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輪廻)

영원한 자유-32(성철큰스님,320페)

근와(槿瓦) 2023. 4. 29. 05:09

영원한 자유-32(성철큰스님,32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최면술과 윤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

 

  사람들은 브록샴 테이프에 담긴 이야기가 갖고 있는 분위기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테이프에 담긴 대화는 피술자가 그 당시를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암시해 주는 자질구레한 사항들을 쌓아 놓은 것이기도 하다.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실의 목록이나 인명록을 조사할 때처럼 브록샴 테이프에 담긴 대화의 사실 여부를 조사해 보았다.

  요크 지방에 한번도 가 본 일이 없는 여인이 유태인 대학살 당시 젊은 유태 여인으로서 요크 지방에서 살았다는 경험을 겁에 질려서 아주 자세하고 조금도 꾸밈없이 말하는 것과 같은 일은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조사에 참가한 이들은 그녀가 살았다는 곳을 가 보았고,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모조리 검토해 보았다. 또 역사학자, 고고학자, 기록보관인들과 심리학자들을 찾아가 의문나는 점을 물어 보기도 했다. 그들에게 얻은 답변은 언제나그것은 정말이다또는그것은 정말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역사가가그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답변한 경우도 있었으나 좀 더 연구하고 조사한 뒤에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정정한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

  최면술과 전생에 대하여 서구의 심리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미지의 땅에 비견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미지의 땅을 탐험하기 위해 배를 타고 찾아다닐 뿐 배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마음의 문제인데, 도대체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서는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마음이 어떠한 일을 행하는가 설명함으로써 정의를 내려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영사기의 필름으로부터 투영된 한 장면을 토론하는 것과 같이 마음의 작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브록샴 씨가 제인 에반스 여사를 통해 보여준 현상은 대부분의 최면술 개업의들이 시도하여 보여주는 것과는 틀리다. 다시 말해서 최면술 피술자가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전생을 기억하는 방법은 드문 일인 것이다. 일반 심리학에서는 최면에 들어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을 금생의 과거 일을 다시 경험해 보는 것으로 해석한다. 금생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서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경험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설사 정신과 의사가 브록샴의 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그의 이론에 상반되는 어떤 이론들을 내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브록샴의 이론이 그르다고 확증할 수 있는 지식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백여 년 동안이나 사람들은 최면술을 오해하여 왔으며, 의학자나 전문인들도 또한 최면술에 대하여 그릇된 견해를 가져 왔다.

  최면술의 선구자는 18세기 후반기의 오스트리아 사람인 메스메르 씨였다. 그는 최면술 Mesmerism을 시도하여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빠리의 전문가협회는 메스메르의 최면술에 대한 이론과 실례를 조사해 보고나서, 최면술은 속임수이며 메스메르는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그 후 메스메르는 대중들로부터 멀어져갔다. 의학 잡지들은 여러 해 동안 최면술에 대한 실험 보고를 게재하기를 거부했다. 1842년 마취약 대신 최면술을 사용하여 많은 수술을 한 외과의사가 있었다. 환자가 최면에 든 동안 아픔을 모르게 다리를 절단한 수술에 대하여 실험 보고 형식의 논문을 발표하자, 영국 의학협회는 뒷날 그들의 의사록에서 이 실험 부분을 삭제하도록 합의했다. 그들은환자들이 감쪽같이 속아넘어가게 하여 환자가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가장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최면술이 메스메리즘 Mesmerism이라 불리던 단계에서 벗어나, 그에 대한 연구가 진일보하게 되면서, 히프노티즘 Hypnot-ism이라고 일컬었는데 그 뜻은잠을 자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자 파블로브는최면이란 수면의 한 형태라고 보기도 했으나 이 역시 올바른 견해는 아니다.

  뇌파전위기록기를 사용한 임상실험 결과, 최면이 일종의 수면 상태나 아니면 반쯤 의식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뇌파전위기록기란 두개골에 전극을 부착시켜 뇌의 활동을 측정하는 기계를 말한다. 뇌파전위기록기를 최면술 피술자의 머리에 씌우고 그 뇌파를 기록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의 뇌파 활동은 잠든 사람의 뇌활동과 같지 않고 오히려 완전한 의식을 가진 사람의 뇌활동과 같았다. 과거에는 최면을 수면의 한 형태라고 정의했으나 이와 같은 발견이 있은 뒤부터는 최면 상태를의식의 변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정신과 의사들은 마치 꿈을 분석해 보듯이 전생기억을 논했다. 꿈이라고 하는 환상에 적용되는 동일한 원리를 최면 상태 속에서 경험하는 환상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꿈과 전생기억은 지나간 인생에 근거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럴 경우, 브록샴 씨가 행하는 전생기억에서, 최면에 들어 전생을 기억하는 시간이 꿈을 꾸는 시간보다 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의 원천이 되는 것은 아마도 몇해 전에 읽은 역사책일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꿈이라든지 최면에 들어 기억한 전생의 내용으로부터 우리 마음에 내재한 생각과 숨은 욕망같은 것을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꿈에 대하여 서로 다른 해석들을 하고 있는데, 꿈에 관한 그들의 주장이 전생기억을 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 최면에 들어 전생을 회상하는 것이 꿈보다는 브록샴 식의 전생기억 방식에 더 가까운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다 큰 어른이 브록샴의 방법이 아닌 보통의 최면 상태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사건들을 회상하며 실제로 어린아이로 돌아가 지나간 시절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최면술에 대한 문외한으로서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다. 최면에 든 사람이 시술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얼마만큼이나 환상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다. 최면에 든 어느 건축업자가 그가 삼십 년 전에 지은 담을 설명하는데 담의 크기, 형태, 위치 그리고 담을 쌓는 데 소요된 정확한 벽돌의 수 등을 최면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서술했다. 이 벽돌담을 나중에 조사해 보았더니 마지막 벽돌 한 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가 말한 것과 꼭 같았다. 이런 경우 건축업자는 삼십 년 전의 과거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사실대로 진술했는데 아무런 과장도 없었고 환상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더 보태지 않았다.

  최면과 전기 자극은 둘 다 과거를 기억시키는 자극제와 같은 것으로, 전극을 두뇌에 접촉했을 때와 같은 과정이 최면 상태에서도 일어난다고 브록샴 씨는 말한다. 그러나 둘 사이의 차이점은 최면에 들었을 때는 피술자들이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태어나기 이전의 과거에 대해서도 회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곧 마음의 어느 깊숙한 구석에만 비축되어 있는 잊혀진 전생의 흔적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전극의 자극을 통했을 때는 금생에서의 잊혀진 과거밖에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처럼 인간에게 윤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브록샴의 실험 외에도 서구 사람들은 윤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고대의 희랍인은 윤회를 미템시코우시스 Metempsychosis라고 불렀다. 세계의 모든 종족과 종교가 한때는 윤회를 그들의 신조로 받아들였다. 플라톤에서 나폴레옹까지, 모든 시대의 저명한 사람들이 윤회를 믿었다. 버지니아대학의 스티븐슨 박사는 동·서양의 많은 어린 아이들이 전생에 대한 기억을 하고 있으나, 성장해감에 따라 그러한 기억들을 차차 잊게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비단 어린 아이나 동양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윤회를 굳게 믿었던 사람으로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있다. 그는 출판업자이자 작가인 동시에 미국의 독립전쟁에 관계했던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는 열여섯살 때 이미 그가 태어나기 전에도 살았었다는 말을 사실대로 받아들였다. 또한 그는 질량불변의 법칙을 최초로 이해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물질은 그 형태가 변하기는 하나,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완전히 멸해버리는 것은 없다. 그것을 관찰할 때, 이를테면 한 방울의 물조차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할 때, 나는 우리 인간의 마음이 죽음과 더불어 소멸해 버린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운 만물의 창조주께서 지금 존재하고 있는 무수한 마음들이 매일 매일 없어져 버림으로 인해 새로운 마음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고역을 치르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나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이런 모습으로 또는 저런 모습으로 이 세상에 상주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유니테리언파의 목사였던 윌리암 엘저는 윤회의 연구에 그의 인생을 바쳤다. 1860년에 발간된윤회설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는윤회 사상은 그럴듯한 망상으로 믿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 뒤 십오 년 동안 연구를 거듭한 후, 두 번째로 발간한 책에서 그는 마침내 윤회사상에 귀의했다고 선언하였다.

  러시아의 유명한 신비주의자 블라밧스키 씨가 1975년에 창설한 신지학(神知學)협회는 근대에 와서 서방에서 가장 열렬히 윤회사상을 보급한 단체이다. 블라밧스키는 우리가 인생에서 겪게 되는 불운이라든지 사건은 그 어떤 것이든 모두 우리가 금생이나 전생에서 지은 업보로 인해 받게 되는 과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방의 신지학(또는 접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업 Karma사상과 윤회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인과응보설에 따르면, 금생에 우리가 생각이나 행동으로 짓는 업이 다음 생에 우리가 언제 어떻게 태어날 것인가를 결정짓는다고 한다. 따라서 열반을 증득하여 윤회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가르치는 동방 종교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독교의 발상지인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사람들은 윤회를 믿었다. 성경의 구약과 신약에서도 윤회를 암시하는 구절이 많이 보인다. 모세는 전생에 아담의 둘째 아들 아벨이었다고 믿었고, 아벨 자신은 메시아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구약은 예언자 엘리야가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으로 끝을 맺고 있다. 심지어 예수의 출현에 대해서도 유태인들은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예레미아가 다시 왔다고 말한다. 예수가 출현한 뒤로 오백 년 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이 윤회설을 믿었는데, 그노시스파와 마니교도들과 같은 강력한 종파들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보기이다. 그러나 서기 553년 바티칸공회는 교황의 승인없이 윤회설을 이단이라고 공표하였다. 오늘날의 천주교 신학자들은 제5회 바티칸공회의 파문 15조의 합법성 여부에 대하여 자주 논란을 벌이고 있는데, 그것은 당시 교황은 파문 15조를 결코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로 말미암아 6세기 경부터 전유럽에서 윤회설을 믿는 사람을 이단자로 몰아 화형에 처하는 종교적 박해가 일기 시작하였으며, 이로 인해 기독교와 윤회사상은 결별하게 되었다.

  윤회사상을 가장 오랫동안 믿고 신봉해 온 사람들은 인도의 힌두교도들이다. 서양 사람들 사이에는 종교란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이미 지나간 시대의 산물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경향도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성품에 관한 과학의 정의도 더 이상 사람들을 납득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더 깊은 뜻이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퍽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브록샴 씨의 테이프는 영혼의 윤회에 대한 옛사람의 믿음을 증거해 주는 자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윤회사상은 이론으로 증명이 안 되는 유일신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내세사상에 보탬이 되는 순수한 관념일 수도 있다.

  현대 심리학은 어떻게 하면 심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가에 대해 흥미있는 이론과 의학상으로 알아 두어야 할 일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브록샴 테이프나 윤회에 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주지 못하고 있다.

  브록샴 씨의 20여년에 걸친 연구는 윤회가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사례의 하나가 될 것이다.

 

참고

최면술(催眠術,2329)-국어사전 : 최면 상태로 이끄는 술법. ...최면(催眠,2329)-국어사전 : 잠이 오게 함. 의도적·인위적으로 그리되게 한, 일종의 수면과 같은 상태.

 

접신(接神,2065)-국어사전 : 신이 사람의 몸에 내리어 신통한 능력이 생기는 일.

 

상주(常住,1250)-국어사전 : 한곳에서 늘 살고 있음. 불교에서, 생멸의 변화가 없이 늘 존재함. 상주승물(常住僧物). ...상주(常住,1269)-뉴사전 :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는 것. 영구히 존재하는 것. 항상 주()하여 불변하는 것. 영원불변(永遠不變). 사물이 생멸 변화하지 않는 것. 무상(無常)의 반대. , nitya常住不滅, sada sthitah [부처님의 진실의 신체가] 항상 존재하는 것. <法華經 壽量品> 부처님이 영원히 실재하고, 멸하지 않는 것. [표현예] 변하지 않는 것(日沒). 언제나 계시다. (해석예) 잠시도 끊기는 적이 없는 것을 말함. <聞解 147> 진리가 영원한 것. 모든 이법(理法)이 영구히 정해져 있는 것. 이 의미의 상주라면, 불교에서 적극적으로 승인하고 있음. , nitya-sthita <法華經 方便品 103> 상주하는 영혼. , vedagu <那先經> 사원(寺院) 소속의 소유물, 또는 절의 부엌. <正法眼藏 行持 82129>

 

전생(前生,2040)-국어사전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세상. 전세(前世). ...전생(前生,2258)-뉴사전 : 전세(前世). 이전 세상. 먼저 세상의 생애. , purva-jata <中論 209> <妻經> 먼저 생겨서 일어나고 있다라는 뜻. 전생인(前生因)과 같음. <中論釋 3026>

 

전생기억(前生記憶)전생(前生,2040)-국어사전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세상. 전세(前世). ...전생(前生,2258)-뉴사전 : 전세(前世). 이전 세상. 먼저 세상의 생애. , purva-jata <中論 209> <妻經> 먼저 생겨서 일어나고 있다라는 뜻. 전생인(前生因)과 같음. <中論釋 3026> ...기억(記憶,368)-국어사전 : 지난 일을 잊지 않고 외어 둠, 또는 그 내용.

 

영혼(靈魂,1686)-국어사전 : 육체가 아니면서 육체에 깃들어 인간의 활동을 지배하며, 죽어서도 육체를 떠나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정신적 실체(實體). 영가(靈駕). 혼령(魂靈).육체(肉體). 가톨릭에서, 불사불멸의 신령한 정신을 이르는 말. 영신(靈神). ) (). ...영혼(靈魂,1779)-뉴사전 : 육체에서 구별된 정신적인 것. 영은 불가사의한 것을 의미함. , 불교에서는 정신과 육체를 구별하는 이원론(二元論)에는 서지 않음. ...이원론(二元論,1887)-국어사전 : (철학에서, 주관과 객관, 정신과 물질, 천지, 음양 따위와 같이)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원리로써 실재(實在)의 개별적 부분 또는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 우주의 근본 원리를 정신과 물질로 삼는 설. [데카르트의 물심 이원론이 대표적임.]

 

윤회(輪廻,1832)-국어사전 : 차례로 돌아감. <윤회생사>의 준말. ...윤회(輪廻,2000)-뉴사전 : 유전(流轉)이라고도 함. 원뜻은 흐르는 것. 인도 고래(古來)의 사고방식으로, 생명이 있는 사람이 생사를 반복하는 것을 말함. 중생이 미혹한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어서 차바퀴를 둘러싸듯이 멈추지 않는 것. 끝없이 도는 것. 불교에서는 미혹한 세상의 것으로, 삼계(三界 : 欲界·色界·無色界)·육도(六道 : 地獄·餓鬼·畜生·修羅·人間·天上)로 생사를 반복하는 것을 말함. [그러나 그 원어 산, samsara는 현대의 산스크리트 또는 힌두어로는」「세계라는 의미로 사용됨. 이러한 용법은 꽤 고대에까지 다다랐음. 따라서 한역 불전에윤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모두환생하다라고 하는 연상(連想)으로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임. , 그것이 생존의 형식이라고 하는 의미로 산, bhava(·生存)와 같은 뜻임.] (해석예) 돌고 도는 것. 육도에 헤매 도는 것. 환생함. ...환생(還生,2653)-국어사전 : (죽었다가) 되살아남. 다시 태어남. 비슷한 말 : 환생(幻生). ...환생(幻生,2653)-국어사전 : (사람이 죽었다가) 형상을 바꾸어 다시 태어남. 환퇴(幻退). 비숫한 말 : 환생(還生). ...환생(還生,2867)-뉴사전 : 미혹한 세계(世界)가 다시 환생하는 것. <八宗綱要 232> 일단 파계한 사람이 참회해서 다시 수계(受戒)하는 것.

 

열반(涅槃,1666)-국어사전 : [불교에서] 일체의 번뇌에서 해탈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높은 경지. 죽음. 특히, 석가나 고승의 입적(入寂)을 이르는 말. 적멸(寂滅). 멸도(滅度). ...열반(涅槃,1749)-뉴사전 : 아마도 속어인 nibban의 음역. 번뇌의 불을 불어 끈 상태. 열반(. nirvana). 금광명최승왕경에는(1)에는 거기에 열가지 의미가 있다고 함.해탈(. nibbana) (pari-nirvayin. 열반의 경지에 든 사람.) (prasama-pura. 고요한 평화의 거리.) [현재의 산스크리트어나 힌두어에서는 위인(偉人), 예를 들면 간디나 문시의 죽음도 nirvana라고 부름] 열반의 경지에 듦(동사). (nirvati. 於內無心. 彼此寂滅. 物我冥一. 伯爾無腸. 乃曰涅槃) (해석예) (, nihsara)란 영리(永離, . nihsarana)이고, 모든 유위법(有爲法)에 있어서의 열반임. 무위(無爲)와 동일.무위. (해석예) 불생불멸(不生不滅). 필경개공(畢竟皆空)의 진제(眞諦). [열반은 해탈과 같은 뜻으로 풀이되기도 하나 어떤 경우에는 해탈로부터 열반이 얻어진다고 생각되고 있음. 解脫等故得涅槃] ...해탈(解脫,2584)-국어사전 : 굴레에서 벗어남. 불교에서, 속세의 번뇌와 속박을 벗어나 편안한 경지에 이르는 일. ...해탈(解脫,2757)-뉴사전 : 벗어나는 것. 풀려나다. , mukta(해방되었다). , parimuccati(··에서 해방되다). 고통에서 벗어나다,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번뇌나 속박을 떠나 정신이 자유로와지는 것. 방황의 속박을 벗어나서 완전한 정신적 자유를 얻는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당된 평안한 상태를 말함. 평온한 경지. 득도열반과 같음. , vimutta(해탈한다). , vimukta(해탈한다). (해석예) 번뇌를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 함. 해탈은 열반과 구별되고, 해탈에 근거하여 열반이 일어난다고 함. 벗어나게 하는 것. 해탈시키는 것. 더러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번뇌의 결박을 풀고, 미혹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 열반의 다른 이름이라 함. 번뇌로부터의 해방. 고통의 세계(三界)로부터의 해방. 번뇌를 조복하고 끊는 것. 名涅槃爲解脫(열반을 일러 해탈이라 한다). 통력(通力). 자재(自在)를 얻게 하는 선정(禪定).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의 하나. 팔해탈(八解脫)을 말함. 맑은 것. 소멸. 아집이 없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는 것. 오분법신(五分法身)의 하나. 법신. 구도자의 제8의 단계(八地) 이상에 나타나는 거짓 지혜와 진실의 지혜(權實二智). 선종에서는 대부분 깨달음의 뜻으로 사용함. 번뇌의 속박(지배)을 벗어나는 것. 상캬 철학에서 순수정신을 물질에서 해방시키는 것. 뢰옥(牢獄)을 해방시키고 죄인을 용서하는 것. 죄인이 추계가쇄[杻械枷鎖)에서 해방되는 것. (해석예) 편안해 지는 것. 벗어나는 것.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는 것을 말함. 아등(我等)이 악업번뇌(惡業煩惱)를 아미타의 빛으로 물리친다는 마음임. 불과(佛果)에 이르러 부처가 된다고 함. 자유롭게 되는 것. 번뇌를 끊는 것. 생사를 떠나는 것. 벗어나는 것. ...무위(無爲,852)-국어사전 :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음. 사람의 지혜나 힘을 더하지 아니함. 불교에서, 현상을 초월하여 상주(常住) 불변하는 존재를 이르는 말. ...무위(無爲,672)-뉴사전 :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 각종의 원인·조건(인연)에 의해 생성된 것이 아닌 존재. 인과관계를 떠나 있는 존재. 성립·파괴를 넘은 초시간적인 존재. 생멸(生滅)변화를 넘은 상주절대(常住絶對)의 진실. 현상을 떠난 절대적인 것. 무한정한 것을 가리키는 말. 열반의 다른 이름. 소승의 아비달마 교학에서는 여기서 3종류를 가르침. 즉 허공무위(虛空無爲)·택멸무위(擇滅無爲)·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3(). 대승불교에서는 진여(眞如) 그 자체와 동일시됨. 유식설(唯識說)에서는 공()과 동일. 아무것도 하지 않음. 아무것도 이루지 않는 것. 노장(老莊)이 설함. 자연 그대로로. 작위(作爲)하지 않는 것. asamskrta의 역어로서의 의미에 재래(在來) 한어(漢語)의 뉴앙스를 포함하여 중국불교, 특히 선종(禪宗) 등에서 사용됨. 모든 것에 대해 붙잡히거나 구하거나 하는 마음을 버리고, 담담하게 불도에 힘써 나가는 것. 아무것도 없이 조용히 모든 현상을 초월해 있는, 이라는 뜻. (해석예) 진여상주(眞如常住)의 묘리(妙理)는 그것과 같은 사연(四緣)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무위라고 부른다. <唯識大意 本 32> 열반의 다른 이름. 열반의 체()의 위작을 떠난 처()를 무위(無爲)라고 함. <香月 2295> 열반의 다른 이름으로 자연에 조작을 가하지 않는 것. <皆往 3832>

 

선법(善法,1318)-뉴사전 : 선한 일. 바른 일. 도리에 따르고 자타(自他)를 이익되게 하는 법(). 세상의 선법. 오계·십선을 말함. 혹은 출세간(出世間)의 선법. 삼학육도(三學六度)를 말함. <俱舍論 162, 1711 >因 善法 向上, dharmena gamanam urdhvam(미덕(美德)에 의해서 천상에 오른다.) <金七十論 44541255>

.....오계(五戒,1786)-뉴사전 : 5가지 계율. 재가(在家)의 불교신자가 지켜야 할 5가지 훈계. (1) 살생하지 말 것. (2) 도둑질하지 말 것. (3) 남녀 사이를 혼란시키지 말 것. 성에 관해서 문란하지 않는 것. 특히 부인외의 여자, 또는 남편외의 남자와 교제하지 말 것. (4) 거짓말하지 말 것. (5) 술을 마시지 말 것.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婬망어(妄語음주(飮酒)의 금제(禁制). 불살생계(不殺生戒불투도계(不偸盜戒불사음계(不邪婬戒불망어계(不妄語戒불음주계(不飮酒戒)의 총칭. 우바새계(優婆塞戒)라고도 함. <長阿含經 2114> , Panca-Sila <遊行經 1196> <九橫經 2883> [보통 원어는 산, panca-sila이다.] <四分律 22640> <俱舍論 1414-15, 그 위에 3 참조> <觀霧量壽經 2345> , panca siksapadani <藥師本願經 14407: Bhaisaj. p.19, c.8> <灌頂經 1221534, 535> <反故集> 오계(五戒)를 지키는 재가(在家)의 남자. 우바새(優婆塞). .....십선(十善,1577)-뉴사전 : 10가지의 선한 행위. 십악(十惡)의 반대. 십악(十惡)이란,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婬망어(妄語 : 거짓말을 하는 것양설(兩舌악구(惡口기어(綺語 : 정말로 재미있게 만드는 말탐욕(貪欲진에(瞋恚 : 화내고 미워하는 것사견(邪見 : 잘못된 견해)를 말함. 이상의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것. 불살생(不殺生)에서 불사견(不邪見)까지를 십선(十善)이라 함. 죽이지 않는다(, prana-atipatat prativiratah), 훔치지 않는다(, adatta-adanat p.), 사음하지 않는다(, kama-mi-thya-carat p.), 망어하지 않는다(, anrta-va-canat p.), 욕하지 않는다(, parusa-vacanat p.), 기어하지 않는다(, sambhinna-pralapat p.), 양설하지 않는다(, pisuna-vacanat p.), 탐욕하지 않는다(, abhidhyatah p.), 화내지 않는다(, vyapadat p.), 사견을 품지 않는다(, mithya-darsanat p.). <寂志果經 1272> <觀無量壽經 12341> <大智度論 4625395참조> 전생에 십선(十善)을 행한 공덕에 의해 금생에 왕위를 받기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천황의 위(: 지위)를 가리켜 말함. (해석예) 신삼구사의삼(身三口四意三). 성왕(聖王)의 천명을 받아 만민을 무육(撫育)하는 법. <十善戒相 131> 도에 따르는 것을 선이라 함. 차선십종(此善十種)이 있으면, 십선(十善)이라 함. <人登道隨 上 1352>

.....출세간(出世間,2573)-뉴사전 : 3계의 번뇌를 떠나 깨달음의 경지에 드는 것. 또는 그 경지. 세속·세간의 대어(對語). 초월성. 세속을 벗어난 깨끗한 세계. , lokuttara <雜阿含經 282203: MN. , p.72> 진실을 구하는 깨달음의 수행. 해탈을 위한 가르침. 사제(四諦)·6(六度) . <維摩經 14554> 불법(佛法)의 영역. <眞言內證> (해석예) 3계의 속박을 벗어나 무루성도(無漏聖道)에 들다. <人登道隨 上 3153>出世間慧, lokauttara prajna

.....사제(四諦,1118)-뉴사전 : , Catvari-aryasatyani , Cattari-ariyasaccani. 사성제(四聖諦)라고도 함. ()·()·()·(). 불교의 강격(綱格)을 나타낸 전형(典型)으로서 유력(有力)한 것. ()는 불변여실(不變如實)의 진상(眞相)이란 뜻. (1) 고제(苦諦). 현실의 상()을 나타낸 것이니, 현실의 인생은 고()라고 관하는 것. (2) 집제(集諦). ()의 이유 근거(理由根據) 혹은 원인(原因)이라고도 하니, 고의 원인은 번뇌인데, 특히 애욕과 업()을 말함. 위의 2제는 유전(流轉)하는 인과. (3) 멸제(滅諦). 깨달을 목표. 곧 이상(理想)의 열반. (4) 도제(道諦). 열반에 이르는 방법. 곧 실천하는 수단. 위의 2제는 오()의 인과. 이 사제설(四諦說) 자신에는 아무런 적극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 않지만, 후대에 이르면서 매우 중요시하게된 데는 여러 가지 체계를 포괄(包括)하여 조직적으로 취급한 것이 있다. 고제는 무상(無常)·()·무아(無我)·5() (), 집제·멸제는 연기설(緣起說), 도제는 8성도(聖道) 설을 표하는 것. 그리고 고제·집제는 12인연의 순관(順觀), 멸제·도제는 역관(逆觀)에 각각 해당한다. 사제(四諦)는 사체로도 읽는다.사성제. ...사성제(四聖諦,1090)-뉴사전 : 사제(四諦)와 같음. 사제는 뛰어나고 신성한 것이므로, (; , arya , ariya)이라는 자를 붙임. (; , satya , sa-cca)란 진리·진실이라고 하는 것. 인생문제와 그 해결법에 대한 네가지의 진리라고 하는 뜻. , 고제(苦諦 ; , duhkha-satya)·집제(集諦 ; , samudaya-s ; 고집체), 멸제(滅諦 ; , niro-dha-s ; 苦滅諦·苦集滅諦)·도제(道諦 ; , marga-s ; 苦滅道諦·苦集滅道諦)를 말함. (1) 고제. 이 세상은 고통이라고 하는 진실. (2) 집제. 고통의 원인이 번뇌·망집이라고 하는 진실. (3) 멸제. 고통의 원인이 멸이라고 하는 진실. 즉 무상의 세상을 초월하여 집착을 끊는 것이 고통을 없앤 깨달음의 경지라고 하는 것. (4) 도제. 깨달음으로 이끄는 실천이라고 하는 진실. 즉 이상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팔정도의 올바른 수행방법에 의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 (俱舍論 221-3> <中阿含經 71464: MN. , p.184>

.....십이인연(十二因緣,1589)-뉴사전 : 인간의 고통, 고민이 어떻게 해서 성립하는지를 고찰하고, 그 원인을 추구하여 12가지 항목의 계열을 세운 것. 존재의 기본적 구조의 12구분. 연기(緣起)의 이법(理法)12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설명한 것. 생존의 조건을 나타내는 12가지의 계열. 늦게 성립된 해석에 의하면, 중생이 과거의 업에 의해 현재의 과보를 받고, 또한 현세의 업에 의해 미래의 과보를 받는 인과의 관계를 12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 것. (1) 무명(無明 : 무지), (2) (: 잠재적 형성력), (3) (: 식별작용), (4) 명색(名色 : 마음과 물질), (5) 육처(六處), (6) (: 감관과 대상과의 접촉), (7) (: 감수작용), (8) (: 맹목적 충동, 망집, 갈망에 비유되는 것), (9) (: 집착), (10) (: 생존), (11) (: 태어나는 것), (12) 노사(老死 : 무상한 모습)을 가리킨다. 차례로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성립시키는 조건이 되어 있음. 따라서 차례로 앞의 것이 없어지면 뒤의 것도 없어진다.

.....삼학(三學,1242)-뉴사전 : 불도를 수행하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세가지 수행 부류를 말함. 계학(戒學)과 정학(定學)과 혜학(慧學)의 이 세가지를 가리킴. (1) (), ()을 멈추고 선()을 닦는 것. (2) (), 심신을 정결히 하여 정신을 통일하고, 잡념을 몰아내어 생각이 뒤엉키지 않게 하는 것. (3) (), 그 정결해진 마음으로 바르고 진실한 모습을 판별하는 것. 이 부즉불이(不即不離)한 삼학의 겸수(兼修)가 불도수행을 완성시킴. 규율이 있는 생활을 영위하고, 마음을 잘 가라앉혀서, 거기에서 바른 세계관을 갖게 되는 것. 3()(, trini siksani)이란, 증상계학(增上戒學 , adhisilam)·증상심학(增上心學 , adhicit-tam)·증상혜학(增上慧學 , adhiprajna)이라 함. 증상(增上 탁월)하게 하는 3종의 수행법이라는 뜻. <集異門論 526388> <俱舍論 249, 12 참조> (해석예) 계정혜(戒定慧). <聞解 138>

.....육도(六度,1971)-뉴사전 :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피안(彼岸)에 이르는 여섯가지 뛰어난 수행. 육바라밀(六波羅蜜)과 동일. (해석예) 보시 지계 인욕 정진(布施 持戒 忍辱 精進). 이 네가지를 복()이라고 하고, 선정 지혜(禪定 智慧) 이 두 가지를 지()라고 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1975)-뉴사전 :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있어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 위해 실천해야 할 여섯가지 덕목. 바라밀은 산, , paramita의 음역으로, 피안(彼岸)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하고, ()라 한역함. 이상(理想)을 달성하는 것. 완성의 의미임. 육도(六度)라고도 함. 여섯가지 덕목의 완성. (1) 보시(布施 , dana). 주는 것. 그것에는 재시(財施 : 의복 등을 베푸는 것)와 법시(法施 : 진리를 가르치는 것)와 무외시(無畏施 : 공포를 없애고, 안심을 주는 것)3종이 있음. (2) 지계(持戒 , sila). 계율(戒律)을 지키는 것. (3) 인욕(忍辱 , ksanti).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 (4) 정진(精進 , virya). 진실의 도()를 느슨히 하지 않고 실천하는 것. (5) 선정(禪定 , dhyana). 정신을 통일하고 안정시키는 것. (6) 지혜(智慧 , prajna). 진실한 지혜를 얻는 것. <摩訶般若波羅蜜 68256>(해석예) 단계인진선혜(檀戒忍進禪慧). <金般講 57>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念佛名義集 76> ...바라밀(波羅蜜,730)-뉴사전 : , , paramita의 음역. 예전에는()라 한역했다. 당대(唐代)에 있어서는 도피안(度彼岸)이라 한역. (), 건넜다,도피안이란 피안에 이르렀다의 뜻. 동시에 완료형임. 절대, 완전한의 뜻. 예를 들면 보시바라밀다(布施波羅蜜多), 절대완전의 보시(布施), 은혜를 베푸는 완성의 뜻. 피안에의 길. 완성. 수행의 완성. 깨달음의 수행. 깨달음의 길.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보살의 수행. 바라밀(波羅蜜)로서는 시()·()·()·()·()·()의 육바라밀(六波羅蜜), 또는 이것에 방편(方便)·()·()·()를 더하여 십바라밀(十波羅蜜)을 세운다. 육바라밀(六波羅蜜)이란, (1) 보시(布施)(, dana). 사람에게 재물을 주고, 진리()을 가르치고, 안심(無畏)를 주는 것. (2) 지계(持戒) (, sirla). 계율을 지키는 것. (3) 인욕(忍辱)(, ksanti). 박해곤고(迫害困苦)를 참는 것. (4) 정진(精進)(, virya). 심신을 힘쓰며, 다른 오바라밀(五波羅蜜)을 수행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 (5) 선정(禪定)(, dhyana), 마음을 집중하고 안정시키는 것. (6) 지혜(智慧) : 般若 , prajna). 미혹을 여의고, 존재의 궁극에 있는 실상(實相)을 깨닫는 것을 말함. 6의 반야에 방편(方便)·()·()·()4가지를 더하여 십바라밀(十波羅蜜)이라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자기를 완성함과 동시에, 많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 <俱舍論 189> <起信論 32579> (해석예) 도피안(度彼岸). <金般講 4> [표현예] 궁극. 완전한. ...바라밀다(波羅蜜多,731)-뉴사전 : 바라밀(波羅蜜)과 동일.바라밀 산, paramita <Bodhis.p.4 六波羅蜜多 ; 58, 1.16(十波羅蜜多) ; 371 1.7> <MAV. , >

 

분별(分別,945)-뉴사전 : (외적인 사물에 구애된) 단정. 다투다. 수기(授記)와 동일. 논의. 구분교(九分敎)의 하나. 배분하는 것. 나누어 배부하는 것. 조치. 하나하나 분해함. 구별. 구별하는 것. 열어 보임. 사유. 구분하는 것. 구별하여 생각함. 판별하기. (두개 이상의) 경우를 나누어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 개념으로서 표시할 수 없는 것을 표시하는 것. 개념작용. 생각. 망분별(妄分別)을 하는 것. 망상. 주관적 구상. 구상작용. 아라야식이 개전하여 차별상을 나타낼 때의 주관적 측면. 아라야식이 개전하여 차별상을 나타내는 것. 또는 그때의 주관적 측면. 망분별. 잘못된 인식. 망상. 사물(事物)을 분석하고 구별하는 것. 특수. 바이세시카 철학에서 말함. 사유(思惟). 구별. 분별기(分別起)의 약어.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남.분별기 사람들이 이해되도록 나누어 설명함. 생각하는 것. 수심(受心)을 말함. 지식으로 하는 이해. 대상을 사려하는 것.分別名意識(분별이 즉 뜻이라는 것.) [해설] vika-lpa는 마음의 작용이 대상을 사유하고 계산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세 종류가 있다. (1) 자성분별(自性分別)(, svabhava-vikalpa) ()·()·()·()·()의 오식(五識)이 대상을 식별하는 작용. (2) 계탁분별(計度分別)(, abhinirupana-vikalpa). 대상의 차별을 추량하고 재는 작용. (3) 수염분별(隨念分別)(, anusmarana-vikalpa). 과거의 것을 추념하는 작용. <俱舍論 2298>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출전 : 불교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