니다. 지옥으로 가거나 천상에 가거나 열반에 들거나 그 모든 법은 다 공(空)입니다. 만일 공의 돌아가는 곳을 분별하고 또 그 공을 보는 사람은 지옥에 가는 일도 없고 천상에도 가지 않으며 열반에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모든 법은 파괴 되지 않고 다 법계로 돌아갑니다. 그 법계란 나쁜 세계에도 돌아가지 않고 천상에도 오르지 않으며 열반에도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무간지옥과 역죄가 곧 법계요, 모든 역죄의 근본이 곧 법계며 본래 깨끗한 것이 곧 역죄요, 모든 역죄가 곧 본래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본래 깨끗한 것입니다. 연수님, 그러므로 모든 법은 결국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로써 보면 나쁜 세계에 돌아가거나 천상에 오르거나 열반에 들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연수는 말하였다.

「대왕은 왜 불법을 어지럽게 합니까.」

 

왕은 답하였다.

「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불법을 위태롭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부처님도 나가 없다고 말하고 진리의 근본을 말하였습니다. 나가 없으면 사람도 없고 사람이 없으면 중생의 실상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짓는 것도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며 또 받는 이도 없는 것입니다.」

 

연수는 또 물었다.

「대왕의 의심은 없어졌습니까.」

 

왕은 답하였다.

「벌써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없어졌습니까.」

「영원히 없어졌습니다.」

 

「이 대중은 다 왕의 역죄를 알고 있는데 왕은 어째서 없다 합니까.」

「없습니다.」

 

「어째서 없습니까.」

「그 역죄에서 벗어나 번뇌가 없어지고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역죄나 이 대중의 역죄나 그 모든 역죄는 곧 보살의 유순법인(柔順法忍)으로서 대중을 다 이 법인에 들게 하는 것이니 그 역죄에 집착할 것이 아닙니다. 연수님, 이른바 역죄란 저기서 이리로 오는 것으로서 어떤 역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역죄에 집착할 것이 아닙니다.」

 

때에 혜영당 보살이 찬탄하였다.

「대왕은 길을 깨끗이 하였기에 그런 법인을 얻은 것입니다.」

 

왕은 답하였다.

「모든 법은 처음과 끝이 다 깨끗한 것입니다. 또 모든 법은 끝까지 고요하여 더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물들임으로써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니 그 도에 집착함이 없으면 그것을 도라 합니다. 또 도란 생사에 돌아가는 것도 아니요, 열반에 이르는 것도 아닙니다. 성현의 도는 인도하거나 어거하는 일이 없고 도를 일으키는 일이 없으므로 도라 하는 것으로서 도라 하지만 도는 없는 것입니다.」

 

아사세왕은 이렇게 말하고 유순법인을 밝게 통달하게 되었다.

그 때에 마흔 두 사람의 여자는 연수의 신통 변화를 보고 다 위 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고 오백 사람은 번뇌를 멀리 떠나 법눈이 깨끗하게 되었으며 한량없는 백천 대중은 모두 왕궁 문 밑에 모여와 법을 듣고 공양해 섬기려 하였다.

 

연수 동진은 발가락으로 땅을 눌렀다. 왕사성은 다 유리로 변하여 그 성과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다 연수 보살과 성문들을 보았는데 그것은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것과 같았다. 연수 동진은 그들을 위해 알맞게 설법하여 그 법을 들은 팔만 사천 사람은 다 법눈이 깨끗해졌고 오백 사람은 다 위 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내었다.

 

 

출전 : 한글대장경(경집부 69)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